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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Sep 08. 2021

Bar-09. 무엇 때문에 울어

아홉 시 영업 제한이 풀렸다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세우는 사람들>


뭐가 그리 두렵냐, 이 비겁한 인간아?

무엇 때문에 울어, 이 물러 터진 심장아?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 본문 중


*

영업시간이 다시 10시까지로 바뀌었다. 하루 이틀을 말미에 두고 영업시간이 오락가락하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일러진 근무에 적응하느라 일주일은 허둥댔던 것 같은데 이제야 좀 익숙해져서 기상도 조깅도 할 수 있게 되고 보니 도루묵이 되었다. 이런 시대의 바텐더는 적응해야 한다. 엿가락 늘이듯 주물대는 법규에, 하루에도 수십 명씩 드나드는 손님들의 방역수칙 준수 여부에, 까딱하면 사람을 범법자로 만드는 위태로운 영업시간에. 이제 두렵지도 않다. 가을 바닥에 말라비틀어진 낙엽 신세다. 그나마 월급 몇 푼이면 안심되는 직원 신분이니 다행인 것이다. 주변에서 업장 대표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고 가끔은 꽃상여도 나간다. 서로서로의 눈치를 보며 이 박한 시기에 누가 먼저 나가떨어지나를 가늠한다. 역병이 퍼진지도 어언 이 년. 나자빠질 곳은 이미 셔터를 내린 지 오래다. 남아있는 곳은 독을 품었다. 악에 받쳤다. 당연하게 바텐더로 살아오던 사람들은 아직도 밑도 끝도 없이 던져지고 있다. 뉴스에 나오는 하루하루가 아득하다.


직업을 잘못 선택한 걸까에 대한 고민은 작년에 실컷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싱가포르도 갔다 왔다. 내 심장이 얼마나 물렁거리는 장기인지 그때 알았다. 인간에게 단단한 건 뼈밖에 없구나.

다시 한국 어느 구석 바 겸 카페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금, 나는 이제와 후회하기에는 내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바텐딩이 아니면 나는 설 자리가 없다. 그만큼 무능하고 조그만 인간이기에. 나는 바텐더다.

사실 지금도 락다운은 두렵다. 나를 싱가포르에서 도망치듯 나오게 했던 락다운, 바들이 문을 닫고 정부의 명령을 목 빠지게 기다려야만 하는 락다운. 나라 안의 확진자와 부진한 국민건강의 화살이 어째서인지 유흥업소와 더불어 클래식 바에도 향하는 것만 같았던 서슬 퍼런 락다운. 락다운은 이런 상황에도 근무는 할 수 있다는 위안을, 아직 찾아와 주는 손님이 있다는 기쁨을 싹둑 잘라버린다. 아홉 시나 열 시 따위의 시곗바늘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의 지침으로 강제로 가게 문을 닫게 되면 바텐더는 말 그대로 인간쓰레기가 된다. 숨 쉬고 살아 있는 게 전부 돈인데, 본인의 가치는 증명되지 않고 재산을 축내기만 하는 쓰레기. 상당히 큰 좌절감이다. 늘 테일러 셔츠와 테일러 정장에 부내 나는 업장에서만 일하던 바텐더들에게는 이만큼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이 또 없을 것이다.

지금 너는 쓸모가 없어.

네가 하는 일은 사회에 도움이 안돼.

내 나라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뭐, 이제와 더 부릴 투정도 없다. 엄살 심한 바텐더들보다 지금 시대가 더 가혹한 사람이 더 많다는 것도 안다. 세르반테스의 채찍질이 필요하다. 죽네 사네 징징거리면서도 락다운이 걸리면 제주도에 날아가 있는 바텐더들, 바 사장들을 안다. 바 대표를 하고 있다는 것부터 어지간한 상황에는 파산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업장 사정으로의 구조조정에 일자리를 잃은 새끼 바텐더들이 걱정이다. 무언가 펼쳐보지도 못했는데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설자리를 잃은 어린 바텐더들. 이 업계에는 눈부신 기술과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다리가 가득했다. 마스크 없이 학교 다닌 내가 마스크 없는 사람 얼굴을 상상하지 못하는 아이를 볼 때 느끼는 안타까움과 비슷하다. 어떠한 시대가 지나가 버린 것이다. 그전에 당연했던 생활들이 꿈처럼, 환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금 이 모든 게 당연해진 것이 슬프다.

뭐가 그렇게 두렵냐면, 남은 날 내내 마스크 속에 숨어 손님들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 두렵다. 어떤 것이 내 눈에 눈물 고이게 하냐 하면, 해외에 두고 온 보석 같은 내 손님들이 다시 하늘길을 뚫고 날아와주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눈물이 난다. 오늘은 나도 전과 같지 않은 역병의 일상에 엄살을 부려봐야겠다. 처음 내가 바텐더를 시작했을 적에는 이리도 불분명하고 막막하지 않았노라고. 술과 음악과 이야기가 흐르는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노라고. 어떤 정부도 내가 하는 일을 사회의 악이라도 되는 양 규제한 적 없었노라고. 나는 바텐더이기 때문에 행복했고, 지금도 내가 바텐더라는 이유로 행복하고 싶다고 말이다.

오늘부터 열 시. 언젠가 시간의 천장이 부서지는 날이 오면 그때는 아마 서울의 모든 바가 밤새 놀고 춤출 것이다. 기다린다. 그날은 나도 다른 어딘가의 손님으로 가 흥겹게 춤을 추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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