휴지가 떨어져 간다. 이사 올 때, 그러니까 자취 시작할 때 샀던 30 롤짜리 휴지를 5개월 동안 쓴 것이다. 헤프게 쓴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는 휴지가 늘 바닥까지 떨어지진 않았으므로. 절반 이상이 덜어지면 꽉 채워진 30 롤 하나가 등장했으니까.
자취를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 살면서 수건, 치약, 휴지 뒤에 '산다'를 붙인 적이 없다. 그것들은 늘 있는 것들이었다. 특히 수건은 차고 넘쳤다. 욕실 진열장 안에 넘쳤고 엄마가 화장대로 쓰던 낡은 2단 서랍장 두 칸에도 넘쳤다. 한 번 열면 닫을 때는 손으로 꾹꾹 눌러야 할 만큼 채워져 있었다. ○○리 노인회관 준공 기념, ○○초등학교 10회 동문회, ○○○ 여사 회갑연 등. 오래된 건 90년대 초반의 날짜가 찍혀있기도 했고 이제는 쓰지 않는 4자리 지역번호가 쓰여있기도 했다. 0348. 하긴, 어디 안 쓰는 게 지역번호뿐일까. 요새는 유선 전화를 잘 쓰지 않는다. 그리고 수건에 전화번호를 인쇄한다는 게, 대다수의 입장에선 놀랍기도 하겠다. 개인정보 유출을 그렇게 적극적으로 한다고?
수건과 더불어서 모자람이 없었던 건 치약과 비누였다. 추석과 설만 되면 들어오는 수십 개의 선물 중 가장 많은 게 애경 또는 LG생활건강 생필품 세트였고, 그것들은 1년은 고사하고 2년이 지나도 다 쓸 수 없을 만큼의 양이었다. 아, 거기에 엄마가 '아모레 이모'라고 불렀던 방문판매원이 올 때마다 두고 가던 헤라의 보라색 정사각형 비누까지.
내가 나고 자란 동네는 분명 작다. 내가 작던 시절에도 작게 느껴졌을 정도다.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길 때부터의 기억 속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누구의 딸, 누구누구의 동생으로 불렀다. 그만큼 동네는 작았고 사람들은 가까이 모여 살았으며 그 대부분이 내 엄마와 아빠를 알았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를 누구누구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예뻐하고 좋아했다. 오며 가며 인사하던 얼굴들은 명절 전후가 되면 우리 집에 들러 선물을 두고 갔다. 그때 그곳은 분명, 지금 내가 살며 오가는 도시보다 작고 사람도 적으며 누추하고 콕 짚어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집 욕실장은 비는 날이 없었다. 무슨 치약을 사야 하나 하는 고민이나 요 며칠 세탁기를 돌리지 못했다고 쓸 수건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대형 마트에 다녀오는 건 꽤 다부진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 생필품은 대부분 부피가 크고, 한 번 가면 1개 이상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들고 집까지 오가기가 영 망설여지는 것이다. 특히나 나처럼 운전면허에 뜻 없고 가지런히 세워진 공용자전거도 조형물 보듯 하는 사람에겐 더더욱. 집에서 대형마트까지 왕복 30분. 이렇게 추운 날씨엔 휴지를 든 손이 얼마나 시릴 지도 가늠이 된다. 게다가 나는 추위를 잘 타는 수족 냉증인이니까 겨울에 외출하는 건 작지 않은 계기가 있어야... 아, 혼자 살기에 취약한 부분을 또 하나 발견한다. 결국 택하는 건 인터넷 주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해 꽤 많은 걸 갖췄고, 또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1인용 밥솥이나 밀 키트, 생필품 정기구독 서비스가 그렇다. 나에게 가장 축복인 건 아무래도 1~2인분의 비비고 국, 찌개, 탕 시리즈. 다만 아쉬운 건, 혼자 사는 과일 좋아하는 사람이 집에서 먹을 수박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던 지난여름의 기억이다.
혼자 사는 매일은 혼자 살아야 하는 이유의 연속적인 발견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왜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나에 대한 답을 찾기도 한다. 어렴풋이나마.
"역시 나는 혼자 살아야 해!"와 "혼자는 아무래도 심심하지"의 경계 없는 제자리 운동. 그 동력으로 오늘도 이번 주말 해야 할 일을 정리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