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올리기가 조금 뜸해지면 브런치에서 알람이 오더라. 당신의 꾸준함을 응원한다는 식의 내용으로. 아. 글쓰기만큼은 의무가 아니라 의지로 하고 싶어, 알람을 무시하고 한 사흘 더 보냈다. 읽는 이가 없는 혹은 적은 글을 쓴다는 건 쓰지 않는 일보다 더 공허하다. 또 그만큼 자유롭고 자연스럽다.
독립을 한 게 지난 여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일이었고. 친구들은 집들이 겸 생일 선물로 일리 커피머신을 줬다. 지겹도록 일리, 일리 노래를 부른 덕이었나.
캡슐 몇 통을 비우고 가장 최근에 과테말라를 샀다. 근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간다. 1일 1커피는 기본이니 이미 비우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아직 절반이 남아있다. 캡슐의 문제인지 원두의 문제인지 향이 옅고, 무엇보다 커피가 잘 추출되지 않는다. 캡슐을 넣고 룽고 버튼을 누르면 한 30초 간을 요란하게 돌아가는 소리만 내고 커피 방울은 거의 이슬비 수준으로 똑, 똑, 똑 하고 잔의 반도 채우지 못한다. 기분 탓인지 원두 가루도 섞여 나오는 것 같고. 처음엔 기계가 문제인가 싶어 다른 캡슐을 넣어봤는데 사용한 지 반년된 머신은 당연히 멀쩡했다. 산 게 아까워서 꾸역꾸역 틈날 때마다 하나씩 해치우고는 있다만 두 번 다시는 사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다 마시자! 하고 내린 과테말라 커피를 반쯤 마시면 버리기 일쑤. 물론 알고 있다. 과테말라의 원두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드립 커피를 파는 카페에서 마시는 과테말라나, 홈 카페를 즐기는 언니가 내려주는 과테말라는 곧잘 마시고 찾는다. 문제는 캡슐일 것이다. 원산지도 한국이 아니고 만든 곳도 한국이 아닌, 과테말라산 원두를 넣은 이탈리아산 캡슐의 문제.
커피를 따라버리고 물로 한 번 훑어서 흘러보내도, 반나절 뒤에 보면 싱크대 배수구 구멍에 갈색 얼룩이 남아있다. 뭘 잘 해먹지 않으니 혼자 살 때에 비해 절반도 사용하지 않는 싱크대는 열에 아홉 말라있고 얼룩 같은 게 남아있기 좋은 환경이다. 싱크대 이야길 하니 떠오른 자취의 고충.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골치 아프다. 뭐, 어느 집에서건 음식물 쓰레기가 달갑지 않은 건 맞지만 특히 혼자 사는 집, 더해서 혼자 사는 이가 집을 비운 때가 많아 식사를 집에서 자주하지 않을 때면 더욱 그렇다. 어쩌다 밥 한 끼 해먹거나 배달 음식 시켜먹으면 내 손바닥도 안 될만큼의 찌꺼기가 남는데, 그걸 마냥 싱크대 거름망에 모아두자니 며칠만 지나면 냄새가 올라오고, 그렇다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모아두자니 그걸 언제 봉투 목까지 채워서 내다버리게 될지 몰라 난감하다. 물론 최선은 음식물 쓰레기를 내지 않는 것이지.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통에 덜어놓은 김치만 다 먹어도 갓이나 쪽파, 고춧가루 같은 자잘한 찌꺼기들이 남고 설거지를 하려면 그걸 전부 헹궈 싱크대 거름망에 흘러보내야 하는데.
생각해보면 뭘 많이 먹지도 않고 자주 먹지도 않으면서 먹을 것이 떨어진 상황은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싱크대 하부장에 아직 뜯지 않은 카레 두 봉지가 남아있고, 상부장엔 커다란 김 부각 다섯 봉지가 남아있다. (상부장을 열면 김 부각에 미쳐버린 사람이 사는 집 같다.) 먹고 싶어서 먹는 때도 있지만, 이 '먹다' 앞에 '챙겨'가 붙으면 타인의 염려와 그 염려에 대한 내 반응이 함께 담긴다. 그래도 한 끼는 직접 해서 반찬이랑 먹어야 혼자 지내면서도 잘 챙겨먹는 거니까, 그래야 밥은 잘 챙겨먹냐는 물음에 가책없이 그렇다 대답할 수 있으니까, 하는 생각. 그런 생각으로 1인용 밥솥에 밥을 짓고 먹을만한 반찬을 고르고 간편히 끓여먹을 찌개나 국을 고른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그 말을 이따금씩 주문처럼 외웠는데. 걱정 덕에 해소되는 일도 있다는 걸 깨닫는다. 오늘 저녁은 뭐로 끼니를 채울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이모와 언니와 함께 담근 섞박지가 너무 맛있는데, 맛있다고 빨리 먹어버리면 나중에 아쉬울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