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의 답답함을 잊게 해 주고, 집 안에서 보내는
긴 시간을 채워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처음에는 네이버 블로그에 서평, 짧은 시, 에세이를 올리며 소소한 기쁨을 찾았다.
내 글을 누군가 읽고 공감해 준다는 사실이 조용한 일상에 작은 빛을 더했다.
그러다 우연히 ‘브런치 스토리’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작가’라는 단어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호기심에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니, 문득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신청서를 작성해 보냈고, 며칠 뒤 승인 메일이 도착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몰라 기존에 썼던 글들을 올리며 감을 익혔다.
그러다 ‘브런치북’이라는 기능을 발견했다.
내 글을 책처럼 묶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열정만 믿고 덤벼들었지만, 기획 없이 시작한 탓에 금세 흐지부지되었다.
서랍 속에 미완성 원고들이 쌓였다.
시작은 했지만 끝내지 못한 흔적들이 내 서툰 도전을 말해줬다.
그 실패는 나를 가르쳤다.
연재를 완성하려면 신중한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 내가 진심으로 자신 있는 주제를 골라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몇 화를 미리 써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시행착오 끝에 ‘인연’과 ‘너라는 행성을 응원해’라는 두 브런치북을 완성했다.
각각 20화를 넘기며, 7월에는 ‘요즘 뜨는 브런치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그 순간, 솔직히 들떴다.
구독자가 갑자기 늘고, 작가 소개란에 내 이름이 박힌 걸 보니 괜히 ‘나도 뭔가 된 사람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의 도취였다.
플랫폼을 더 알아갈수록, 인기와 순위에 얽매이는 게 허망하다는 걸 깨달았다.
라이킷을 주고받으며 맞구독을 하는 분위기, 좋아요가 많다고 해서 꼭 좋은 글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결국 진짜 글은 브런치팀이 알아서 선별하고, 전문가들이 출간 제안을 하리라는 믿음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라이킷을 주고받는 관계가 내 글쓰기를 흐리게 한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글은 나를 배신한다.
그래서 댓글을 쓰는 일도 조심스러워졌다.
탈도 말도 많은 듯하여, 오로지 글쓰기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이제 나는 단순하게 글을 쓴다.
인기나 순위 같은 외부 기준은 내려놓았다.
오직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한다.
그러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글쓰기가 다시 즐거워졌다.
휠체어에 앉아 책상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 나는 내 한계를 넘어선다.
몸은 제약 속에 있지만, 글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보니 밤을 꼬박 새웠다. 건강을 위해 숙면이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후회는 없다.
글을 쓰는 이 순간이 내게 가장 충실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설령 글 쓰다 건강이 더 나빠지거나 극한의 상황이 온다 해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내 삶의 이유다.
내가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유일한 무언가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은 때로 단조롭고 답답하다.
하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다르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떨리고, 문장을 고치는 데 시간이 걸려도, 나는 그 과정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이다.
내 글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브런치북을 완성하며 나는 깨달았다.
완벽한 글을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히 쓰는 게 더 소중하다.
내 글은 내 삶의 흔적이다.
마비된 손으로, 느리지만 꾸준히 쌓아가는 문장들은 나를 세상과 이어준다.
그 문장들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발견한다.
글쓰기는 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내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고,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다.
휠체어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작은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걸로 내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느리지만, 내 속도로. 그리고 그 속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