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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ug 30. 2021

Bar-08. 300살 살고 싶으세요?

묘약을 만드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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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장례의식을 행하는 동물"이라 하였고, 볼테르는 "인간은 자기가 죽으리라는 것을 아는 유일한 종으로서, 그들은 경험을 통하여 죽음을 인식한다.


-김학민, <태초에 술이 있었네> 본문 


*​

나는 어젯밤 300년 장수할 수 있는 비법을 보았다. 중국 사신이 길을 가다가 열여섯 소녀가 구십 세 노파를 두들겨 패고 있는 광경을 보고 연유를 물었더니 맞고 있는 노파가 소녀의 셋째 자식이었다는 것이다. 어미의 말을 듣지 않아 훈육 중이었다고. 소녀의 나이가 395세라는 말을 듣고 놀란 사신이 절을 하며 젊음과 장수의 비결을 물어보니 소녀는 약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돌아와서 그 법대로 만들어 먹었더니 그 역시 300살을 살아도 늙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책에는 심지어 그 방법도 자세히 적혀있었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순간이다. 늙지 않고 삼백 살을 살 수 있다면.

오래   있다는 말을 듣고 괜히 도전이나 해볼까 들여다봤다가 눈길을 돌렸다. 삼백 년. 삼백 년이면 나라도 빼앗겼다 찾을 만큼의 시간이다. 늙지 않는 몸으로 박한 세상을 살기엔 지나치게 길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죄다 약을 지어 먹이지 않는 이상 한없이 외롭고 지혜로워질 것이다. 그런 것은 인간에게 필요가 없다. 지혜로워지고 싶다면 당장에 종교를 믿으면  일이다. 스스로 멍청한 망상을 했다는 것에 잠시 부끄러웠다. 아직 젊어서 주름 없는 피부와 쑤심 없는 몸뚱어리를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 생각 없이 남겨놓은 지금보다  어린 날의 내가 너무나 예쁘고 고울 때 드는 질투. 마치  시간을 살아가는 내가 낡고 지친  같다는 피로감. 그래도 나는 죽어야 한다. 살면 그대로  골치이기 때문이다. 바보 같은 꿈을  자신에게 헛웃음을 쳤는데 바로 오늘  문장을 읽어버렸다. 프랑스의 대표 지식인이 저런 말을 했었나. 인간은 자기가 죽으리라는  아는 유일한 종족이라고. 현대에  발언은 반발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이 수명과 젊음이 유한한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소중하다고 한다면 상투적인 말이고, 그저 삼백 년 묘약과 치고 치이는 일상사에서 당연스레 필멸을 선택할 뿐이다. 코웃음을, 헛웃음을 치면서.

강아지도 고양이도 코끼리도 고래도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은 느낄 것이다. 이 몸이 종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을, 적어도 영혼 하나는 속세의 것들과 멀리 있는 곳으로 떠나게 될 것을. 볼테르는 가끔 틀린다. 당연한 일이다. 코페르니쿠스가 발견하기 전에는 지구도 널빤지처럼 평평했다.

노파와 소녀 이야기에 나오는 무병장수 약의 정체는 '구기자주'다. 그 비법을 슬쩍 적어놓는다. 언젠가 삶에 미련이 생기고 나 하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 될 때에 살금살금 들이키고 삼백 년을 살아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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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보름  첫째 인일에 구기자나무 뿌리를 캐어  되쯤  만큼 그늘에서 말린다.


-여기에 2월의 첫째 묘일에 맑은술  말을 부어서  7일이  다음에 찌꺼기는 버리고 이것을 새벽에 마신다.


- 4 첫째 사일에 구기자나무 잎을 따서    만큼 가늘게 썰어 그늘에 말린다.


-오월 첫째 오일에 여기에   말을 붓는다.


- 7 첫째 신일에 꽃을 따서    만큼 그늘에 말려 팔월 첫째 유일에 술을   붓는다.


- 10 첫째 해일에 열매를 따서    만큼 가늘게 썰어 그늘에 말린 다음 11 첫째 자일에   말을 붓는다.


위에서 말한 법대로 만들어서 13 동안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왕성해진다.

다시 100일을 마시면 얼굴이 고와지고 흰머리털이 다시 검게 되며 빠졌던 이가 다시 나서 신선처럼 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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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누군가가 이 방법을 써 영생을 살고 있을까. 한자 투성이 책을 옮겨 적으면서도 의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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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다 한번, 썰고 말리고 술을 붓고.

 부지런한 사람이겠구나. 그러면 삼백 년도 부족할 텐데.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요즘 같은 흉흉한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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