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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n 07. 2022

여성들이여, 위스키를 마셔요

신사 숙녀는 무슨!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 그녀의 버번 위스키.


사실, 여성주의는 객관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아니, 그것을 지향하지 않는다. 여성주의는 무전제의 전제에서 출발하지도 않고,  어떤 전제도 없는 청중들을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청중은 없기 때문이다. "남성적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질문에, "당연하지요. 세상에 그것밖에 없으니까요."라고 답한 프랑스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의 말대로, 세상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을 때는 다른 목소리는 물론이고,  한 가지 목소리마저도 알기 어렵다. 의미는 차이가 있을  발생하며, 인식은 경계를 만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본문 

​​


*​


1961년에 개봉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마릴린 먼로가 주연으로 나온다. 1929, 험악한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철길을 달리는 기차 위에서 나이트 슬립 차림으로 맨해튼을 만드는 그녀의 모습을   있다. 오늘의 잘한 일은 마릴린 먼로를  것이다. 굿나잇, 허니.라는 황홀한 그녀의 웃음을  . 경외의 신음이 절로 나온다. 흑백영화 속에서도 깃털처럼 보드라울  같은 사람이다.​


좁다란 기차 칸에서 슈가(마릴린 먼로) 허벅지에 묶어둔 위스키 플라스크를 발칵발칵 들이킨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순간이다. 무슨 위스키가 들어있을까. 시카고와 플로리다가 배경이라면 분명 버번위스키일 텐데,  많고 많은 미국의 버번위스키 중에 슈가의  안에 팽팽 도는 알코올은 어느 증류소에서 왔을까. 슈가가 맨해튼을 만드는 물주머니 같은 셰이커에 시선이 쏠린다. 금주법 시대의 맨해튼! 고무 셰이커에 버번과 베르무트를 꼴꼴꼴 들이부어 만들어지는 독주라니. 얼음이 귀한 시대에 손수 얼음을 부숴 크러시드 아이스까지 만들고 있는 화면 속의 마릴린 먼로라니! 날씨 좋은 아침부터 술이 동한다. 60 전의 흑백 영화에 흠뻑 젖어든다. 단색 투성이인 장면에서도 슈가의 눈동자는 반짝거린다.

그녀가 내는 몽롱한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영화 <하우스 버니>에서 셸리 역을 맡은 안나 패리스다. 금발에  가슴, 바비인형 같은 몸매, 바람소리가   같은 목소리. 그다음에 떠오른 것은 영화 <시카고> 속에서의 르네 젤위거다. 화면 속의 마릴린을  닮은 캐릭터에 역시나 나긋하고  불면 날아갈 듯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총을 쏘는 록시는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마릴린 먼로는 영화 속에서 이런 목소리로 연기를 하였구나. 모두가 뒤돌아보고 사랑할 수밖에 없게.  없이는  하나도 끓이지 못할  같아 보이니 신경이 쓰이 않을 수가 없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 역의 라미 말렉의 연기에서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의 오드리 헵번이 생각났다. 어미에 달링을 붙이는 고상한 말투. 영상과 음악, 연기, 연출, 스토리의 종합 매체인 영화는 감상할 때마다 즐겁다. 마릴린 먼로를 주연으로 <뜨거운 것이 좋아>라니, 뜨거워도 너무 뜨거운 거 아닌가. 60년도 넘은 흑백영화에서 이만큼이나 깔끔한 전개와 결말을 보게  줄은 몰랐던 일이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가슴이 살살 녹는다. 러프한 맨해튼이 먹고 싶다. 시대의 섹스 심벌로 살았던 마릴린 먼로를 생각한다.

쥐어보고 싶은, 만져보고 싶은, 쓸어보고 싶은.  성욕에 국한된 말이다. 여성을 성적으로 좋아하는 나는 마릴린 먼로를 보면서 성욕을 느꼈다. 이럴 때마다 나에게 고추가 달려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남성들과 시선을 공유하고 싶지는 않은데 성벽이 성벽이다 보니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성적 매력을 한껏 드러내 겨우 꼭지만 가려놓을 만큼  파인 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보면 사람이 아니라 가지고 놀기 좋게 생긴 인형 같다. 책을 읽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보았는데도, 그녀의 집 책장이 수많은 명작과 교양서, 이념서적으로 채워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는데도 영상 속에 움직이는 마릴린 먼로는 백만장자와의 결혼을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백치로 보인다. 아무것도 모르는  보이는 인간은 이렇게나 유혹적이구나. 순진한 남성을  때는 들지 않았던 생각이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마릴린 먼로가 남긴   이런 말이 있었다.


 여자가 원하는  남자들은  똑같지 안다는 것을 증명해    명의 남자가 아닐까요?”


마릴린 먼로가 원한 건  한 명의 남자였을까? 미국 소련이 대립했던 시기에 사회주의 서적을 읽을 만큼 시야가 넓고, 인종차별에 정면으로 맞서며 주체적이고 진보적인 행보를  사람이 원한 것은. 남자라는 트로피를 쥐면 여자가 편하게   있는 세상이었다. 세상은 남성이었고, 그녀는 그들이 없으면   없었다. 그녀를 쥐고 있는 것도 그녀가 휘두를  있는 것도 전부 남성, 남성이다. 술 없이 살 수가 있나. 마릴린 먼로의 슈가는 버번위스키를 마신다. 뒤에서 숨어서 계속 마신다.

정희진 작가의 말대로, 여성주의는 객관적이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 그것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남성적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질문에, "당연하지요. 세상에 그것밖에 없으니까요."라고 답한 프랑스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의 말에 머리를  친다. 남자들의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이 서러운 일이구나. 그래서 백신이 주는 생리불순도, 사무용 의자의 허리선 높이도, 인간의 몸에 물이 70프로라는 것은 젊은 남성의 기준이라는 것도 모르고 살았구나. 고위직에 높은 월급은 남성이 받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바득바득  같은 대접을 해주지 않냐고 물으니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정희진 작가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세상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을 때는 다른 목소리는 물론이고,  한 가지 목소리마저도 알기 어렵다고 말한다. 의미는 차이가 있을  발생하며, 인식은 경계를 만날 때만 가능하다고. 그렇게 때문에 레이디 퍼스트나 레이디스  젠틀맨이 아니라, 젠틀 우먼과 젠틀 맨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여성들이여, 위스키를 셔라! 세상에 레이디스  젠틀맨은 없다. 젠틀 우먼과 젠틀맨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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