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함께" 작가 소개 및 브런치북 리뷰
교사
♡작가소개
어린이를 잘 이해하는 선생님이자, 선생님들의 선생님이기도 합니다.
놀이학교 원장이며 그림책을 좋아하는 심리 상담사로 성장하는 공간, growing_room 을 가꾸고 있습니다.
작은 친구,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어른 친구이자
국제 이마고 커플 테라피 전문가
CIT PREPARE ENRICH 국제공인 상담사 청소년상담사
임상심리사
미술치료 / 놀이치료 상담가
그림책 테라피스트
그림책 큐레이터로 함께 성장하는 동행자입니다.
이 글은 3세부터 7세까지 유아들을 만나는 선생님을 위한 실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아동 심리와 교육적 이해를 바 탕으로 한 365일 감성교육 에세이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어른의 시각으로 이해하기 힘든 그들만의 시선과 마음이 닿는 세계가 있습니다.
쉽지 않은 그 세계로의 연결을 위해 매일 하나의 장면에서 하나의 감정, 하나의 관계를 따라가며 아이의 마음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그곳에 함께 머 무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종전의 양육서가 부모 대상 중심이라면 이 글은 다정하고 좋은 유아 선생님이 되길 희망하는 모든 유아 교사를 응원하는 글입니다.
물론 유 아기의 아이를 둔, 혹은 유아기 어린이들을 이해하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도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https://brunch.co.kr/@growingroom/43
〈아이를 바라보는 하루〉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마음의 속도’
작가가 책소개에서 밝힌 핵심은 명확하다.
이 책은 단순한 유아교육 지침서가 아니라,
작가는 ‘가르침’보다 ‘이해’를 먼저 두고, ‘교육’보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3세부터 7세까지 유아를 만나는 선생님을 위한 실제 에피소드”라는 문구는, 이 책이 교실의 현실 속에서 피어난 감정의 기록임을 말해준다.
〈특별한 손님〉은 바로 그 철학이 가장 따뜻하게 드러난 장이다.
그 초대는 단순한 말놀이가 아니라, 아이가 마음을 열고 관계를 허락하는 ‘감정의 문’이다.
블록놀이가 열어주는 마음의 건축
글의 첫머리는 아침의 분주한 교실 풍경으로 시작된다.
아이들이 자유놀이에 몰두하는 장면은 ‘일상의 소음’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그 안에서 아이의 내면 구조를 읽어낸다.
“이건 우리 집, 이건 동물원, 이건 자동차...”
단순한 명명 행위 같지만, 작가는 그 이름 속에서 아이의 상상력과 자아의 확장을 본다.
블록을 맞추는 행위는 물리적 조립이 아니라, 마음의 구조물 쌓기다.
작가가 말하듯, “같은 블록이라도 아이마다 다르게 해석”되는 이유는, 아이마다 삶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글의 힘이 발휘된다.
작가는 교사지만, 글에서는 하나의 ‘참여자’이자 ‘손님’으로 머문다.
우리 집에 놀러 와요’라는 초대의 언어
이 한 문장은 이 글 전체의 심장이다.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아이에게 집은 ‘안전함의 상징’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한다는 것은, 마음의 깊은 곳까지 함께 들어와 주기를 바라는 행위다.
이 장면에서 작가는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않으면서도, 아이의 순수함을 한껏 살려낸다.
작가는 즉각적인 응답 대신, ‘엄마와 먼저 이야기하자’며 조심스럽게 선을 그린다.
아이의 마음을 즉시 받아들이기보다, 그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작가는 “아이의 진심 어린 초대에 바로 응할 수 없었지만, 그날 나는 아이의 특별한 손님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교육의 본질이 ‘교실’이 아니라
‘관계’에 있음을 단 한 줄로 보여준다.
교육을 넘어선 ‘공감의 철학’
〈특별한 손님〉의 중반부는 단순한 교실 이야기에서 ‘놀이의 철학’으로 넘어간다.
“자유놀이는
아이들에게 가장 본능적이고 창의적인, 그리고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진실한 표현의 장입니다.”
이 문장에서 작가는 교육학자의 목소리를 내지만, 냉철한 이론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다듬어진 감성적 통찰을 제시한다.
아이의 블록놀이는 현실의 축소판이며, 감정의 언어다.
이러한 시각은, ‘유아교육’을 ‘예술 행위’로 확장시키는 작가의 사유를 엿보게 한다.
결국 작가는 말한다.
“선생님은 이 순간, 아이의 세계에 초대받은 특별한 손님이 됩니다.”
이 구절은 이 글의 철학적 종결이자, 정서적 절정이다.
작가는 교사의 위치를 가르치는 자에서 배우는 자로 전환시킨다.
아이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마음의 공존이다.
부드러움 속의 절제, 일상의 언어로 쓴 시
〈특별한 손님〉의 문장은 교재형도, 문학형도 아니다.
그 사이에 있다.
짧은 문장, 반복된 표현, 단순한 어휘.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진심의 울림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그날 나는 아이의 특별한 손님이 되었습니다.”
이 문장은 마침표 하나로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이 절제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함이 아니라,
독자가 여운을 느낄 여백을 남기기 위해서다.
또한 작가는 직접적인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의 대사와 짧은 서술로만 감정을 유도한다.
그 덕에 글은 자연스럽게
독자의 마음을 열고,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이 ‘초대받은 손님’처럼
느끼게 만든다.
관계의 균형, 존중의 미학
이 글은 단순히 ‘유아교사의 하루’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현대 교육이 잃어버린 가치, 관계의 상호성이 있다.
“놀이 속에서 관계는 자라고,
그 관계는 아이의 말 한마디, 눈빛, 손짓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은 교사와 아이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원형을 말해준다.
열린 질문, 닫히지 않는 관계
마지막 문장은 독자에게 묻는다.
“아이의 세계에 초대받은 적 있나요?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였나요?”
이 질문은 단지 교사들을 향한 것이 아니다.
“나는 타인의 세계에서
어떤 손님으로 머물고 있는가?”
작가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스스로 관계의 방식과 감정의 속도를 돌아보게 한다.
그 여운이 이 글을 단순한 ‘유아교육 에세이’가 아닌, ‘인간학적 성찰문’으로 끌어올린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4살 아이의 손을 잡고 블록 옆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우리 집에 놀러 와요.”
그 한마디가 이렇게 깊고 따뜻할 줄 누가 알았을까.
작가는 교실의 풍경을 그리지만, 사실은 인간의 마음 풍경을 그린다.
아이의 초대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관계의 시작이다.
그 초대 앞에서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세계에 초대받아 있나요?”
〈특별한 손님〉은 아이를 통해 ‘존중’을 배우고, 관계의 문턱에서 머무는 지혜를 알려주는 글이다.
말의 강요보다 기다림의 미학을, 교육의 권위보다 존재의 따뜻함을 전하는 에세이.
한 아이의 말 한마디가, 한 교사의 하루를 바꾸고, 결국 한 인간의 내면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