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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장애인 前

회상

by 현루


아침 공기를 가르며 도량석 소리가 울려 퍼지던 날들이었다.


나는 법당에서 기도하고, 불공을 준비하고, 염불을 읊조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고요 속에 머무는 일이 익숙해졌고,
나는 이제 어느 정도 ‘산중의 삶’에 물들었다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던 중, 이상한 감각이 왼쪽 머리에서부터 밀려왔다.


얼핏 피곤한 줄 알았지만, 손끝의 감각이 점점 사라지고, 발끝까지 저릿함이 번졌다.
손바닥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무릎이 휘청이며 힘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안의 ‘고요’가 무너져내리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동네 병원 의사는 말했다.
“큰 병원으로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황망히 짐을 꾸려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는 뇌졸중.


의사는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내 안에서는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일어났다.
‘이렇게 건강하게 살았는데, 뇌졸중이라고?’

담백하게 나물 반찬만 먹고, 산공기 마시며 명상하고, 매일 선무도로 몸을 단련했다.
흡연, 음주는 애초에 멀리했고, 잠도 규칙적으로 자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랬는데 왜.

그제야 떠올랐다.


할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던 기억.
긴 간병 끝에 돌아가셨던 그 시간들이 아련하게 되살아났다.
그 피가 내게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력이라는 단어가 내 삶을 비집고 들어왔다.

입원 수속을 밟고, 검사를 받았다.
병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절에서 함께 지낸 스님들과 신도들이 병문안을 왔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들려온 말은 차가웠다.
“전생에 죄가 많았나 보지.”
“현생에서 업을 많이 지었겠지.”

그 말들은 마치 차가운 비수처럼 내 가슴을 찔렀다.
고요한 내면을 닦기 위해 출가한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다.


나는 병자였다.
단순히 아픈 몸이 아니라, 세상의 시선 앞에서 외롭게 선 병자였다.

며칠 후, 다행히 경미한 뇌졸중이라 병원에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사찰로 돌아갔다.
그러나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앉는 것도, 염불을 읊조리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성대의 변화와 통증과 저림 증상이 후유증으로 남았다.
가사(袈裟)를 입고 앉았지만, 마음은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었다.

회주 스님과 상의 끝에
“잠시 내려가게. 지금은 몸을 살피는 게 먼저일세.”

신도들 역시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쉬움과 죄송함을 가슴에 안고,
다시 이 길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남긴 채 산을 내려왔다.


이제는, 나를 돌봐야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재활을 하던 중에 두 번째 고통이 찾아왔다.
"뇌출혈" 재발이었다.


갑작스러운 두통과 코피와 함께 쓰러졌고, 의식이 아득해졌다.
병원에 실려갔을 때, 이미 좌측 편마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영영 산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장애인이 되었다.
왼손은 더 이상 합장을 할 수 없었고,
발은 다시는 도량을 밟지 못했다.

무너져 내렸다.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내 안의 산문이 닫히는 느낌이었다.
산에서 다져온 수양이 이 아픔 앞에서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수행이 있었기에 나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비록 몸은 부서졌지만, 마음까지 무너지게 둘 순 없었다.

환속 후, 세속의 삶은 낯설었다.
휠체어에 앉아 병원 복도를 지날 때면,
예전 도량의 마당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이제, 세속에서도 또 다른 고요를 찾아야 했다.
그 고요는 움직이지 못하는 몸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수행 중이었다.
비록 법당이 아닌 방 안에서,
스님의 가사가 아닌 사복을 입고 있었지만,
고통과 마주하는 나날은 수행 그 자체였다.

나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다만 그 길은 이제 조금 더 아프고,
조금 더 더딘 걸음일 뿐이다.
그러나 분명히, 나는 또 다른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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