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옮기며 이 낯선 지역에 자리 잡았다.
새로운 곳에서의 삶은 막막했다.
휠체어를 타고 낯선 거리를 오가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그러던 중, 나보다 일곱 살 위인 형님뻘 되는 분을 알게 되었다.
그는 혼자 지내는 내 처지를 알고 종종 집으로 찾아와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짧은 대화와 따뜻한 미소는 외로움으로 굳어가던 내 일상에 작은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 방문들은 단순한 만남 이상의 위로였다.
고마운 마음에 나는 그를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
한 손으로 싱크대를 짚으며 허둥대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나름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였다.
서툰 솜씨로 차린 밥상이지만, 함께 밥을 먹으며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은 소중했다.
그렇게 1년 넘게 관계가 이어졌고, 서로에게 익숙한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형님이 불쑥 제안을 했다.
“이번엔 내가 사줄게. 같이 밖에서 밥이나 먹자.”
처음엔 망설였다.
병원 다니던 시절, 휠체어로 식당에 들어가려다 좁은 문이나 협소한 화장실 때문에 곤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괜히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형님은 이미 내 걱정을 읽은 듯했다.
“휠체어 진입이 가능한 샤부샤부 집을 알아봤어. 걱정하지 마.”
그의 말에 마음이 조금 풀렸다.
그래도 확실히 하고 싶어 직접 식당에 전화했다. 직원은 화장실이 넓고 내부 공간도 충분하다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입구에 세 칸 계단이 있다는 말에 마음이 철렁했다.
“역시 안 되겠구나.” 포기하려던 순간, 사장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점심시간만 피해서 오시면 직원들이 휠체어를 들어드릴게요.
오실 때 전화 한 통만 주세요.” 그 말은 차갑게 굳었던 내 마음을 녹였다.
누군가의 배려가 이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그 순간 새삼 느꼈다.
며칠 뒤, 형님과 약속을 잡고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에 식당으로 향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였지만, 휠체어를 밀며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형님은 땀을 흘리며 내 곁을 지켰다.
식당에 도착해 전화하자, 건장한 청년 세 명이 문을 열고 뛰어나왔다.
그들은 말없이, 하지만 능숙하게 휠체어를 들어 계단 위로 올려주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이미 식당 안에 들어선 듯 안도감을 느꼈다.
낯선 이들의 손길이 내게 세상과 연결되는 다리였다.
식당 안은 넓고 탁 트여 있었다.
손님은 두 테이블뿐이라 조용했고,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오랜만에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뜨거운 샤부샤부 냄비 앞에서 형님과 마주 앉아 고기를 건지고, 야채를 넣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국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 고소한 냄새, 그리고 따뜻한 음식이 주는 위안이 내 마음을 채웠다.
그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오랜만에 누리는 잔치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스치는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도움을 받을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엔 그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날, 나는 깨달았다.
도움을 받는 것이 꼭 나를 작게 만드는 건 아니다. 형님의 제안, 사장님의 배려, 청년들의 묵묵한 손길은 모두 나를 위해 기꺼이 움직여준 이들의 마음이었다.
우리는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세상의 일부다. 서로가 없으면 완전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끔은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다.
그 작은 도움 속에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다.
그날 이후로 외식을 다시 시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샤부샤부 한 끼는 내 안에 선명히 남아 있다.
형님과의 대화, 사장님의 따뜻한 목소리, 그리고 휠체어를 들어준 청년들의 힘.
그 모두가 함께 만든 순간이었다.
그 경험은 단순한 외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손을 잡고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을.
그날의 첫 외식은 내게 그런 세상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