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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ug 27. 2021

Bar-07. 생명의 물이 필요한 시간

아홉 시, 아홉 시라니!


윌리엄 호가스, <맥주 골목>


​​​​​​​


술을 증류해 진액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고안한 것은 이슬람 화학자들이었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은  연금술을 이용해 전설의 5 원소라 생각하는 것을 추출해내서 아쿠아 비타에(생명의 ), 아쿠아 아르덴그(화주) 이름 붙였다. 당시 인간들이 알고 있던 어떤 음료보다  배는 자극적인 마법의 생명수였다. 그리고 세계는 불을 호흡하기 시작했다.

쇼너시 비숍 스톨, <술의 인문학>

​​


*

단계가 연장되고 영업시간이 줄었다. 단축된 시간으로 근무한 지 이틀 , 일의 허리가  잘리는  같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근래 들어 한층 흉흉한 역병의 기세 탓에 원하는 만큼 바빴던 날이 손에 꼽았다. 그래도 밤이 되어 위스키의 시간이 찾아오면 어느 정도 화기애애한 바의 느낌이 나 뿌듯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줄어든 것이다. 회사와 동네 상권 사이에 끼여있는 우리 업장은 손님들의 패턴을 종잡을 수 없다. 그래도 딱 한 가지 또렷했던 건, 아무리 파리가 왱왱 날리고 있어도 저녁 8시에서 8시 반이 되면 거의 무조건, 손님이 하나 둘 들어와 모든 바를 채운다는 것. 그 한 가지에 안도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지금 아홉 시, 아홉 시 까지라.

바리스타분들이 퇴근하고 온전히 술의 시간으로 한 시간  정도를 쓰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다. 바텐더도 아홉 시에 퇴근해야 한다. 여덟 시 오십 분에 허겁지겁 드시는 손님들을 보면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해는  저물었는데. 밤은 이제 시작됐는데.


술의 역사는 재미있다. 중국에서 수은으로 불로불사 묘약을 만들던 연단술, 신선술이 이슬람으로 건너가 연금술이 되었다. 연금술사들이 물질을 금으로 바꾸려고 사용했던 비밀 도구가 바로 증류기다. 이슬람에서는 증류기를 향수를 만드는 데 사용했는데,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로 전파되며 발효주를 넣어 증류하게 된 것이다. 고도수 고응축 증류주의 탄생이다. 찐덕하게 저민 재료들이 증류기 안에서 기체로 변하고, 기체에서 다시 액체가 되어 똑똑 떨어진다. 그것은 그때의 사람들에게 기적적인 광경이었을 것이다.

증류주에는 생명이 들어있다. 술의 역사는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약으로 처방된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프랑스에서도 증류주의 어원은 생명의 물이다. 요즘 같은 때에 부쩍 필요한 녀석들 아닌가. 해외도 갈 수 없고 지인도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술은 중세의 해열과 강장과 소화의 효과를 가득 품고 늘 술병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바에 가면 손님이 없어서 외로운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바텐더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생명의 물이 필요한 시간이다.

질병은 너무 오래, 질기게 모든 곳에 붙어있고 우리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집에 있어보면 느낄 수 있다. 인간에게는 사냥하고 수렵하던 피가 흐르고, 종족과 무리 지어 발톱과 깃털 없는 몸을 보호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무력하게 집에 앉아 창밖을 보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뛰어나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다는 것을. 그럴 때는 훌쩍 신발을 신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도 되고 가볍게 조깅을 해도 된다. 지나가다가 아홉 시 전까지 불이 켜진 바를 보게 되면 슬쩍 앉아서 처음 맛보는 위스키 한잔을 홀짝일 수도 있다.


그럼 좀 괜찮아질 수도 있다. 이 모든 상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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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호가스, <진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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