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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맏딸 Jan 07. 2022

영숙’s answer. 모슬포에 살던 어떤 소녀

엄마 인터뷰 2차__Q. 엄마의 고향 마을을 소개해 주세요.


       

어릴 적에는 영숙의 고향이 제주라는 것보다나의 외가가 제주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방학 때마다 한두 달씩 제주에 가 있었으니까그것은 어린이들의 세계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기 때문에방학을 지내고 나서 등교하면 왠지 우쭐해지곤 했다어른이 되고 나서야한때 어린이였던 영숙이 제주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몹시 궁금해졌다영숙에게 제주는제주 서남쪽의 작은 항구 마을 모슬포는꿈같은 방학이 아니라 어린 시절 그 자체였을 테니까.



    


      



Q. 엄마엄마의 고향 마을 모슬포는 어떤 곳이었어?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우리들은 유치원에 모여 살아요.

샛별 유치원- 샛별 유치원-

착하고 귀여운 아이들의 꽃동산!”     





가끔 마음속으로 흥얼거리지. 그 옛날 모슬포에 유치원이 있었거든. 마을 외곽에 육군, 공군 미군 부대가 있었는데, 공군 부대에서 교회와 유치원을 세운 거야. 운영이 어려웠던지 중간에 문을 닫아서 나는 졸업하지 못했어. 하지만 이모가 그 유치원을 다녔어. 다시 문을 열었거든.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그 부대에서 야간 중·고등학교를 운영한다는 걸 알게 됐어. 친구 몇이 그 야간 학교에 다니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거든. 재능 많은 애들이었는데……. 그 친구들은 그나마 나아. 국민학교 때 자퇴한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마을 형편이 이랬지.     





마을에 초가집이 많았어. 골목골목 대문도 없는 초가집들이. 골목 어딘가에서 부지깽이로 파마를 해 주겠다며 내 앞머리를 돌돌 말아 홀라당 태워 먹은 언니가 외할머니에게 혼나고 있고. 한편에선 무슨 다툼이 그리 심했는지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두 여자아이가 보여. 그리고 왕잠자리 꼬리를 떼어낸 후 보리 낭껭이(지푸라기)를 끼워주고 날려 보낸 동네 오빠도 보이네.





아직도 모슬포에 가면 그런 모습이 그려져. 소꿉놀이하던 우리 집 뒤꼍도 보이고. 옆집 오빠네는 어머니 혼자서 남매를 키웠는데 한가하게 앉아 계시는 걸 본 적이 없어. 밭농사를 지어서 그 오빠를 대학까지 보냈지. 참들 억척스러웠어.     


제주도엔 논이 없었더랬어. 전부 밭농사였고 물질(해녀 일)을 겸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지. 초등학교 들어갔을 무렵인가. 언니들 따라 바닷가에 갔는데 모두 돌을 뒤집는 거야. 나도 따라 하다가 소라를 잡았어. 기억은 거기서 끊겼지만, “언니야, 이거 봐! 이거 봐!” 하며 좋아했겠지? 언니들은 오분자기(전복 모양의 전복보다 작은 것)도 잡았고.     





옛날엔 해산물이 그렇게 흔했어. 요즘은 아마 바다에 들어가기 전엔 보말(고동 비슷한 거)밖에 못 잡을 거야. 그것도 맛있어. 보말죽도 팔더라. 여름밤에는 목욕하러 신영물에 몰려가곤 했어. 공동 빨래터야. 아이들이 세숫대야를 들고 가기도 했지. 그걸 손으로 잡고 팔을 뻗어 물에 띄우고 발을 통통거리며 헤엄을 배웠던 거야.     

그곳을 지나면 축강이라는 부둣가가 나오지. 작은 고깃배들이 묶여있고 식당이 나란히 붙어 있었어. 언젠가 가보니 횟집이 많아졌더라? 지금은 골목이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뿐이지? 옛날엔 아이들이 많아서 모두 골목에 몰려나와 놀았어. 고무줄놀이, 공치기, 우리 집에 왜 왔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 매일같이 동네가 떠들썩했지.     





어느 날 언니들을 따라 우르르 동네 외곽지대로 나간 거야. 외할머니 허락도 받지 않고. 모슬봉이 보이고(모슬봉이란 건 나중에야 알았지) 그 앞에 넓은 들판이 보였어. 들판을 돌아다니다 고개를 들었는데, 하늘 가득 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는 거야. 그 장엄함이 날 내리 짓누르고 있었어. 무서웠어.      


그걸 잊고 노을을 아름답게 바라보기도 하고,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면서 세월이 지난 거야.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시 유년의 노을이 다시 떠오르며 저녁 하늘을 멀리하고 살았어. 지금은 조금씩 회복해내고 있지.     





