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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연_1 08화

인연은 언제 끝나는가

02 멀어졌다고 사라진 건 아니다

by 현루

인연은 우리 삶에서 마치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물러가는 듯한 성질을 지닙니다.

가까이에서 깊이 만나던 순간들이 있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멀어질 때가 있고, 물리적 혹은 감정적 거리가 벌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멀어진 인연은 진정으로 사라진 것일까요?

이 질문은 인연의 본질과 지속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듭니다.

멀어진다는 것은 우선 가시적인 거리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서로의 일상에서 점점 떨어져 나가고, 대화와 접촉이 줄어들며,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집니다. 이런 변화는 마치 인연의 끝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멀어진다는 사실이 인연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인연은 단순히 물리적 접촉이나 빈번한 소통에 의해서만 유지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인연의 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내면 깊은 곳에 각인된 기억과 감정의 흔적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내면의 연결고리는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지속될 수 있으며, 그 인연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멀어진 인연은 우리 삶의 지층 속에 잠재된 기억처럼 존재합니다.

때로는 잊힌 듯하지만, 순간의 자극이나 생각에 의해 불현듯 떠오르며 그 존재를 드러냅니다.

그 기억들은 단순한 과거의 흔적을 넘어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인연이 멀어졌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오히려 우리 존재와 깊이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멀어진 인연은 때로 우리에게 새로운 형태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직접적인 만남이나 대화가 줄어들어도 마음속에서 이어지는 관계, 혹은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는 관계로 남아 삶의 방향과 감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측면에서 인연은 단절보다는 변화하는 연결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멀어진 인연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인연 자체가 우리 내면의 ‘경험’과 ‘의미’로 환원되기 때문입니다.

즉, 만남과 관계가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은 우리 삶에 흔적을 남기며 끊임없이 의미를 생성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삶을 성찰하고 이해하는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이와 같이 멀어졌다고 인연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연의 경계와 지속성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합니다.

인연은 ‘유형의 관계’에서 ‘무형의 영향력’으로 변모하며, 우리 존재를 구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층위로 남습니다.

이로써 인연은 단순히 현재의 상태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실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멀어진 인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거리와 시간의 간극이 생겼다고 해서 그 인연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잊어버리기보다는, 그 인연이 우리 삶에서 지닌 내재적 의미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 인정은 인연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그 인연과 관계를 이어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멀어진 인연이 우리 삶에 남기는 흔적은 때로 아프고 복잡한 감정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그 감정들은 우리 존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인생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그래서 멀어졌다고 해서 인연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우리 내면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는 ‘살아있는 흔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연이 멀어짐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삶의 무상함과 영속성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보여줍니다.

인연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지속되며, 그 속에서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변화하는 삶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글은 인연의 거리감과 지속성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인연이 멀어짐에도 그 본질이 사라지지 않음을 성찰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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