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맏딸 Dec 28. 2021

영숙's answer. 예쁜 옷을 입었더랬어

엄마 인터뷰 1차__Q.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영숙은 첫 답변의 말미에 추신을 달아놓았다. 

"글쓰기의 재미에 푹 빠지게 해준 딸아 고맙다. 아빠도 아주 재미있어 하셔. 오늘 우리 둘이 바통 터치하며 컴퓨터 방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다. 네가 원하는 글이 됐을지 궁금하구나. 엄마가 막 좋아하는 표현을 잘 못하잖아. 글에서도 그래. 많이 수정해서 이만큼 됐어. 우습다. 즐거웠어. 고마워!"
고맙다는 말을 왜 두 번이나 하는 걸까? 내가 더 고마운데. 영숙이 마흔여덟 번째 답변을 작성하면서도 즐거웠으면 좋겠다. 어쩌면 열 번도 되기 전에, "딸아. 이건 좀 그렇지 않니?"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Q. 엄마, 엄마의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 기억을 얘기해줘.



A. 비가 오네. 부슬부슬. 이럴 때면 떠오르는 기억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한 가지 행복했던 기억을 얘기해볼게. 옛날 우리 집에는 빨간 미싱이 있었어. 재봉틀을 우리는 미싱이라고 했지. 어머니는 미싱으로 나와 동생의 옷을 만들어 주시곤 했어. 오래된 한복 치마를 뜯어서 여름 원피스를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 아버지 와이셔츠를 가지고 동생의 원피스를 만들어 주신 적도 있는데, 어디선가 떼어낸 카라로 원피스에 카라를 붙여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예쁜 옷을 만들어 주신 거야. 카라가 잔주름으로 가득해서 나풀거렸지.     



그보다 훨씬 전, 1, 2학년 즈음일까? 마을 언니들이 동네 애들을 모아 연습시켜서 공연을 열어주었어. 무용이랑 노래를 가르쳐서 말이야. 무용은 율동 같은 거고 노래는 순전히 동요야. 어른들을 초대해서 읍민관에서 공연을 한 거야. 읍민관은 읍에 사는 주민들을 위한 건물인데, 무대가 있었어. 공연하니까 다들 좋아하셨지. 다른 애들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데, 우린 무용복을 입었어.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맡겨서 우리 옷을 맞춰주셨거든.     


‘샤’라는 옷감으로 만들었는데, 발레복처럼 치마가 360도로 촥 펼쳐진 민소매 원피스였어. 그런데 동생 것은 긴치마고 내 것은 짧은 치마인 거야. 나는 긴치마가 입고 싶었는데……. 긴치마는 입어본 적이 없어서 한번 입고 싶었나 봐.      



그 후에도 옷은 내 맘대로가 아니었어. 어느 해, 학교 운동회에 단체로 한복을 입게 됐는데, 내 한복을 만들면서 동생 것도 같이 맞춰주셨어. 동생은 초록 저고리에 빨강 치마, 나는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 그런데 내 치마는 불그죽죽했어. 안감을 초록색으로 넣은 거야 글쎄. 동생의 치마는 화사한 색을 뿜고 있는데…….     


그즈음 추석이 다가오자 어머니가 우리를 데리고 옷집에 가셨어. 주렁주렁 걸려있는 옷을 구경하다가 다른 색상을 띈 같은 디자인의 옷을 골라 주셨어. 민소매 원피스와 자켓(맞는 말인지 모르겠다.)으로 된 모직(?) 투피스였는데, 동생은 빨강색 나는 곤색(짙은 청색)이었지. 둘 다 빨강색을 입을 수는 없다는 걸 이해는 했지만, 난 탐탁지 않았어. 

    


시간이 흘러 6학년 때였어. 바바리코트가 생긴 거야.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일본에서 가지고 오셨는데, 나한테 딱 맞는다고 어머니가 사 들고 오신 거지. 동네에는 일본에 사는 친척을 둔 집이 몇 있었어. 일본에 갈 때는 차비라도 뺀다고 옷가지들을 사다가 팔고 그랬는데, 나중에는 코끼리 밥솥이 많이 들어왔지. 밥맛이 좋다고 일본 들어가는 사람이 부탁을 받아서 사들여 오곤 했었어. 

    

그건 그렇고. 그 바바리는 너무 밝지도 너무 진하지도 않은 회색에 넓은 카라가 달리고 에이라인으로 살짝 퍼진 마음에 쏙 드는 옷이었어. 게다가 방수였던 거야 감촉이 매끈매끈해. 방수 옷을 처음 봤어. 무지 비싼 옷 같았어. 당시 말로 고급이었지. 이런 옷을 입은 애를 본 적이 없었어. 그런 걸 나만 사주신 거야. 나 혼자 입고 다녔단 말이야. 그 당시는 휴대폰도 일기예보도 없던 때라 갑자기 비를 만나는 일이 즐비했는데, 그럴 때면 얼마나 좋았겠니? 뽐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속으론 으쓱하며 다녔을 거야. 그 옷은 지금까지도 기분 좋은 기억이지.      



어린 시절 행복을 옷에서 찾았던 여자들이 나 뿐만은 아니겠지 설마? 하하하. 이렇게 쓰고 나니 너희들한테 미안하다. 좋은 옷을 많이 못 사줘서…….       



나는 영숙이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하는지 잘 안다. 상의는 목이 깊이 파이지 않고 몸통이 달라붙지 않으며 총 길이가 짧은 것을 고르면 된다. 하의는 복숭아뼈 살짝 위로 올라오는 기장에 통이 좁지도 넓지도 않은 것이 있으면 입어보고 산다. 어린 영숙을 만났다면 나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카라가 달린 에이라인의 바바리를 입은 영숙을 상상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어쩌면 나는 영숙의 복장을 단조롭게 만든 최고의 범인이었을지도 모른다.  

   





☎ Behind


엄마, 외할머니가 왜 맨날 이모 옷만 더 예쁜 거로 만들어 주셨을까? 아무래도 이모가 더 예뻐서 그랬나 봐?

너희 이모가 예뻤지. 왜 그런 거 있잖아. 인형처럼 예쁘장하게 생기면 밝은 색 옷이 잘 받잖아. 화려한 것도 잘 어울리고. 좀 둔탁하게 생긴 사람은 색깔도 좀 무채색 같은 게 어울리고.      

사람한테 둔탁하다니, 엄마도 귀엽지 않았나? 지금 되게 귀여운데? 

아니야 귀엽지는 않았어.


그 옛날에도 엄마들이 애들 옷에 힘을 줬다니, 사는 건 다 똑같나 봐. 60년대에는 다 비슷한 옷을 입고 살았을 거로 생각했거든.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 같은?

지금처럼 옷이 흔하지는 않았지. 근데 특별하게 생각해서 해주는 경우가 좀 있었어. 우리 집이 막 잘 살지는 않아도 월급을 받잖아. 외할아버지가. 그 당시 공무원이었으니까. 돈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옷을 하나라도 사주게 된 거지 뭐.

     

엄마는 정말 좋았겠다. 바바리코트도 입고!

최고였지.      

그리고 엄마, 나 좋은 옷 정말 많이 입었어. 사진 봐봐. 투피스에 모자랑 세트에 황금 구두까지 신었잖아.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마.

그랬니? 알았어. 




본 게시물의 사진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