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돋아나는 초록이 그렇게 예쁠 수 없다. 벌어진 채 떨어진 목련 봉오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고 개나리를 보면 작은 조카의 팔랑거리는 뜀박질이 생각난다. 봄이 이렇게 좋은 계절이었던가.
사진 저 높은 곳에 보이는 건 내가 잊지도 못하고 잊을 마음도 없는, 내 출신 고등학교의 (주관적) 랜드마크인 목련나무. 나는 저 나무 덕에 목련을 사랑하게 됐다. 또 저 나무 덕에 남달리 구멍 많던 내 학창 시절을 하얗게 메울 수 있었다. (사진은 사정상 고향 동네에 찾아갈 일이 없어진 내가 저 나무만큼은 너무 보고 싶다고 하니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가 찍어 보내줬다. 외부인 출입금지기에 멀리서나마.)
나무 아래 벤치가 있는데,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끼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였다. 웃고 떠들고, 매점서 사 온 거 같이 먹고. 선생님들은 니들은 무슨 계모임이냐며 한마디 거드시기도 하고.
저 나무엔 꽃이 정말, 거짓말 안 하고 얼굴만 하게 폈다. 꽃이 다 떨어지고 난 봄의 일부부터 여름, 가을, 겨울까지의 시간 동안 그 앞을 오가는 우리들의 얘기와 마음을 전부 듣고 마시고 품고 있다가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그 힘으로 꽃을 터뜨리듯, 아주아주 크게.
첫 대학을 진학하고 다들 벚꽃엔딩 부르면서 즐길 때, 적응 못하던 나는 응달에 핀 작은 목련을 보고 고등학교 때 가장 잘 따르던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여긴 목련이 너무 작아요, 우리 학교 목련의 반도 안 돼요.' 그 목련 잎이 다 떨어져 짓이겨질 때쯤 자퇴서를 냈지.
당연히 목련 때문은, 아니었다.
옛날 생각 많이 하는 것도 한 살 한 살 나아감에 따르는 증상이라던데. 저 목련나무와 그에 얽힌 기억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쭉 생각해왔던 지라 그리운 마음이 새삼스럽지 않다. 이렇게라도 여전함을 확인할 수 있어 안도가 되기도 하고.
목련을 좋아하게 된 이후 단 한순간도 저 꽃이 피길 기다리는 안달 난 마음이 사그라든 적 없다. 저 앤 피기가 무섭게 떨어질 준비를 하는 애라서. 오려고 가고, 가려고 오는 그런 애라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더 보고 싶다. 봄을 타서 그런 것도 아홉수 탓도 아닌 게, 그리움은 꽤 되어 묵어가는 중이다.
세상이 봄에게 조금 더 너그러웠으면 좋겠다. 봄이 세상에게 조금 더 게을리 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