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소리, 이두(吏讀)의 첫 씨앗
문천교 위에서 아버지 원효의 눈빛을 마주한 이후, 설총의 삶은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단순히 학문에 정진하는 차원을 넘어, 그에게는 이제 거역할 수 없는 소명이 생겼다.
그것은 하늘 높이 떠 있는 한자라는 별을 지상으로 끌어내려, 흙먼지 묻은 백성들의 손에 쥐여주는 일이었다.
서라벌의 여름은 물러가고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요석궁의 서고를 채울 무렵, 설총은 산더미처럼 쌓인 죽간과 종이 뭉치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어찌하여 우리는 남의 나라 말로 우리의 슬픔을 적어야 하는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적기 위해 왜 수만 리 밖 타국의 복잡한 획을 빌려와야 하며, 그마저도 우리 입에서 나오는 장단과 맞지 않아 쩔쩔매야 하는가."
설총은 붓을 쥐고 괴로워했다.
당시 신라에서 쓰이던 한문은 지극히 세련되고 논리적이었으나, 신라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담아내기엔 너무도 경직되어 있었다. 한문은 '주어-서술어-목적어'의 순서로 흐르지만, 신라의 말은 '주어-목적어-서술어'로 흘렀다. 게다가 우리말에만 존재하는 미묘한 조사와 어미는 한자의 딱딱한 틀 안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백성들은 관청에 억울함을 호소하려 해도, 자신의 진심이 문자가 되는 과정에서 왜곡되는 것을 지켜보며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설총은 아버지가 저잣거리에서 부르던 무애가의 장단을 떠올렸다.
그 투박한 가사들은 한문의 문법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생생한 삶의 리듬이었다.
그는 결심했다. 한자의 모양과 뜻을 빌려오되,
그 배열과 문법은 철저히 신라의 소리를 따르는 새로운 체계를 만들기로. 그것이 훗날 세상을 바꿀 '이두(吏讀)'의 첫 번째 씨앗이었다.
작업은 고행(苦行)에 가까웠다.
설총은 매일 아침 요석궁의 담장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엿들었다.
장터에서 상인들이 흥정하는 소리, 농부들이 소를 몰며 지르는 고함, 여인들이 빨래터에서 나누는 은밀한 수다 속에 진정한 우리말의 골격이 숨어 있었다.
"어머니, 저는 오늘 '하다'라는 우리말의 끝맺음을 적기 위해 수십 번 붓을 들었다 놓았습니다.
한자의 '위(爲)' 자를 빌려오면 뜻은 통하나 소리가 살지 않고, '하(何)' 자를 쓰면 소리는 비슷하나 뜻이 망가집니다. 어떻게 해야 뜻과 소리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종이 위에 머물 수 있을까요?"
요석은 아들의 거칠어진 손을 보며 가만히 미소 지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원효가 남긴 화쟁(和諍)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총아, 네 아버지는 서로 다른 두 마음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가장 큰 자비라고 하셨다. 문자 또한 그러하지 않겠느냐. 한자의 뜻에 집착하지 말고, 그것이 우리말의 장단을 타게 해 보아라. 글자가 주인 노릇을 하려 들면 소리가 죽고, 소리만 앞세우면 뜻이 흐려진다. 글자가 소리를 섬기게 하고, 소리가 글자를 품게 하면 비로소 문(文)과 언(言)이 하나가 될 것이다."
요석의 조언은 설총에게 거대한 영감을 주었다. 설총은 한자의 획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뜻과는 무관하게 소리만을 빌려 쓰는 '차자(借字)'의 원리를 정립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우리말의 어미인 '-라'를 표현하기 위해 소리가 비슷한 '라(羅)' 자를 빌려 쓰고, '~에게'라는 뜻을 담기 위해 '중(中)'이나 '이(乙)'와 같은 글자를 독창적으로 배치했다.
어느 날 밤, 설총은 드디어 신라의 소리대로 적힌 첫 번째 문장을 완성했다.
