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 INFP의 혼자 사는 이야기
나는 꿈을 많이 꾼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까지 하면, 한 숨을 자는 데에도 서너 가지는 꾸지 않을까 싶다. 아, 여기서 내가 말하는 꿈은 당연히 잘 때 꾸는 꿈이다. 현실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꿈이 아니라.
내 꿈은 보통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가끔은 어떤, 현실을 초월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날 하루 종일 신경을 썼던 것들을 주제로, 신경이 쓰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꿈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던 때가 있다. 아마 에세이 형식의 자기 계발서를 찾아 읽던 중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좀 아파보기도 해야 클 수 있는 줄 믿고, 유별나거나 특별하지 않은 내 일상에 자괴감을 느끼고, 그래도 스무 살이 되면 알고 보니 세상의 주인공은 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을까 기대하던 시절. 웬만하면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아프지 않은 것이 좋고, 사실 평범하기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고, 세상까지 갈 것 없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버거운 게 사는 일이라는 걸 깨닫기 전 말이다.
그때 내 꿈은 노래와 춤을 끝내주게 잘하는 가수였다. 한 줄 글귀로 트렌드를 만드는 카피라이터였다. 뚝딱 하면 베스트셀러를 완성시키는 시대의 작가이기도 했고. 세미 정장에 한쪽 팔에는 벗은 재킷을 걸치고 한쪽엔 텀블러와 핸드백을 든 커리어우먼, 뭐 그런 거. 걸을 때마다 늘어난 용수철처럼 튕기는 긴 머리카락 끝에서 제법 고급진 향기를 풍기는 현대의 여성. 혼자 살기에 적당한 깨끗하고 세련된 오피스텔을 가진. 돌이켜보니 별 거 없고 뻔하고 심심한 그것들이 내 꿈이었다.
그래서 그때 난 열정적이었나. 왜, 꿈이 없는 삶이 가장 척박하다고들 하니까. 그럼 꿈을 꾸던 그때의 나는 제법 촉촉하고 뜨끈했는가 생각해봤는데, 뜨겁게 꿈 꾸기는 했으나 뜨겁게 움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열심히 하지는 않지만 욕심은 많은 게으른 완벽주의 성향이 그때도 다르진 않았다.
그렇담 딱히 꿈이랄 게 없는 지금은 덜 신나나. 사는 일이, 쫓을 게 있으면 느슨해져도 금방 다잡게 된다는데.
여행을 할 때, 예를 들어서 내가 6년 전 다녀온 유럽 여행. 에펠탑을 보러 가는 발걸음만 신났었던 건 아니다. 에펠탑과 센 강이 낭만이란 이름의 불빛을 뒤집어쓴 파리 야경을 보기 위해 유람선 선착장으로 가던 어느 저녁만 유난히 설렜던 건 아니다.
뭐가 있는 줄도 모르는 샹젤리제를 무작정 걸을 때, 몽마르트르 언덕에 가려다 도착해버린 몽마르트르 공동묘지를 헤맬 때, 며칠간 보고 느낀 파리와 전혀 달랐던 마레 지구를 떠돌 때의 마음이 더 생생히 남아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나 뛰어들어간 베니스의 작은 카페는 6년이 지난 지금도 내 기분을 간지럽히기에 충분하다.
쫓는 바가 있다면 기대하는 것이 보다 선명하다. 대상을 만나거나 취하거나 그것에 닿았을 때 내 모습이나 마음을 미리 그려놓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겠지?라는 기대는 결코 막연하지만은 않고 오히려 결과론적인 것이다.
미리 해본 상상이 없거나 혹은 상상해볼 수 없을 때는 어떤가. 기분이 좋을 지도 나쁠 지도 예측할 수 없는 것들. 그런 상황은 비록 예측이 주는 설렘을 포기해야 하지만 동시에 설렘이 동반하는 우려도 놓을 수 있다. 목적 없이 나아간다는 건 불안한 동시에 자유로운 것이다. 결국 무언가 이루려고 살아가는 삶에서 큰 두 개의 갈림길, 무언가를 정해놓거나 또는 정해놓지 않았거나라는 선택지는 성공에 대한 기대와 실패에 대한 우려를 택할 것인가, 막연한 불안과 자유를 택할 것인가로 치환시킬 수 있다.
무슨 이야기를 적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
아. 꿈이나 목표 없이 살아가는 게 그 반대보다 덜 즐겁거나 덜 뜨겁지는 않다는 것이다. 삶은 즐거울 만큼 즐거울 수 있고 참담할 만큼 참담할 수 있다. 그건 꿈이나 목표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어쩌면 가벼운 문제일 수 있다. 지금 당장의 내 기분 같은 거. 거지 같은 꿈을 꾸다 깼을 땐 전부 다 짜증이 나는 것이고,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자다가 저절로 눈이 떠져서 일어나면 집 앞 대로변을 오가는 덤프트럭의 바퀴 소리도 평화로운 주말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