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를 마치고 자취방 침대에 혼자 누워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짤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서울 체크인>이라는 예능의 짧은 영상을 보게 됐다. 이효리는 남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찾아주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고, 도움이 되는 존재라고 느끼지 못할 때의 허한 감정을 말하면서 말이다. 그 말을 듣는데 아빠가 생각났다. 20살 이후, 성인이 됐다는 이유로 내가 부모님께 자주 했던 말은 ‘나도 알아’, ‘나도 할 줄 알아’,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4년쯤 되어간다. 거의 매일 생각나고 보고 싶은데, 종종 그런 때가 있다. 아빠와 있었던 사소한 순간들이 떠올라 가슴에 콕 박힐 때. 이효리의 저 말을 들은 순간도 그랬다. 아빠에게 했던 말들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심장이 쿵. 했다. 아빠에게 후회되는 순간 하나가 더 적립됐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분리되고 독립하는 과정이라 해도, 그렇게 말하지는 말 걸.. 하는 생각이 들자, 또다시 아빠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났다.
이번에 떠오른 기억은 어제의 내가 침대에 누워있다 아빠를 떠올린 것처럼, 막 혼자 방에서 잠자기 시작한 10살, 11살 무렵이었다. 혼자 잠드는 게 무서워서 아빠는 매일 내 옆에 누워있다가 내가 잠이 들면 안방으로 가곤 했다. 아빠는 회사일로 피곤했을 텐데도 몇 년 동안 어린이가 눕는 좁은 1인용 침대에 같이 누웠다. 그러다 새벽에 깰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혼자 눈을 뜨면, 겁에 질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빠… 아빠…”하고 부르곤 했다. 어느 날 아빠는 내 머리맡에 종을 놔뒀다. 앞으로 새벽에 깨면 이 종을 흔들라고 하면서. 나는 꽤 자주 흔들었다. 일주일에 몇 번은 그랬던 것 같다. 새벽 2시든 3시든 4시든. 종 몇 번만 흔들면 어김없이 아빠는 안방에서 내 방으로 건너왔다.
이 기억이 떠오르니 눈물이 났다. 그런데 눈물이 나니 또 슬펐다. 하나의 기억이 더 떠올랐기 때문에. 그날도 역시나 아빠와 같이 잠이 들고 있었는데, 당시 나는 영어 구연동화 발표회를 앞두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연기까지 하면서 발표해야 한다니,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였다. 침대에 누워 조용히 울고 있었는데, 아빠가 코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손을 뻗어 내 뺨을 만졌다. 아빠는 “눈물자국이 있네?”라고 물었다. “하품해서 눈물 났어”라고 답했다. 아빠는 그러고 별말이 없었다. 그때 아빠가 진짜로 내가 슬퍼 울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모른다. 그런데 어제 침대에 누워 울고 있자니, 내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아준 아빠가 있었다는 게 왜 이렇게 슬픈지 한참을 더 울었다.
내가 찾으면 언제든 달려오던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