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시간은 묘하게 길게 느껴집니다.
시계는 분명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간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흐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기실에는 늘 비슷한 풍경이 있습니다.
번호표를 들고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들, 간간이 울리는 호출 소리, 그리고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바라봅니다.
그곳에는 특별한 대화도 없고 큰 소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묘하게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병원 대기실에 오래 앉아 있게 되었을 때 저는 그저 지루하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빨리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몇 번이나 바라보곤 했습니다.
기다림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대기실에는 다양한 얼굴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도 있었고, 중년의 부부도 있었고, 아직 젊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보호자와 함께 있었고, 어떤 이는 혼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있는 듯했습니다.
누구는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누구는 치료를 앞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병을 오래 안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자 대기실의 공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사람들을 겉모습으로만 바라보며 지나갑니다.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식당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버스나 지하철에서 잠깐 마주 앉는 사람들. 그들은 그저 낯선 사람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해 어떤 고민을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걱정과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대기실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곳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여 있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잠시 멈춰 서 있는 공간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이는 결과를 기다리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고, 어떤 이는 앞으로의 치료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이는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동안 저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삶의 모습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몸을 안고 살아가고, 자신의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나가게 됩니다.
건강할 때는 그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하면 그 단순한 사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병원 대기실에서 배우게 된 또 하나의 것은 기다림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어쩌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어떤 결과를 기다리고, 어떤 소식을 기다리고, 어떤 변화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기다림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대기실에 앉아 있던 어느 날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도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어떤 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여러 가지 시간을 지나갑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정확히 어디까지 가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그 사실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계획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시간의 길이는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조금 조용해집니다.
서둘러야 할 이유도 없고, 무엇을 빨리 이루어야 할 이유도 잠시 사라집니다.
그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만이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의 이름이 불리고, 또 다른 번호가 화면에 뜨고, 사람들은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렇게 대기실의 시간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이런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조용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또 다른 문을 향해 걸어가는 것.
그 생각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무겁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금 담담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루를 지나고, 또 하루를 맞이하며 시간을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병원 대기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여전히 길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구나.
그리고 나 역시 그 시간 속에 함께 앉아 있구나.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조용히 하루를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이 시간도
분명히 내가 살아가고 있는 하루의 한 장면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