'왕(王)이(乙) 님(任) 하(下) 시(是)니(尼)...'
한자로 적혀 있었으나, 그것은 명백히 신라의 말이었다. 설총은 전율했다.
비록 조잡하고 투박한 형태였으나, 이것은 신라의 혼이 처음으로 문자의 옷을 입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이 만든 이두를 사용하여 요석과 원효의 사랑 이야기를 짧게 적어 내려갔다.
'하늘 아래 달이 있고, 담장 안에 사람이 있으니, 그 그리움이 강물이 되어 세상으로 흐르노라.'
이 문장은 한문을 배운 학자들에게는 해괴한 낙서처럼 보였겠지만, 신라의 말을 쓰는 백성들에게는 그 어떤 시경(詩經)의 구절보다 선명하게 가슴에 와닿는 진실이었다.
설총은 자신의 붓끝에서 낯선 문자들이 숨을 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버지가 파계를 통해 얻은 자유가 문자로 승화되는 과정이었고, 어머니가 인고를 통해 지킨 사랑이 문명으로 꽃피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서라벌의 보수적인 유생들은 설총의 이러한 시도를 '성현의 문자를 모독하는 행위'라며 비난했다.
"어찌 고귀한 한자를 천한 백성들의 말투에 끼워 맞춘단 말이냐!"
라는 조롱이 쏟아졌다.
요석궁을 향한 압박은 더욱 거세졌고, 왕실 서고에서 설총이 빌려 가던 책들도 하나둘 제한되기 시작했다.
설총은 굴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더 낮은 곳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두를 들고 요석궁의 노비들과 관청의 하급 관리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자신이 만든 글자를 가르쳐주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수십 년간 까막눈으로 살았던 이들이 불과 며칠 만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고향의 부모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나으리, 제가 제 손으로 아들의 이름을 종이 위에 새겼습니다. 이것이 정녕 제가 쓴 글자입니까? 이제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늙은 노비의 손을 잡으며 설총은 확신했다.
자신이 걷는 길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문자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숨 쉬는 모든 이들의 공기가 되어야 함을 말이다.
그는 비난받는 천재가 되기를 자처했다.
아버지가 파계승이라 불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처럼, 설총 또한 이단아라 불리는 것을 훈장처럼 여겼다.
요석은 매일 밤 설총의 서고에 등불을 갈아 끼우며 아들을 지켰다.
그녀는 설총이 써 내려가는 이두의 획 하나하나가 신라의 뼈대를 세우는 기둥임을 알고 있었다. 원효가 마음의 벽을 허물었다면, 설총은 소통의 벽을 허물고 있었다.
부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 자비의 다리를 놓고 있었던 것이다.
설총은 이제 이두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구결(口訣)》의 기틀을 닦았다.
이것은 훗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서로 다른 말을 쓰던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까지 하나로 묶어주는 거대한 정신적 접착제가 될 것이었다.
"아버지, 당신의 박 소리를 저는 이제 문자로 고정했습니다. 당신이 부르던 그 노래가 이제 백성들의 붓끝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게 될 것입니다."
설총은 요석궁의 담장 위로 떠오른 달을 보며 다짐했다.
이제 씨앗은 뿌려졌다.
이 씨앗은 척박한 땅을 뚫고 자라나 천 년의 세월을 견딜 울창한 숲이 될 것이었다.
요석은 아들의 맑은 눈동자 속에서 원효의 미소를 발견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빚어낸 아이는, 이제 사랑 그 이상의 가치가 되어 온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밤은 깊었으나 요석궁의 붓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낡은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문명의 태양이 떠오르는 소리였으며, 갇혀 있던 백성들의 영혼이 문자를 통해 날갯짓을 시작하는 장엄한 서곡이었다.
설총의 이두는 그렇게 진흙 속에서 연꽃처럼 피어나, 신라의 하늘을 향해 향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