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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Nov 09. 2021

Bar-10. 바텐더를 그만둡니다

더 이상 남자 사장 밑에서 일하기 싫다



못해먹겠어서 귀농이나 하려고





당신을 문 개의 털을 뽑아라.

이 귀에 쏙 들어오는 비유는 기원전 400년 전, 안티파네스(혹은 동시대의 고대 그리스인)가 쓴 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음 구절은 오래전 어떤 문제에 대해 동종요법을 시행했음을 보여준다.


개에 물린 상처엔

그 개의 털을 이용하듯,

술을 다른 술로 해소하고

일은 또 다른 일로 해결하라



쇼너시 비숍 스톨, <술의 인문학> 중


*



‘헤어 오브 더 독’이라는 칵테일이 있다. ‘개털’이라는 뜻인데, 스카치위스키를 기주로 꿀과 크림을 부재료로 넣고 강한 쉐이킹을 해서 완성하는 해장술이다. 진득하고 느끼한 단맛에 크림 위로 육두구 가루까지 뿌려주면 알싸한 감칠맛까지 더해진다. 당신을 문 개의 털을 뽑아오라는 무시무시한 유래와는 영 딴판인 맛이다. 초콜릿 같기도 하고 크림이 올라간 디저트 같기도 한 누런색 칵테일. 달달하고 기름진 편이라 서양에서는 해장술로 유명하다지만 하잘 것 없는 동양인인 나는 바에서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싶을 때 주로 시킨다. 술은 다른 술로 해소하고 일은 또 다른 일로 해결하라는데, 5년 동안 몸 담갔던 바텐더 일의 끝을 앞두고 왜 이렇게 술 이야기는 재밌기만 한 건지 모를 일이다.




술에는 이야기가 굽이굽이 엉켜있다. 언젠가는 그런 이야기들을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라비아 이교도들에게서 건너온 커피가 유럽의 국민음료로 자리 잡아 ‘커피하우스’에서 프랑스혁명의 기반이 만들어진 것처럼, 술의 영혼을 뽑아내기 위해 분투한 연금술사들의 증류법이나 럼으로 방부처리를 한 넬슨 제독의 시체가 역사에 남긴 이름, 고농도 알코올을 타고 흐르는 전 세계의 금주법에 마찬가지로 휩쓸린 한국 역사 등등. 술은 인류가 농경을 하며 문명이 발생함과 동시에 생겨났다. 그리고 역사를 타고 흘러 예술과 과학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 넘실넘실 흔적을 남겼다. 곡식 한 줌에서 똑 똑 떨어지는 증류의 과정은 신비롭고 전문적이며, 멀리 있는 타국 땅에 한 조각 로망을 품게 만든다. 구름이 많고 일조량이 적은 스코틀랜드에, 버팔로가 만든 길을 따라 증류소를 세운 미국에, 교토와 오사카 사이 안개가 많은 곳에 증류소가 숨어있다는 일본에, 무더운 기후에도 원주민의 이름을 따 농도 진한 위스키를 만드는 대만에, 한참 빛을 발하고 있는 위스키 생산국인 인도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를 공부하는 것은 능률에 백번 도움이 되는 일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바쳐 그럭저럭 전문인 흉내를 낼 수 있었던 직업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버리자니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오 년, 무려 오 년이다. 스물셋부터 스물여덟, 호주와 싱가포르를 돌아다니면서도 여전히 나는 바텐더였는데 더 이상 스스로를 칭할 수 있는 직업이 없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가 정말 이 일을 돌아보지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도 없다. 나는 정말로 내가 하는 일이 신나고 자랑스러웠으니까. 오 년 동안 의미 없이 행복했다. 의미 없이 행복하기만 했다. 가장 허탈한 일이다.




나는 지쳤다. 정말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제주도를 가서 4.3 평화공원을 가고 싶고 어릴 때 못해봤던 내일로 프로젝트로 전국 팔도를 기차 여행하고 싶다. 방이 많은 아빠의 집에서 밤이 되면 쥐 죽은 듯 조용한 시골을 느끼며 몸을 늘어뜨리고 싶다. 어떤 것에도 조급하게 굴고 싶지 않다. 아무런 압박과 부담이 없는데도 술에 대한 책이 읽고 싶어 지면, 도저히 어딘가에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알아버리게 되면 나는 아마 다시 바 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야.


그때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지금 당장은 아니다. 남자 사장들의 경영방식에 지겨워졌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제공해도 어디 가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엔 늘 열악하고 쪼들리기만 한 내 형편에도 진절머리가 난다. 서울이 싫다. 웃기 싫은데 친절하게 보이려는 스스로의 목소리가 가증스럽게 들린다. 매일 퇴근길에 네이버에 업장 이름을 검색하며 오늘은 손님들이 또 무슨 포스팅을 올렸을까, 내 험담이 있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 난 남자 사장이 여자 바텐더를 고용하는 것이 싫다! 끔찍하게 남초 문화인 한국의 클래식 바 시장에도 환멸이 난다. 어리고 재능 있는 남자 바텐더들은 대회에 한번 우승하고 저마다 나와서 자기 가게를 차리는데, 어딘가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경력자 여자 바텐더들은 해외에서 초청하는 유명인사여도 (내가 아는 바로는) 아직까지 사장 자리를 단 사람이 없다. 바를 사랑하는 여성들은 어디에 숨은 걸까. 여자 바텐더. 바텐더. 남자 바텐더.


바 안에 남자 바텐더는 없다. 바텐더와 여자 바텐더만 있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여자 바텐더는 ‘바텐더’가 될 수 없는데 늘 ‘바텐더’를 흉내 내느라 진이 빠진다. 나는 그래서 지쳤다. 남자도 아니면서 ‘바텐더’가 되려고 애를 쓰기에 나는 벌써 스물여덟이다. 아니, 이제 스물아홉이다.




바에서 일한다는 핑계로 참 많은 여성들을 미워하며 살았다. 모던바나 토킹바에서 일하는 여성, 화류계 여성, 외모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는 여성, 남자에게 사랑받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 부끄러운 일이다. 나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주변이 죄다 흙탕물인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위하고 그러면서 안심했다. 이 모든 생각을 씻어내기 위해 좀 쉬어야겠다. 일은 또 다른 일로 해결하라고? 그럼 나는 시간 맞춰 근무하고 손님에게 웃고 다정하고 친절하고 위스키와 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추운 날씨와 하루의 안부를 묻고 휴대폰 충전이며 화장실 휴지 같은 구구절절한 요청사항을 다 들어주던 나의 일을 알밤을 굽는 것과 책을 읽는 것과 종종 글을 쓰는 것과 못다 쓴 글을 완성하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과 노을과 바다를 바라보고 가마솥에 불을 때고 강아지를 어루만지는 것으로 때워야겠다. 내가 내킬 때 훌쩍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갈 수 있는 자유를 가뜩이나 부실했던 통장과 맞바꿀 것이다. 나는 기다리는 중이다. 정말 내가 안톤 체호프와 박경리의 소설을 두고서도 술에 대한 책을 읽을 생각이 들지, 들지 않을지. 만약 그 모든 충만함에도 술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군 말없이 돌아가야 할 때일 테다. 혹시 모른다. 이제 남자 사장의 밑이 아니라 내가 사장이 될 수도. 일전에 꿈꿨던 장애인이 출입할 수 있고 여성 손님과 여자 바텐더들이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꾸며 볼 수 있을 지도.




개털, 해장술, 달콤하고 보드라운 헤어 오브 더 독.


날 괴롭혔던 개의 털을 되려 뽑을 수 있다면 꽤나 짜릿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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