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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Oct 13. 2021

13. 이상한 곳에서 일한 적이 있다

두번째 전쟁과 완전한 끝.


안녕, 이상한 곳!




그리고 그 새로운 발견은 아이들의 죽음이라는 충격과 결합되었고, 완전한 절망의 시기가 지난 뒤에는 강렬한 호기심으로 이끌렸다.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더 이상 삶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이 가치 없으면서도 어떻게 해서인지 유일하게 가치 있는 삶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인 것 같았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슨 목적을 위해? 우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인류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해야 이 잘 안 되는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을까?


프레드 울만, <동급생> 본문 중




*


싱가포르에 락다운이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까지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되지만 않았더라면.


사장과 매니저가 들어오자마자 내게 늦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면, 그것 역시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더라도 응당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너그러운 마음이 들기 마련이니까.


안타깝게도 두 가지 상황 다 나를 비껴갔다.


사장과 매니저는 정체 모를 일회용품을 자전거에 주렁주렁 매단 채 땀에 절어 가게에 들어왔고(정말 꼴불견이었다), 약속 시간은 이미 한 시간 가량이 지난 상태였다. 나는 정자세로 앉아있다가 딱딱한 얼굴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남자 둘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건성으로 인사를 받는다. 나는 잠시 가게 밖으로 나와 숨을 골랐다. 나는 성인이고, 저들도 성인이니 차분한 마음으로 화를 가라앉히고 대화를 해야 했다. 먼저 이글거리면 그나마 될 일도 다 망칠 테니까.


장작불은 의외로 저쪽에서 던졌다.


기다리는 동안 바닥도 안 쓸고 뭐했냐는 것이다.

나는 항변했다.


"영업을 하는지 배달을 하는지 근무를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데 왜 바닥을 쓸어요? 당장 어떻게 할 거라고 들은 게 있어야 가게 와서 뭘 할지 알죠. 안 알려주셨잖아요. 알려줄 거라고 해놓고 늦게 왔잖아요. 그런데 제가 왜 기다리면서 청소를 해요?"


센스 문제란다. 이런 비상사태를 앞두고 직원 된 입장에서 의견 제시도 하지 않았으며 정신없는 사장들을 닦달만 했다고. 헛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머릿속이 차분해졌다. 당신네들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로 기약도 연락도 없이 늦었지 않느냐는 내 말에 그들은 도돌이표처럼 (본인들이 지각한) 그 많은 시간에 바닥을 안 쓸었다는 말로 돌아왔다. 초등학교 삼 학년, 말꼬리를 잡는 앞자리 남자애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어르고 달래듯 사장 내외의 지난 삼 일간의 행보와 말 바뀜, 무대책에 대해 직원으로서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락다운 상황에 사장과 매니저도 골머리를 썩을 것을 감안하여 며칠간 대꾸 없이 기다렸으며, 나 자신도 보장되지 않은 조건에 불안감이 많았지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내색하지 않으려 했고, 약속한 당일이 되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는데 당신들은 예고도 없이 한 시간을 늦어서 나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바닥을 쓸어놓지 않은 것을 탓하고 있다,라고.


그제야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 시간을 어기면 염치 있게 사과하는 것이 예의 아닌가. 나는 이 기본적인 것에 이만큼의 설명과 설득이 필요한 것에도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지금까지 사 개월을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밑바닥이 이렇게까지 부잡스러웠다니. 성인이면, 어른이면, 사장이면, 사람이면 이것보다는 상식적으로 나올 거라고 기대했던 것이 과신이었다. 사장과 매니저는 안쓰러울 정도로 내 앞에서 자존심을 부리고 고집을 피웠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 기어코 사과를 하지 않아 트럭이 폭발한 싸구려 트럭 운전수가 생각났다. 진창, 진창밖에 없는 나의 이상한 일터.

어찌 됐든 그들은 사과를 했다. 해인이가 원하는 건 사과인가 봐, 해주자. 이런 태도였다. 우리가 미안해 됐지? 근데 너도 잘 한건 없어.


맞다. 나도 잘 한건 없다. 하지만 맥 빠지게도 나는 이따위 사과에 이성이 돌아왔다. 자세를 바로 잡고 재차 물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결정된 건 뭔가요?


가게는 영업을 못한단다. 할 수 있는 건 소규모의 배달 정도인데 그 정도 일거리에는 내 인력이 필요 없다. 말인즉 나는 정부에서 봉쇄를 풀어줄 때까지 막연히 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장과 매니저가 짜고 친 것처럼 덧붙인 마지막 한마디.


"우리가 생각한 게 있었는데, 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그만큼 해주기가 싫어지네."


