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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n 09. 2022

서글픈 유월

호국보훈의 달에!

대한 독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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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정말 자연다운 부분은 수식으로 씌어질 수가 없다. 빛이 '룩스'로 표기될 때 빛남은 사라진다. 소리가 '헤르츠'로 측정될 때 울림은 사라진다. 무게가 '킬로그램'으로 계산될 때 묵직함은 사라진다. 이렇게 자연의 고유한 질적 측면은 결코 정신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진중권 <서양미술사> 중


*

아빠 집에 갔다 왔다. 대들보 서까래, 동양화 액자와 아궁이가 있는 곳에. 엄밀히 말하면 아빠 집이 아니라 아빠가 태어난 집이다. 샷시도 달고 에어컨도 설치해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번에는 동생도 같이 갔다. 우리는 사랑방과 작은방을 꽉 채운채로 어지럽게 굴러다니던 책을 정리했다. 민음사 세계문학만 책장 세 칸이다. 시골의 밤은 고요하지만 소란하다. 짝짓기 철이라 풀숲 어딘가에서 한 마리가 개골, 하면 집이 떠나갈 것처럼 온 사방에서 개구리들이 울어댄다. 바른 지 십 년도 더 된 창호지는 개구리 소리를 막기에 버거워 보인다. 맥주 한 캔을 땄다.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연휴에 길이 밀릴까 두려워 난데없이 야밤에 출발했다. 깜깜한 서울길과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마을 어귀로 들어오는데 사이드미러에도 백미러에도 불빛 하나 없다. 전조등이 비추는 그 짧은 거리만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것이 더 무섭다. 이래서 밤에는 운전하지 말라고 하는 건가 봐, 아빠 말 듣고 날 밝으면 올걸. 하고 동생과 함께 투덜거렸다. 그래도 차는 달리고 언젠가는 집에 도착한다. 바리바리 짐을 들고 산을 오르는데 사람이 드나든 지 오래된 건지 개망초가 내 키만큼 자라서 우거져있었다. 개구리 소리만 들리는 까만 밤에 핸드폰 플래시에 비춰서 보이는 키 큰 식물들의 모습은 더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 같다. 순순히 들어가게 두지 않을 거라고. 세 시간의 운전에 진이 빠져서 더 이상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양말도 없이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무성한 풀숲을 푹푹 밟았다. 한밤에 후레시 불빛이 비치는 세계는 전부 야간 카메라 화면처럼 회색이구나. 뚜두둑 부러지는 풀 허리 소리가 무수했다. 20미터가 안 되는 짧은 길도 식물이 가로막으니 천리처럼 멀었다. 겨우겨우 집에 도착해 자물쇠를 따고 전등불을 올리니 그제야 눈앞에 색깔이 돌아왔다. 익숙한 커튼의 색깔, 원앙조각의 초록과 갈색. 그래도 밤이라 침침한 색깔들. 이불을 펴고 나니 긴장이 풀린다. 맥주 한 캔을 땄다.

동생이 가져가야 할 책이 한아름이라고 했다. 장 주네의 <도둑 일기>가 중요하다면서 한참을 찾는데 세로로 겹쳐놓은 책 무더기가 허리께만큼 쌓여있으니 한 시간을 뒤져도 나오질 않았다. 민음사 문학전집만 휙휙 골라냈다. 책등으로 구분이 가능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꺼먼 색의 문학동네 서적도 보이면 구석에 모아두었다. 열린 책들, 문학과 지성 시집, 누런 종이의 장길산, 임꺽정, 한강, 태백산맥, 아리랑, 토지, 혼불. 중구난방인 책장을 들어내고 얼추 묶음으로 할 만한 것들을 모아서 꽂아놓았다. 민음사로 책장 한 칸 반을 채워갈 때 옆방에서 동생의 '찾았다!'는 외침이 들렸다. 장 주네의 <도둑 일기>가 드디어 나온 모양이다. 나는 최승자의 시집과 한국 미해결 범죄사건 책을 밖에 빼뒀다. 이언 매큐언의 초기 단편도 있길래 같이 뒀다. 동생이 수집한 책들은 꽤 믿을만하다. 서울에서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빌려봤던 책이 여기 다 있었다. 정희진과 캐롤라인 냅이 쓴 책들의 초본도 발견했다. 이 집만 들어오면 향긋한 종이향이 난다.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습기도 먹고 구부러지기도 했지만, 펼쳐보면 노오란 종이에 까만 잉크가 그보다 더 선명할 수가 없다. 그럼 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킁킁. 어떤 책은 동생이 흘려놓은 맥주 얼룩이 고스란히 보인다. 동생은 와인을 마시고 있다.

고등학교 때의 내가 사둔 책도 따로 빼놨다. 진중권의 책들이 대부분이다. 서양미술사 고전 예술, 포스트모더니즘, 미학 오디세이. 퀴어 도서도 여러 개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 미소 수프, 정키, 퀴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도 이때 사서 읽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좋아해서 아서왕 궁전의 코네티컷 양키도 샀었다. 게으름을 피우느라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 레오나르도라니 궁금한 설정이다.

진중권 교수의 글을 참 좋아했다. 그가 적어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 그가 이야기하는 미술사, 시와 격언, 작품을 보는 시각. 지금 다시 읽으면 또 어떤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 적어둔 문장들이 아직도 노트 속에 발견되는 것을 보면, 또 그 문장들이 썩 나쁘지 않은 것을 보면 언제 한번 품을 들여 또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이 언어로 묘사되는 순간 잃어버리는 것은 언어 밖에서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그 사실을 알리는 방법 또한 언어라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은 서대문 형무소의 제11 옥사 앞이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현충일을 기리며 지난주 내내 영화 <말모이>와 <박열>을 보고 오늘은 이곳에 왔다. 자연의 정말 자연다운 부분이 글로 쓰일 수 없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통각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역사가 가지고 있는 쇠와 피의 냄새는, 독립운동가와 국가보안법사상범들이 골고루 왔다간 형무소 철장의 손톱 자욱은 어떻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자연의 고유한 질적 측면이 결코 정신으로 파악되지 않는다면, 정신의 고유함은, 영혼의 처절함은 무엇으로 남아있을까. 지하의 찬 공기 안에? 회색 벽의 석회 속에? 나무가 쓰러진 형무소 터에?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진다.

서글픈 호국보훈의 유월이다. 다들 이 계절을 잘 보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이야기해요. 조국에 대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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