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관극러까진 아니고, 흔히들 말하는 연뮤덕이라고 하기에도 아직 경력(?)이 부족하다. 어쨌든 주변 사람들은 나를 공연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책과 비슷한 맥락인데, 극은 나에게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다. INFP의 종특을 뿜어내며 인물에 스스로를 대입하거나 그 안으로 뛰어들어 망상을 펼칠 필요도 없다. 암전 된 공간, 오케스트라의 연주 혹은 배우의 대사로 가득 채워지는 곳이라면 별다른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그 세게로 뛰어들 수 있다. 순수하게 지켜보는 입장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암전이다. 극이 시작되기 전 천천히 내려진 조명이 온전한 어둠을 불러올 때. 시퀀스가 끝나고 주변을 환기시킬 적막이 만연해질 때. 나는 우주여행을 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행성을 넘어서 다른 은하로까지 이동해 그 세상에 머무는 경험. 공연장의 닫힌 문은, 공연장과 로비만을 나누지 않는다. 시간과 시간을 나누고 더 멀리는 차원과 차원을 나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우주를 부유하던 끝 극적으로 지구에 돌아왔을 때, 체감한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걸 깨닫는 것처럼. 나는 공연장 안에서 어느 한 시기에 멈춰버린 시간을 떠돌다가 내가 느끼지 못한 두세 시간 남짓이 흘러버렸음을 깨달으며 공연장을 나선다. 이런 경험은 나를 지치지 않고 전율하게 만든다.
혼자 살면서 좋은 점은 서울에서 저녁 공연을 보고 자정 가까이, 혹은 넘어서 귀가해도 눈치 볼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혼자 살면서도 저녁에 관극을 한 날은 최대한 빨리 집에 돌아가려고 하지만 기다리고 있을, 내가 어디서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를 신경 쓰는 마음이 없다는 것에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렇다고 가족들의 걱정이 마냥 성가시기만 했다거나, 그로 인해 독립을 갈망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늦은 귀가로 걱정할 이들을 생각하는 건 누군가와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예의라고 생각한다. 또 때로는 걱정이나 잔소리 같은 게 필요하기도 하고.)
내 집은, 물론 엄연히 말하자면 내 집 아니고 내가 월세를 내며 빌려 사는 집이지만. 아무튼 내가 일상에 가장 오랜 시간을 지내는 나의 공간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놀러 왔던 친구들이 새 집인 거 티 나게 깔끔하다 할 정도로 뭘 어지럽혀 놓거나 짐이 잔뜩이진 않지만, 채워진 것들은 전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책, 앨범, 공연 프로그램북, 티켓북, 영화 패브릭 포스터,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의 사진, 유럽여행 사진, 조카와 함께 찍은 사진, 블루투스 스피커. 그 공간은 조용하지만 적막만 흐르지는 않는다. 잠에 들기 전부터 틀어놓은 음악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때까지 이어진다. 잘 때가 아니면 TV를 켜놓고 소파에 드러누워 책을 읽을 때도 음악을 틀어놓는다.
모순이지만 나는 적막을 불안해하는 동시에 침묵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말수가 적은 건 물론이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는 주말이면 서너 마디 할까 말까인 데다가 수행을 하게 된다면 묵언수행을 잘할 것 같다 생각하는 동시에, 소리의 영역이 새하얗거나 새까만 정적을 잘 견디지 못한다. 거실에 틀어놓은 보지도 않는 예능 프로그램의 소리나 머리맡 휴대폰에 재생시켜놓은 가사 모를 음악은 감상을 위한 다기보다는 집중을 흩트리기 위한 수단이다. 한 번 시작하면 오르다 못해 하늘을 날든, 꺼지다 못해 땅굴을 파든 끝 모르고 이어지는 생각을 흩트리기 위한 수단.
가벼워졌다고 할까. 단순해졌다고 해야 맞나. 혼자 살면서는 본능에 더 충실하게 됐다. 누워있고 싶은 마음, 가만히 있고 싶은 마음, 뭐라도 집어먹고 싶은 마음, 따뜻한 물에 씻고 싶은 마음, 방석을 깔아 둔 자리에 아직까지 보일러의 온기가 남아있으니 그 아래 발을 넣고 누워서 TV를 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가지 많은 생각이 뿌리를 내릴 틈이 없다.
뭐, 어쨌든. (시퀸스가 끝나고 암전으로 환기를 시키는 공연처럼) 나는 늘 같은 나여서 더 새로울 것도 없고, 그 안정감의 만족하고 있었는데 혼자 살면서부터 의외의 나를 찾기도 한다. 생각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나. 짐과 지갑이, 그리고 같이 사는 가족의 사소한 걱정으로부터 가벼워진 만큼 일상을 대하는 방식도 가벼워졌다.
이대로 쭉 천천히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0과 100을 내 의지로 오갈 수 있는 상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항상 처해있는 상황에서 비롯될 수 있는 감정들에 겨운 채 살아온 지라, 돌이켜보면 순간순간 애쓰며 피곤했던 것 같다. 부푼 풍선에 스카치 테이프를 붙이고 바늘로 찌른 것처럼 천천히 느슨해지고 싶다. 그런 바램을 실천해 나아가는 게 나라는 혼자의 혼자 살기일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