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닳게 하여 타인의 얼룩을 지우는 소멸의 미학
욕실 한편, 물기에 젖어 매끄럽게 빛나는 비누 한 토막을 봅니다.
처음 상자에서 꺼냈을 때는 각이 선명하고 이름이 또렷이 새겨진 당당한 모습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비누는 점점 작아지고 둥글어집니다. 물과 닿아 거품을 일으킬 때마다 자신의 몸을 조금씩 떼어내어 타인의 손에 묻은 먼지와 고단함을 씻어내기 때문입니다.
비누는 타인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가 작아지는 길을 선택한, 참으로 조화로운 존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진정한 화합은 대단한 선언이나 거창한 명분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누처럼 자신의 고집과 각을 깎아내어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는 배려 속에서 싹을 틔웁니다.
손을 씻는 짧은 순간, 비누는 아무런 대가 없이 제 살을 녹여 풍성한 거품을 만듭니다.
그 거품은 손가락 사이사이 숨어 있는 어둠을 찾아내어 밖으로 끌어올립니다.
조화란 이처럼 나를 앞세우기보다 타인의 얼룩을 먼저 살피고, 그것을 지우기 위해 기꺼이 나를 낮추는 정성에서 시작됩니다.
비누가 만들어내는 거품은 참으로 묘합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가볍고 투명하지만, 그 안에는 더러움을 가두어 밖으로 실어 나르는 강인한 연대감이 담겨 있습니다.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이질적인 존재들 사이에서, 비누는 그 둘의 손을 잡아 하나로 묶어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와 같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처지에 놓인 이들이 마찰을 일으킬 때, 비누 같은 마음을 가진 이가 그 사이에 스며들어 마찰을 부드러운 흐름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섞이지 못하던 것들이 비로소 하나로 어우러져 씻겨 내려갈 때, 우리를 가로막던 오해의 장벽도 함께 사라집니다.
시간이 지나 비누가 손바닥 안에서 간신히 잡힐 정도로 작아지면, 사람들은 흔히 새 비누를 꺼내려합니다.
하지만 그 작아진 조각 역시 끝까지 자신의 소명을 잊지 않습니다.
물기 어린 손 안에서 마지막까지 미끄러지며 제 몸을 다 소진할 때까지 거품을 멈추지 않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창밖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화려한 외형을 잃어버리고 둥글게 마모된 저 작은 비누 조각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얼룩을 온몸으로 받아낸 가장 치열한 삶의 훈장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나의 모난 부분을 둥글게 깎아내는 일입니다.
비누가 각진 모서리를 잃고 둥글어지듯, 우리도 타인과 부딪히며 나의 독선과 편견을 갈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둥글어진 마음들이 모여야만 비로소 서로의 손을 잡았을 때 상처를 주지 않는 매끄러운 조화가 가능해집니다.
내가 작아진 만큼 타인이 깨끗해지고, 내가 낮아진 만큼 세상이 맑아진다면 그 소멸은 슬픔이 아니라 숭고한 완성입니다.
비누는 향기를 남기고 떠납니다.
제 몸은 다 녹아 물길을 따라 흘러갔지만, 씻고 난 손끝에는 은은한 향기가 머뭅니다.
진정한 조화의 흔적은 이와 같아야 합니다.
내가 다녀간 자리에 나의 이름이나 업적을 남기기보다, 타인의 마음속에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따뜻하고 맑은 향기를 남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동행의 모습일 것입니다.
어두워진 욕실, 마지막까지 얇게 남은 비누 조각을 소중히 매만져 봅니다.
이 작은 조각은 한때 거대한 고체였고, 지금은 헌신의 시간을 지나 無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누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청결함은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됩니다.
세상은 이토록 자신을 깎아 타인을 빛나게 하는 소리 없는 희생들로 인해 오늘도 정화되고 있습니다.
비누가 물속에서 제 몸을 녹이며 가장 평화로운 향기를 내뿜듯, 나의 삶도 타인을 향한 따뜻한 녹아내림으로 기억되기를 소망합니다.
비누 냄새가 향긋하게 감도는 공기 속에서, 더 맑고 깨끗해진 세상의 아침을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