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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네일아트가 남긴 선물

by 현루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매년 장애인의 날이 있다는 것을.


집에만 머물며 세상과 멀어져 있던 어느 날,

지역 복지관 밴드에 가입해 둔 곳에서 행사

공지가 올라왔다.


오랫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터라, 호기심이 일었다.

바람도 쐴 겸, 무작정 참여해 보기로 했다.


장애인 콜택시를 예약했지만, 그날따라 대기 시간이 길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하려 했지만, 결국 시간을 놓쳐 배고픔을 참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은 활기로 가득했다.

한궁 체험, 인생 네 컷 사진 촬영, 슐런 부스,

그리고 네일아트 부스까지 다양한 코너가 사람들을 맞이했다.


나는 휠체어를 밀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웃음소리와 사람들의 대화가 뒤섞인 그 공간은 오랜만에 느끼는 생기였다.


그러다 네일아트 부스가 눈에 들어왔다.

마비된 왼손을 내려다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손에게도 작은 선물을 주고 싶다고.

모 대학 뷰티학과 학생들이 봉사자로 나와 정성껏 손톱을 다듬고 네일 아트를 하고 있었다.


“어떤 색을 원하세요?”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빨간색이요.” 선명한 빨강을 고른 순간, 내 생애 첫 매니큐어, 첫 네일아트가 시작되었다.


마비된 손 손톱 위에 붉은색이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그 작은 변화는 내게 낯선 설렘을 안겼다.
몇 시간 동안 행사장을 돌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손에는 새빨간 네일아트가 빛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 손을 바라보니, 왠지 모를 미소가 밀려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이 매니큐어는 단순히 칠하는 방식이 아니라, 덧바르고 굳히는 젤 네일이었다.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리무버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전문 네일숍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두기로 했다.

이 빨간 손톱이 내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했다.


그 손으로 병원에 가고, 미용실에 들르고,

동네에서 볼일을 봤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 손톱에 머물렀다. “이쁘시네요,”라는 말이 낯선 이들로부터 들려왔다.


이 나이에 ‘이쁘다’는 말을 듣다니, 쑥스럽지만 웃음이 터졌다.


그 한마디는 작은 화제를 낳았고, 어디를 가든 대화의 물꼬를 텄다.


스스로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빨간 손톱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나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작은 다리였다.


두 달이 넘도록 그 네일은 내 손에 남아 있었다. 손톱이 자라며 색이 조금씩 벗겨졌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내게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은 때로 단조롭고 답답하지만, 그날의 빨간 네일아트는 내게 예상치 못한 기쁨을 안겼다.


작은 변화 하나가 이렇게 큰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날 배웠다.


삶의 재미는 이런 순간에서 온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 조그만 행복,


그것이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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