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 타지에서 지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해봐야 반년도 채 안 되는 시간, 입학만 하고 졸업은 못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지낸 한 학기 남짓. 그냥도 외로웠고 20살 허세와 혼란에 찬 고독이 가득했는데 장염에 걸려 유독 서러웠던 사나흘이 있었다. 룸메이트가 주말 약속으로 나가면, 자퇴와 반수를 결심한 나는 이불 뒤집어쓴 채 아픈 속 부여잡고 시간을 보냈다. 그때 그리움은 여즉 생생하다. 엄마가 그렇게 사무치게 보고 싶을 줄은 몰랐다.
내 걱정이 습관인 엄마 없이 살아온 지 10년 가까워가고 성인이 된 지는 햇수로 9년, 혼자 살기 시작한 지는 반년이 되어간다. 비실비실한 체형과 스스로도 못 미더운 체력에 반해 잔병치레는 잦지 않았고, 잔병을 치르더라도 그러려니 혼자 알고 앓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근데 어제는 정말 힘들었다. 백신 부스터 샷을 맞고 근 10여 년만에 '와 이렇게까지 무력할 수 있다고?' 느끼며 어떤 증상 앞에 맥이 없어진 것이다.
중학생 땐가. 독감을 앓은 적이 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세상, 아니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미친 듯이 핑핑 도는 느낌. 흘려보낼 법한 소음도 쇳덩이처럼 귀를 때렸고 몸에 걸친 게 옷이 아니라 젖은 솜 같았다. 누워있어도 선한 어지러움에 앓는 소릴 했다가 듣기 실다는 언니의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도 남아있다. (그때 좀 과하게 끙끙거리긴 했다) 그때와 비슷한 증상이었다. 어젯밤엔 정말, 이렇게까지 어지러우면 백신 때문에 생긴 증상이 아니라 세상이 미쳐버린 거 아닐까. 원래 사람이 약하고 예민해지면 발 밑에 지구의 자전까지 느껴지는 걸까. 과언처럼 들리겠으나 나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진실된 실화를 이야기하는 중이다. 증상은 약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하니 내가 아니면 누구도 공감할 수 없겠지만.
해가 가기 전 연차를 전부 사용하라는 사내 공지에 부랴부랴 남아있던 사흘을, 이미 연말에 그럴듯하게 분배해 결재한 이후였다. 부여받은 연차를 전부 사용했으나, 정말 이대로는 집 밖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고꾸라질 것 같아 급히 팀장과 인사팀에 연락을 하고 하루 요양일을 얻었다.
거실에 드러누워 종일 시간을 보냈다. 쉬는 날에도 집에 누워만 있는 건 좀이 쑤셔하지 못하는 지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잘 요양한 게 될까 고민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빨랐다. 영화를 세 편이나 봤다. 누운 자세 그대로. 아마 내 소파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을 것이다.
해가 진 줄도 모르고, 한 다섯 시쯤 됐겠지 하며 확인한 시간이 일곱 시를 가리킬 때, 뭐가 그렇게까지 서운하고 서러웠는지 소리 내서 울었다. 영화를 보다가 훌쩍거리는 걸로 시작해서 "흐헝엉" 같은 유치한 울음까지 낸 것이었다. 그러다 엄마도 찾았던 것 같다. 끼니는 거르면 안 되겠지 싶어서 누룽지를 끓여 먹으며, 엄마가 아침에 작은 상에 내어주던 누룽지와 간장 게장 국물이 생각나서 흐헝엉. 그래 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워하는 일 밖에 없어서 흐헝엉. 소리 내어 울 수 있으니 혼자 살아 다행이었고 소리 내어 우는 걸 달래줄 이 없으니 혼자 사는 게 애석했다.
그러다 잠들 무렵엔 가슴께까지 덮은 이불을 토닥이며 "엄마, 내일은 안 아프게 해 줘"라고도 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제의 나는 참 가엾었다. 안 아프자고 맞은 주사 때문에 아파서 계획에도 없던 휴가를 내고 종일 집에 틀어박혀 도합 스무 걸음도 안 걸은 무력한 하루의 끝자락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던 어제의 나. 아... 진짜 불쌍하네.
아무튼 혼자 살 때 혹은 타지 생활을 할 때 가장 괴로운 순간은 아플 때라는 거 절대 틀린 말 아니다. 아프면 나만 손해라는 말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혼자 사는 이에겐 더군다나 그렇다. 또, 내 존재와 가장 인접한 이들을 잃고 나서 자주 느끼는 것. 그리움은 그리움 자체로도 슬프지만, 그리워해 봤자 이 생에서는 더 이상 소용없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그때 가장 슬프다. 슬프고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