어느 날은 식구들끼리 어딜 좀 갔다가 걸어 온 적이 있었거든. 버스가 지나가는데 그 안에서 한 아이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드는 거야. 나도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어. 학교에서 손 흔들어주기 캠페인을 한창 벌이던 때였거든. 차 타고 가면서 창밖에 사람이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 주라고. 나도 배운 대로 그러곤 했어. 그런데 이번은 거꾸로야. 늘 차 안에서 먼저 손을 흔들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밖에서 답해주는 거야. ‘늘 내가 주어가 되는 건 아니구나, 남이 주어가 될 수도 있는 거구나. 세상이라는 건 그런 거네.’하고 처음 느꼈어. 참 기분이 묘했지.     




초등학교 6학년이던가? ‘반하’라는 약초를 캐러 친구들과 밭으로 돌아다닌 적도 있었어. 학교 재정에 보태려는지 그걸 한 됫박씩 캐오라고 해서 그랬던 거야. 고구마 방학이라고는 들어봤니? 모슬포엔 고구마를 많이 심었는데, 고구마 수확 철엔 하룬가 이틀인가 방학을 했어. 바쁜 일손을 도우라고. 어른들이 수확하고 난 고구마 줄기를 다시 뒤집으면 한입 고구마 같은 게 몇 개씩 달려 있곤 했어. 그걸 따는 것도 참 재미있었지.     





모슬포엔 화교인이 직접 하는 중국집도 있었어. 외할아버지가 자장면과 야끼만두(군만두)를 사 주시곤 하셨지. 탕수육은 무리이던 시절이었어. 쌀집도 있었고 약국도 있었고 사진관도 있었어. 빵집도 기억나. 오스카 빵집이었나? 어쩌면 어린 시절은 이렇게 생각이 잘 나지?     


그 요망진(야무지다는 뜻) 친구들, 언니들 옛 생각 하면서 다들 잘살고 있으려나. 내년에 모슬포에 가면 또 돌아볼 생각이야. 내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아직도 우리 동네인 그곳을. 그리고 송악산에 가서 산방산과 용머리의 풍경도 바라보고 올 거야. 멀리서 바라보는 그쪽 해안가가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몰라. 인스타에서 보니까 멋있는 카페도 있던데 거기서 차도 한잔 마시고.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제주에 간다출장일 때는 어쩔 수 없지만여행일 때는 대체로 서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애월을 지나 협재를 지나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모슬포에 가 닿는다모슬포에는 영숙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함께 버무려져 있다그래서 혼자 가거나 남편과 갈 때보다영숙과 함께 갈 때 더 설렌다그곳에 갈 때 마다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말은 더더욱 많다내년 4월이 기다려진다          



☎ Behind     

엄마, 그 노을 진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감격한 거 아니었을까?

아니야. 좋은 기분은 아니었어. 말 그대로 무섭다고 했잖아. 그런 쪽이었어. 아기였으니까 장엄하다는 말은 몰랐지. 나중에 살다 보니까. 그 말 하고 느낌이 같더라. 

몇 살 때였는지는 기억나?

글쎄, 한 일고여덟 살이었던 것 같아.

그게 엄마의 마음에 무슨 영향을 정말 미쳤을까?

그건 잘 모르겠어.       


버스에 탄 아이한테 손 흔들어주고 나서는 뭔가 깨달은 게 있었던 거야?

그전에는 나 자신밖에 몰랐던 것 같애. 상대방의 마음 같은 건 생각을 안 해봤던 거지. 원래 내가 버스 안에서 사람들한테 손을 흔들어줬었는데, 처음으로 남이 흔드는 걸 본 거잖아. 내가 했던 일,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던 일을 딴 사람이 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 

별로 안 좋은 느낌이었어?

아니, 새로웠지. 남의 입장도 생각해 보고.

엄마는 남들에게 평범할 수 있는 상황을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응.       


그리고 엄마, 제주말로 고구마를 감자라고 부르지 않았어?

고구마는 감자라고, 감자는 지슬이라고 불렀다고 알고 있거든.

나 친구들한테 이 얘기 맨날 하고 다녔는데…….

글쎄. 그랬던 것 같은데, 방학은 '고구마 방학'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학교니까 표준말을 썼을 거야. 애들도 표준말은 다 알고 있었으니까.

집에서는 고구마를 감자라고 부르긴 했던 거야?

그건, 엄마도 모르겠다.

헐, 그렇구나.

     

엄마 나도 송악산에서 바라보는 산방산 정말 좋아해.

어, 그렇지? 그래, 진짜.

송악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휴식년제로 막혀있었는데 이제 개방됐대. 

내년에 우리 같이 거기 가볼까?

그래-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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