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안경

나의 투명함으로 타인의 세상을 선명하게 빚는 일

by 현루

​테이블 위에 놓인 안경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안경은 참으로 겸손한 물건입니다.

자신의 빛깔을 고집하지 않고 오로지 투명함만을 목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안경이 만약 자신의 색깔을 조금이라도 내세웠다면, 그것을 쓴 사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안경이 강요하는 색으로 덧칠된 풍경만을 보았을 것입니다.

안경의 미덕은 바로 이 '투명한 부재'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와 조화를 이룬다는 것도 이 안경의 투명함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편견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타인을 바라봅니다.

내가 가진 잣대와 경험이라는 색깔을 상대에게 투영하며, 그가 가진 본연의 빛을 왜곡하곤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화합은 나의 색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이 가진 고유한 풍경이 내 눈을 통과해 선명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나를 비우는 과정입니다.

내가 투명해질수록 상대의 진실은 더 맑게 드러나고, 우리는 비로소 오해라는 먼지를 털어낸 채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습니다.
​안경은 두 개의 렌즈가 하나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왼쪽과 오른쪽, 서로 다른 시력을 가진 눈을 위해 각기 다른 도수를 품고 있으면서도, 코 위에서 중심을 잡으며 하나의 시야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참으로 묘한 연대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때, 흐릿하던 세상은 비로소 하나의 선명한 초점으로 모입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도 이와 같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도수의 렌즈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굴절률로 세상을 해석하되, '함께 더 잘 보고자 하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나란히 서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화합의 풍경이 완성됩니다.
안경 렌즈를 닦다 보면 그 예민함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아주 작은 지문 하나, 보이지 않는 먼지 한 톨만 묻어도 시야는 금방 뿌옇게 흐려집니다.

조화란 이토록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한 번 마음을 모았다고 해서 영원히 선명한 것이 아닙니다.

매일 안경에 바람을 불어 렌즈를 닦아내듯, 우리도 매일 마음의 결을 살피며 서운함이나 불신의 찌꺼기를 닦아내야 합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렌즈를 닦는 그 정성이야말로, 타인을 향한 예의이자 함께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입니다.
​안경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습니다.

다만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굴절시켜 필요한 곳에 모아줄 뿐입니다.

이 '모아줌'의 미학은 흩어진 마음들을 하나로 묶는 화합의 원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초점을 잃은 빛들을 정성스럽게 갈무리하여 중심을 잡아주는 것, 그리하여 누군가의 삶에 가장 밝은 지점을 선물하는 것. 그것이 안경이 세상을 향해 건네는 소리 없는 응원입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빛나기보다, 타인이 세상을 더 잘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빛의 통로가 되어주는 삶은 얼마나 숭고한가요.
​세월이 흘러 안경테가 헐거워지고 렌즈에 잔상처가 나기 시작하면, 안경은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 상처들은 그동안 주인이 세상을 읽고, 사랑하고, 눈물 흘리는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는 훈장과 같습니다.

낡은 안경을 쓰고 다시 책을 펼칠 때, 우리는 그 익숙한 편안함 속에서 깊은 유대감을 느낍니다. 누군가와 함께 늙어간다는 것,

서로의 흠집을 가려주기보다 그 흠집조차 익숙한 풍경으로 받아들이며 나란히 걷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함께함의 완성입니다.
​오늘도 안경을 고쳐 쓰며 세상을 봅니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이 어제보다 조금 더 선명해 보입니다.

그것은 안경이 깨끗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내 마음의 도수를 조금 더 타인에게 맞추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투명한 안경이 되어 누군가의 흐릿한 하루를 선명하게 빚어줄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다정한 곳이 될 것입니다.
​비누가 제 몸을 녹여 향기를 남기듯, 안경은 제 몸을 비워 세상을 남깁니다.

그 투명한 헌신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혼자가 아님을, 서로의 눈이 되어 함께 길을 찾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창밖으로 저무는 노을이 안경 렌즈에 머물다 갑니다.

그 빛조차 거르지 않고 온전히 투과시키는 안경처럼, 나의 삶도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맑은 창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