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른손으로 시를 씁니다

10 백발

by 현루

백발(白髮)


검었던 머리 위에
어느새 눈이 내렸습니다
소리 없이, 말없이
한 가닥씩 내려앉던 희끗함이
어느덧 숲이 되었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처음엔 그 하얀 가지를 지우려 했습니다
검은 물로 덮으려
젊은 날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흰 머리칼은
내가 견뎌낸 겨울이었습니다
불안과 슬픔, 상실과 사랑이
한 올 한 올 묻어 있었습니다

나는 늙은 것이 아니라
시간을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몸은 느려지고
기억은 흐릿해지지만
눈빛은 더 깊어졌고
말은 조심스러워졌으며
마음은 더 넓어졌습니다

검게 물들인다고
청춘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감춘다고
세월이 멈추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이제 이 백발을
당당히 걸치고 다닙니다
이것은 나의 연대기이며
굽이굽이 돌아온 마음의 지도이고
고요히 써 내려간
시간의 자서전입니다

이 머리 위에 내린
눈처럼 환한 이 빛이
제 안의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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