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화쟁(和諍)의 빛, 갈등을 녹이는 사랑의 노래

찢긴 민심을 잇는 마음의 바느질, 원효의 사상을 현실로 꽃 피우다

by 현루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병합하고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지도 수년이 흘렀으나, 서라벌의 공기는 여전히 날 서 있었다.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울분이 뒤섞인 도시는 겉으로는 화려했으나 속으로는 곪아가고 있었다. 고구려 유민들은 북쪽 하늘을 보며 통곡했고, 백제의 선비들은 신라의 관직을 거부하며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조정 내에서도 파벌 싸움은 그칠 줄 몰랐다.

이때 설총은 국학의 수장으로서 왕실의 부름을 받았다.


​"설총아, 땅은 하나가 되었으나 사람들의 마음은 셋으로 갈라져 있구나. 네 아비 원효가 늘 말하던 '화쟁(和諍)'이란 것이 정녕 이 어지러운 세상에 답이 될 수 있겠느냐?"


​문무왕(무열왕의 뒤를 이은 왕)의 고뇌 어린 물음에 설총은 잠시 눈을 감았다.

화쟁. 다툼을 화합으로 녹인다는 그 거창한 말은 아버지 원효가 평생을 바쳐 설파한 진리였다. 설총은 요석궁의 서고에서 몰래 읽었던 아버지의 문장들을 떠올렸다.


​"전하, 화쟁은 서로 다른 것을 억지로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수만 개의 냇물이 각기 다른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오나, 바다에 이르면 모두 하나의 짠맛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신라에 필요한 것은 칼의 위협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하나의 큰 마음으로 흐르게 하는 '문장의 자비'이옵니다."


​설총은 결심했다.

아버지가 입으로 전했던 그 화쟁의 빛을, 이제는 자신이 정립한 이두와 유교적 덕목을 결합하여 구체적인 '상생의 제도'로 구현하겠노라고 말이다.

​설총은 가장 먼저 '화쟁당(和諍堂)'이라 이름 붙인 토론장을 열었다.

그곳에는 신라의 귀족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 출신의 지식인들을 대거 초빙했다.

처음에는 서로를 원수 보듯 하며 삿대질이 오갔다.


​"신라의 촌놈들이 우리 고구려의 기상을 어찌 알겠느냐!"


"망국의 백성들이 말이 많구나. 이제는 신라의 법도에 죽은 듯이 따르라!"


​욕설과 비아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설총은 말없이 붓을 들어 커다란 종이 위에 글자를 적었다.

그는 한자의 뜻을 빌려 우리말의 절절한 감정을 담은 이두 시(詩)를 써 내려갔다.

그 시에는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슬픔, 전쟁터에서 아들을 잃은 어미의 눈물, 그리고 계급의 벽에 부딪혀 꿈을 접은 청년의 좌절이 국적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녹아 있었다.
​설총이 낭독을 시작하자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여러분, 보십시오. 우리가 쓰는 말은 달라도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온도는 모두 같습니다. 신라인의 아픔과 백제인의 고통이 어찌 다르겠습니까? 글자는 사람을 가두는 창살이 아니라,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듣게 하는 통로여야 합니다."


​설총의 목소리는 요석의 인고를 닮아 부드러웠고, 원효의 직관을 닮아 예리했다.

그는 이두를 통해 각기 다른 사투리와 억양 속에 숨겨진 '사람의 진심'을 끄집어냈다.

그것은 사상적 화쟁을 넘어 감성적 화쟁으로 나아가는 위대한 발걸음이었다.

​화쟁의 빛은 요석궁에도 따스하게 스며들었다. 요석은 아들이 주도하는 화합의 장에 자신의 평생을 바쳐 모은 귀한 약재와 비단들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녀는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요석궁으로 불러들여 직접 씻기고 먹였다.


​"얘야,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너희는 모두 이 땅의 미래이고, 내 아들 설총이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들이란다."


​요석의 이러한 행보는 서라벌 귀족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파계승의 여인'이라 조롱하던 이들도, 신분을 초월해 만인을 품는 그녀의 자애로움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요석은 사랑을 소유하지 않고 흐르게 함으로써 얻은 그 자유를, 이제 국가적 차원의 자비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원효 또한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저잣거리에서 무애가를 부르며 사람들의 마음속 벽을 허물었고, 그 허물어진 자리에 아들 설총이 이두라는 벽돌로 새로운 화합의 성을 쌓는 것을 보았다.

원효는 어느 날 밤, 요석궁의 담장 아래 작은 꽃 한 송이를 두고 갔다.

그것은 말 없는 찬사이자, 자신의 '화쟁'이 아들의 손에서 완성되고 있음을 기뻐하는 아비의 묵시적 축복이었다.

​하지만 갈등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강경파 귀족들은 설총이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을 포섭하는 것을 경계하며 그를 '간첩'으로 몰려했다.

그들은 설총이 만든 화쟁의 논리가 신라의 정통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설총은 위기의 순간마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해골물의 진리'를 떠올렸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짓는 것(一切唯心造). 내가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실하다면, 세상의 어떤 모함도 나를 흔들 수 없다."


​설총은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왕실의 가장 큰 행사인 '팔관회'에서 신라, 고구려, 백제의 음악과 춤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장엄한 공연을 기획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 자신이 직접 쓴 이두 가사의 노래를 깔았다.


​"서로 다른 현(絃)이 모여 하나의 거문고 소리를 내듯, 우리 삼한의 백성도 하나의 가슴으로 노래하자!"


​노래가 서라벌의 하늘에 울려 퍼질 때, 문무왕은 눈시울을 붉혔고 유민들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것은 정치가 하지 못한 일을 문학이 해낸 순간이었고, 칼이 하지 못한 일을 붓이 해낸 기적이었다.

화쟁은 이제 관념적인 철학이 아니라, 신라 백성들의 삶을 지탱하는 실천적인 도덕으로 자리 잡았다.

​행사가 끝난 뒤, 설총은 깊은 밤 요석궁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어머니, 오늘 저는 아버지의 화쟁이 노래가 되어 온 세상에 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붓끝에 맺힌 것은 먹물이 아니라 화합의 피였습니다."


​요석은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 총아.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화쟁은 만인이 하나가 되는 것이란다. 네 아버지는 파계를 통해 그 길을 열었고, 너는 문자를 통해 그 길을 닦았구나. 이제 신라의 대지는 너희 부자가 빚어낸 화쟁의 빛으로 진정한 통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요석궁의 밤하늘에는 세 개의 별이 나란히 빛나고 있었다.

마치 원효와 요석, 그리고 설총이 서로를 비추며 하나의 빛을 내는 듯했다.

갈등을 녹이는 사랑의 노래는 이제 신라 천 년의 역사를 흐르는 거대한 강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설총의 문장은 화쟁의 빛을 머금고 더욱 단단해졌으며, 그 빛은 어두운 세상의 구석구석을 비추며 새로운 문명의 새벽을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