사장과 매니저가 가게에 도착하고 우리가 나눈 대화는 꽤 격렬했고, 그 사이에 은은한 압박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령 '원래 일 안 하면 돈 아예 안 받는 거 알지?'라던가, '출근을 안 하는데 월급을 왜 줘' 같은 말들. 어렴풋이 짐작은 했다. 사실 이 이상한 가게에 너무 환멸이 들었기 때문에 남은 계약 기간 사이의 일수를 뭉텅 쉴 수 있다면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한데 사장과 매니저가 얘기하는 것은 또 한참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너 말하는 거 보니까 기분이 나빠서 안 되겠어. 우리가 다시 얘기하고 통보해줄게."


나는 머릿속으로 그 사람들의 말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되물었다.


"그럼 락다운 지령 떨어지고 닷새를 기다려서 제 근무조건과 급여가 어떻게 되는지 들으러 왔는데 제 말투가 기분 나빠서 두 분이 다시 얘기하고 문자로 말해줄 때까지 저는 또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유치하고 성급한 본새로 한마디 한다.


"응."


하하. 웃어 넘기기로 했다. 가게에 하나 있는 직원의 급여조차 보장해주지 못하고,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은 당연히 없으며, 무엇보다 자기감정에 휘둘려 수시로 말이 바뀌는 사람이 보스로 있는 가게에서는 월급을 두배를 준다고 해도 일하기 싫었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이 떨어질 수가.


"저는 이 가게에서 일 못할 것 같아요."


나는 이제 자유다! 이 역겹고 저급한 가게를 떠날 수 있다. 이상한 곳에서 일했던 나날은 이제 끝이다. 그곳은 영원히 나에게 이상한 곳일 것이고, 날마다 끔찍하게 회상할 것이다.

구름이 우중충하게 끼었던 그날 사물함에 있던 짐을 챙겨 가게 문을 나설 때 왜 그리도 상쾌하던지. 꾸역꾸역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생각할 때보다 둘도 없이 개운하고 속 시원하던지!


사실 이 뒤에도 재취업이며 위약금이며 자잘한 뒤처리에 큰 곤혹을 보긴 했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내고 싶다. 싱가포르 이후에 내가 얻은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사장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을지라도(아니 나이가 많아서 오히려 더) 나의 상상만큼 교양 있는 것은 아니며,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라는 것이다. 그때 내가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나왔다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가 되었을지 모른다. 애초부터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영리하게 대화를 끌어갔다면. 내 복지에 대한 얘기를 일단 다 끝내고 나서 그들이 시간에 늦은 것을 지적한다던지. 인내는 미덕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에 나는 인생에서 너무나 오랜만에 마주한 자괴감과 절망감에 허우적댔다. 그런 시간을 겪기에 이 가게는 나에게 정말로 무가치한 곳이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런 것들을 깨닫게 해 준 것도 머나먼 타지에서 출구 없는 비참함을 알려준 것도 다 이 이상한 곳이었다. 지금 나는 오 개월 전보다는 조금 더 어른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연장자에게 논리로 무장하여 조목조목 따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홧기운으로 머리 뚜껑이 들썩거릴 때에도 오히려 상대방의 기분을 풀어주어야 나에게 득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몸뚱이만 성인인 무례한 사람에게는 이론보다 알랑방귀가 더 잘 먹힌다는 것도.(마지막 것은 평생 못할 것이다) 여러모로 힘도 기력도 쭈욱 빠지는 경험이었다. 아예 싱가포르를 가지 않았으면 좋았으리라 이야기하기엔 너무 귀중한 이야기가 뒤로 이어져 별로 후회도 없다.


오늘의 문장은 근래 들어 나에게 가장 강렬한 피날레  줄을 선사한 프레드 울만의 소설 <동급생>에서 가져왔다. 살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깊은 절망과 좌절 속에서 사람은 빠져나와야 한다.  충격을 벗어나는 과정이 나의 편협함과 좁은 시야를 돌아보게 하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게 하며, 앞으로 있을 일에도 현명한 반성을 준다. 나는 이미 뭔가를 저질러 고통받았기 때문에  이상 삶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장 죽을게 아니라면 마저 남은 인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무엇이든 도출해 내야 한다. 자신을 생각하는 것은 자신 뿐이니 말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딱딱한 내면의 어디를 깎아내야 할까? 무슨 목적을 위해?  자신의 노후를 위해? 아빠에게   효도를 위해? 어떻게 해야 나는 조금  부끄러움 인생을   있을까?

이상한 곳에 백 번을 떨어져도 나는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한 곳에서 일한 적이 있다.

이상한 사람들과 부대낀 적이 있다.

낯설고 음침한 세계를 가까이에서 목도한 적이 있다.


아, 그곳은 정말로 이상한 곳이었어!


그리고 이제 나는 자유다. 완전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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