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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Dec 03. 2021

칵테일 강연 제의를 받았다

별똥별처럼 반짝이는 인생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중




어찌 보면 사정은 나에게 유리하다. 나는 젊고 건강하다. 사지도 멀쩡하다. 마치 내가 뛰어나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진흙탕을 잘 헤쳐나갈 물갈퀴를 가지고 있으며, 내 힘줄이 유달리 유연하고 질긴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예민하지 않다.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기질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순전히 부정적인 면만 드러난다. 나는 이 세상에서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나는 어떤 이웃 사람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며 단지 멀거니 서서 기다릴 뿐이다. 지금으로서는 내 앞에 어떤 목표도 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익명의 여인, <베를린의 한 여인> 본문 중



*


브런치를 통해서 칵테일 관련 강연 제의를 받았다. 이제 서울을 떠나 이 일에서도 벗어나려고 했는데 얼떨떨하다. 괜히 무섭고 걱정부터 든다. 언제 이렇게 겁쟁이가 되어버렸을까.


한국의 바 씬은 좁다. 가게마다, 골목마다 건너 건너 이름은 들어본 사이. 나는 바텐더라면서도 칵테일은 만들지 못하는 반푼이 직원으로 5년을 일했다. 지금도 나에게 조주는 넘기 힘든 벽이다.


칵테일은 섬세한 술이다. 사용하는 얼음, 셰이커의 종류, 술을 넣는 순서, 시트러스류의 미묘한 배합, 스스로 잡아야 하는 맛의 밸런스, 유려하게 움직여야 하는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손목. 나는 '맛있는 칵테일'을 만드는 대표 밑에서 5년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돌이켜봐도 슬픈 일이다.


자격증이다 뭐다 해도 바에서 하게 되는 일은 모조리 실무 위주다. 글라스를 닦는 법, 좁은 바 안에서 동선에 방해되지 않을 눈치, 위스키를 추천해주는 스타일, 사용하는 단어조차도 바텐더는 자기가 일하는 업장의 분위기를 닮기 마련이다. 바텐더가 손님으로 와서 '00 업장의 00입니다'하면 대충 바의 대표가 추구하는게 어떤 느낌인지도 알 수 있을 정도다.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바텐더에게 업장과 사수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술도 없고 배짱도 없는 새끼 바텐더에게는 더더욱. 나는 열심히 일했지만 언제나 내가 '아직' 바텐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술도 잘 알고 칵테일도 만들 줄 아는 진짜 바텐더가 되리라 믿으면서.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지금 나는 겨우 어디 가서 바텐더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되었지만 여전히 칵테일을 만들지 못한다. 내일모레 퇴사를 앞둔 날까지, 나는 칵테일을 만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바텐더일까?


칵테일이 가르치기 어려운 부분인 것은 맞다. 각기 다른 미각을 제 입맛으로 중심을 잡아서 내보여야 하니까. 바 스푼을 몇 번 저어야 재료가 섞이는지, 시지 않은 라임과 달지 않은 레몬즙을 두고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는 (정말로) 순전히 연륜과 감과 순발력의 문제다. 맛있는 칵테일은 이 모든 조건에 만드는 바텐더의 자신감까지 덧붙여 완성된다. 자신감. 나한테는 한 번도 없었던 그 자신감.

나는 '누군가에게라도' 맛없는 칵테일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자체를 싫어했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오가는 손님들 모두가 내가 만드는 것을 완벽하게 좋아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인구의 숫자만큼 각기 다른 입맛을 어떻게 칼같이 만족시키랴. 하지만 나는 눈앞에서 '이 칵테일 별로예요'라는 반응을 보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셰프나 바리스타와는 다르게 손님을 앞에 두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바텐더는 손님의 피드백을 직접 마주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행복하고, 가끔 눈물이 찔끔 나는 그런 순간들.

바텐더는 시선을 기울인다. 첫 입을 마신 순간 눈썹과 미간의 움직임. 눈동자가 따라가는 곳. 입술을 때고 두 번째 모금을 마시는 타이밍. 옆 사람과의 대화. 이 모든 것에서 티가 난다. '괜찮네'와 '별론데' 사이를 그네 타는 바텐더의 칵테일 맛이.

역시 무섭다. 손님에게 좋은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업인 직업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칵테일을 서브하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 없는 일이다. 나는 만에 하나, 천에 하나, 백에 하나일지도 모를, 하지만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그 순간이 싫어서 칵테일 재조를 배우는 것에 소극적으로 굴었다. 그 불신의 눈빛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아직까지 그렇다.

강의를 제안한 곳에서 내게 물은 것은 '칵테일에 대한 전문성과 애정을 토대로 진행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고 했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자신 있었다. 나는 술을 아끼고 칵테일 사랑한다. 여기까지 와서 미련 없이 업계를 떠날 수 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나는 한국의 바 씬을, 바텐더인 나를 좋아했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칵테일에 대해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한국에도 수두룩 할 것이다. 칵테일을 만드는 것에 나보다 능숙한 사람도 차고 넘친다. 처음 해보는 일에 실수를 연발하고 기업담당자와의 기싸움에서 밀릴지도 모른다. 자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자신감이 움푹 깎여나갈지도 모른다. 꼴사납게 바들바들 떠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을 수도 있다. 내 모자란 글들 중 무엇을 보고 들어온 제안인지는 모르겠다.(가장 최근 쓴 글은 '바텐더를 그만둡니다'였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얼떨떨하다.


'잘' 할 수 있을 리가. 누굴 가르치는 것도 처음 해보는데 애들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을 상대로 하는 강의에 '잘'하는 것 까지 기대하다가는 큰코다친다. 나는 할 것이다. 해 볼 것이다. 마침 2호선 방 세 개짜리 집을 계약하는 바람에 일자리도 없이 알거지가 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알바천국을 들여다보던 참이다. 첫 술에 배부르기는 앳 저녁에 포기했다. 이것도 한 치 앞을 모르는 세상일이다. 전쟁터 한가운데 선 익명의 여인의 문장처럼, 나는 젊고 건강하고, 사지도 멀쩡하며, 뛰어나게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잖아. 갑작스러운 집 계약으로 모든 여행이 취소되고 휴식시간도 대폭 줄었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나에게 진흙탕을 잘 헤쳐나갈 물갈퀴나 질긴 힘줄이 붙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녀처럼,

나 역시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직 알지 못한다. 늘 같이 일했던 동료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며 어떨 때는 그저 겉돌기도 한다. 그래도 오늘 받은 제안에 큰 용기를 얻는다. 아직도 '술과 칵테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불안하고 불확실하지만 새로운 경험이 별똥별처럼 찾아와 준 것에. 전문가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스스로가 아직 전문가가 아니라 느낀다면 이를 기회로 속성 코스를 밟아봐야겠다. 잘할 생각보다 해 볼 생각을 해야겠다. 이제 정말 내 분야에서 뭔가를 이뤄보고 싶다는 마음이, 욕심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미팅은 돌아오는 수요일이다.

난생처음 해보는 미팅에 손이 다 떨리지만, 이야기가 잘 진행된다면 어찌 될까 상상해 본다. 학력도 수상경력도 초라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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