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서라벌의 시기, 공주를 향한 화살들

질투가 낳은 독설과 요석궁의 포위망, 무너뜨릴 수 없는 기개

by 현루

​설총의 이두(吏讀)가 관청의 하급 관리들과 저잣거리 상인들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져나가자, 서라벌의 공기는 미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지식이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시절, 백성들이 글을 읽고 자신의 권리를 적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기득권을 쥔 진골 귀족들에게는 공포와 같았다. 그들에게 설총은 단순히 '파계승의 자식'이 아니라, 질서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선동가였다.


​“보시오, 요석궁의 그 애송이가 한자를 갈가리 찢어 천한 것들에게 나눠주고 있소! 이는 성현의 도를 모독하는 일이요, 우리 신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반역이 아니오?”


​귀족들의 사교장인 포석정 근처에서는 매일같이 설총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원효의 파격적인 행보를 억눌러왔던 보수적인 유림과 승단은 이번 기회에 요석궁의 뿌리를 뽑으려 혈안이 되었다.

그들은 설총을 직접 공격하기보다, 그의 가장 큰 방패이자 버팀목인 요석 공주를 과녁으로 삼았다.
​서라벌의 거리에는 요석을 비방하는 괴문서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부정한 여인이 낳은 자식이 부정한 문자를 만드니, 나라의 장래가 어둡다’는 식의 악의적인 소문이었다.

요석궁의 식자재 공급이 끊기기도 했고, 궁을 지키던 병사들조차 귀족들의 눈치를 보며 태업을 부렸다.

화려했던 요석궁은 이제 고립된 섬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오후, 요석은 평소 친분이 깊었던 한 귀족 부인으로부터 서신 한 통을 받았다.

겉으로는 안부를 묻는 척했으나, 속내에는 비수가 숨어 있었다.


‘공주님, 이제 그만 아드님의 붓을 꺾게 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전하(무열왕)께까지 누를 끼치게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

라는 협박조의 조언이었다.
​요석은 서신을 천천히 접어 촛불 위에 올렸다. 불길이 종이를 집어삼키는 것을 보며 그녀의 눈동자는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이미 사흘간의 사랑을 택했을 때부터 이 모든 비난을 감수하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자식을 향한 화살만큼은 막아내야 했다.


​“상궁, 내 옷장을 열어 가장 화려하고 엄숙한 예복을 꺼내어라. 그리고 가마를 준비해라. 오늘은 내가 직접 대궐로 나가 부왕을 뵙겠다.”


​요석은 피하지 않기로 했다. 숨어 지낼수록 소문은 살이 붙고 진실은 가려지는 법이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정갈하게 머리를 올리고, 원효가 남긴 그 푸른 옥가락지를 손가락에 끼웠다. 그것은 그녀에게 사랑의 증표이자, 어떤 고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겠다는 결의의 상징이었다.

​요석의 가마가 대궐로 향하는 길, 어떤 이는 손가락질을 했고, 어떤 이는 가련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가마의 휘장 너머로 살짝 비친 요석의 옆모습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녀는 마치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장수처럼 당당했다.
​무열왕 김춘추는 편전에 앉아 딸을 맞이했다.

왕의 얼굴에도 근심의 그늘이 짙었다.

대신들의 상소가 산더미처럼 쌓여 왕권마저 위협받는 처지였다.


​“요석아, 네 자식이 만드는 글자가 서라벌을 시끄럽게 하고 있구나. 대신들은 그 아이를 유배 보내라 난리인데, 아비로서 내 마음이 오죽하겠느냐. 이제 그만 설총을 외진 곳으로 보내 학문에만 전념케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요석은 부왕의 발치에 엎드리는 대신, 똑바로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


전하, 제 아들이 깎는 것은 반역의 칼이 아니라, 전하께서 그토록 염원하시던 ‘하나 된 신라’를 위한 기둥이옵니다. 백성의 소리를 담지 못하는 정치가 어찌 만년을 가겠습니까. 제 아들은 아비 원효로부터 자비를 배웠고, 저로부터 인고를 배웠습니다. 그 아이의 붓을 꺾는 것은 신라의 미래를 꺾는 것과 같사옵니다.”


​요석의 목소리는 고요했으나 편전 전체를 울릴 만큼 단단했다.

그녀는 부왕에게 대신들이 올린 상소문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이두가 어떻게 나라의 행정을 투명하게 하고 백성의 충성심을 모을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파했다.

​왕과의 독대를 마치고 궁을 나서던 길, 요석은 자신을 가로막는 무리의 유생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요석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중 가장 기세등등한 청년 유생이 요석의 앞을 막아서며 독설을 내뱉었다.


​“공주라는 신분으로 어찌 파계승의 자식을 끼고돌며 성현의 도를 어지럽히십니까! 당신의 사랑은 신라의 수치입니다!”


​요석은 걸음을 멈추고 그 청년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분노가 아닌 깊은 연민이 서려 있었다.


선비여, 그대가 읽는 책 속에 ‘사랑’이라는 글자는 있어도 ‘사람’이라는 온기는 없는 듯하구려.

내 사랑이 수치라면, 굶주린 백성들이 제 사정을 적지 못해 눈물 흘리는 이 세상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오? 내 아들은 그 눈물을 닦으려 붓을 들었을 뿐이오. 당신들이 쌓은 그 높고 깨끗한 담장 아래서 썩어가는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 정녕 수치가 아니겠소?”


​요석의 일갈에 청년 유생은 말문이 막힌 듯 뒤걸음질 쳤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무리들도 요석의 서슬 퍼런 기개에 압도되어 길을 내주었다.

요석은 흐트러짐 없는 걸음으로 가마에 올랐다. 요석궁으로 돌아오는 길, 그녀는 비로소 참았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석궁에 도착하자 설총이 대문 앞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가 겪었을 고초를 짐작한 듯 붉어진 눈시울로 요석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저 때문에 어머니가 조롱을 당하시니 제 마음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차라리 제가 이두를 포기하고 조용히 산사로 들어가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요석은 아들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총아, 보아라. 담장 밖의 화살들이 날카로울수록 네가 깎는 기둥이 그만큼 단단하다는 증거란다. 그들이 시기하는 것은 네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네가 가진 진실이 그들의 가짜 세상을 무너뜨릴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나는 네 어머니이기 이전에, 네가 열어갈 새로운 세상의 첫 번째 백성이다. 그러니 멈추지 마라. 네 붓끝에 맺힌 것은 내 눈물이 아니라, 이 땅의 희망이어야 한다.”


​설총은 어머니의 품 안에서 다시금 전율했다. 요석은 단순히 자신을 지켜주는 담장이 아니었다. 그녀는 스스로 화살을 맞으면서도 아들이 나아갈 길을 비추는 등불이었다.

그날 밤, 요석궁 주변에는 여전히 적대적인 그림자들이 어른거렸으나, 서고의 등불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타올랐다.
​서라벌의 시기는 요석과 설총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오히려 그 압박은 두 사람의 결속을 강철처럼 단련시켰고, 설총의 문장은 더욱 날카롭고 명료해졌다.

요석은 어둠 속에서 홀로 차를 마시며 원효가 있는 방향을 향해 잔을 올렸다.


거사님, 당신이 춤으로 벽을 허물 듯, 저 또한 이곳에서 우리 아이를 위해 몸으로 벽을 막아서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당신과 나눈 사랑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요석궁의 밤은 깊었지만, 그 안에서 싹트는 변화의 기운은 이미 담장을 넘어 서라벌 전체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화살은 날아오고 소문은 흉흉했으나, 진실은 달빛처럼 고요하게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