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의 귀퉁이는
유독 깊이 접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읽던 곳을 표시한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너무나 선명하여
차마 마음에서 지울 수 없어
스스로의 심장을 꺾어 만든
세상 가장 아픈 책갈피입니다.
바르게 펴진 수많은 종이들 사이에서
홀로 구겨진 그 흔적은
밖으로 드러내지 못할 기억의 무게이자,
우리가 삶의 어느 지점에서
깊게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봤던
침묵의 고백입니다.
세상에서
누군가의 접힌 페이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가 왜 그토록 깊게 자신을 접어야 했는지,
그 굽이진 모서리에 고인 시간의 밀도를
말없이 헤아려주는 공감입니다.
책장을 덮어도
접힌 자국은 지워지지 않지만,
그 자국 덕분에 우리는
가장 어두웠던 밤의 문장을
언제든 다시 찾아가
서로의 온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