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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Nov 23. 2021

죽는 것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왜 계속 살아야 하는가?


왓챠 다큐멘터리 <김 군>, 강상우 감독




그리고(오늘 아침에도 느낀 일이지만) 공포, 압도하는 무력감이라는 것이 있잖은가. 부모는 우리 손에 삶을 쥐어주었다. 끝끝내 살며, 이것을 가지고 조용히 걸어가라고. 그러나 깊은 마음속에는 이것을 다할 수 없다는 무서운 불안이 숨어 있잖은가.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중


*


우울한 연말이다.


근래는 이런 날들의 연속이다. 이렇게 우울할 이유가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죽을 것 같지 하는 날들이 다닥다닥 모여서 일 년이 됐다. 좀 지겹다. 숨 쉬는 것도 번잡스럽다. 우울할 이유가 없다는 건 뭔가. 나는 뭐 이유가 있어서 태어났나. 세상일에 태반은 이유에 관심이 없다. 그냥 느물거리면서 번져가고 스러지고 할 뿐이다.


직장을 그만 두면 산청을, 함양을, 울산을, 경주를 갈 생각에 부풀어있었다. 존경하던 바에 이력서를 내고 서울역 사회주택을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바닷가에 사는 동안 솜으로 누벼진 생활한복 차림으로 지내보리라는 따사로운 생각에. 다 무슨 부질이 있나 싶다. 나는 내일도 출근을 하고 피로와 업무는 코 앞이다. 마음의 평화는 요원한 일이다. (퇴사일인) 일주일이 뒤에 다 떨궈내고 도피해도 그게 과연 좋은 일일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우울한 생각이다. 붙잡히면 무덤 아래까지 내려가는 그런 놈들이다. 나는 지금 한없이 침체되어있다. 도저히 이 거무죽죽한 기분을 숨길 수 없을 만큼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더 밑으로 밑으로 꺼져 내린다.


브런치 구독자 수에 의미를 두면 글쓰기를 멈추면 안 될 것 같으면서도 괜한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 욕심도 생긴다. 100명이아니라 1000명이길, 2000명이길 바라게 된다. 쓰는 글이 족족 마음에 안 들면 브런치에 올릴 것이 없게 되고 그러면 또 구독자가 줄어 예쁜 숫자 100에서 못생긴 99, 98로 내려가게 될까 봐 조급하다. 마음은 좁아졌는데 기대는 높다 보니 글이 더 써지지 않는다. 한국전쟁 한참 후에 태어난 나 따위가 국가가 벌인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끄적거려도 되는 걸까. 이스라엘에 대해 보았던 정보는 정확했던 것일까. 너무 편향적으로 글을 썼나. 사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종종 자살을 꿈꾸지만 어쩐지 매섭게 보는 눈들이 많을 것 같아 삶이 끝나는 순간을 낭만적으로 그릴 수가 없다. 하지만 보라. 버지니아 울프도 말하지 않나. 남이 쥐어준 삶에 도저히 충실하지 못한 이들이 가지고 사는 불안감을. 살아야 한다면 왜 살아야 하는지, 그것은 나를 위함인지 아니면 내가 없어 허해질 것들을 위함인지.


지금 있는 직장은 (나름대로) 좋은 곳이었다. 퇴사를 결심한 것은 (직원 중 유일하게) 휴무가 불규칙한 나의 상황이 어떻게 해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고, 나는 나를 위해 타개할 방도를 마련할 수 없는 회사를 위해 큰 보증금을 들여 집을 구할 생각이 없으며, 상사와의 대화는 늘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해의 다른 이름은 뭔가? 참으라는 얘기다. 나는 이해한다. 그래서 이 직장을 나간다. 삶도 그런 것이 아닌가.


세상이 작정하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돈 많은 집 자식이 아닌 것도, 허영심이 없지 않은 것도, 구부러질 바에는 꺾이고 말겠다는 성미도 세상 탓을 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었겠지. 다 그렇게 사는 거겠지. 백 프로 이해한다. 그리고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나는 왜 계속 살아야 하는가?


동생은 일 년에 600만 원짜리 대안학교를 입학한다고 설명회를 들으러 다닌다. 나는 600만 원이 없지만 동생은 책도 낼 예정이고 대학생 신분으로 이런저런 복지들이 있으니 어느 구석에서 나올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도 이렇게 쉬는 김에 글쓰기 강의를 듣거나 학교 강의실에 들어가 머릿심 좀 키워보고 싶지만 서울에 집도 없고 돈도 없어서 그럴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절복이나 한 소쿠리 싸들고 가서 시골집에 처박혀있는 것뿐이다. 참 부질없이 살았던 인생을 곱씹으면서. 동생은 어리고, 나는 그보다는 많다. 동생은 사 년제 서울권 대학의 재학생이고, 나는 2년제 예술대를 졸업해 이십 대의 절반을 서비스업에 달달 볶이며 보냈다. 했던 일을 후회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마 바텐더를 처음 할 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하고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지우고 싶지 않을 만큼 즐거웠다. 나처럼 조그만 인간에게 올 수 있는 모든 행복이 거기에 있었다.


밖에서 칼바람이 분다.

창문에 칼바람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다큐멘터리 <김 군>을 보았다.

매서운 날씨다.


이 우울함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일단은 중고로 누빔 절복을 여러 벌 사들여야겠다. 두툼한 솜 한복에 방한화를 신고 목도리에 귀마개를 하면 지금처럼 몰아치는 바람에도 견딜 만할 것이다. 나는 정말 겁이 많은 사람인데 그런 것 치고는 대담무쌍하게 살았다. 우습고 꼴불견이다. 나는 언제가 되더라도  스스로가 더 이상 안 살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죽을 것이다. 다른 누구의 처지까지 생각하면서 살기엔 내가 제일 중요하니까. 남이 죽어서 내가 느끼는 슬픔은 내 몫이듯이, 내가 사는 방식은 나 말고는 아무도 간섭할 수 없다. 이런저런 방도를 찾아보고 눈을 감고 타일러 보기도 하고 아직은 희망적이라고 세뇌도 해보고 신이라고 하는 것한테 기도를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만큼 했다’라는 생각이 들 때는. (오늘 아침에도 느낀 일이지만) 그렇게 슬픈 것이 아니다. 그렇게 비참한 것이 아니다. 그냥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로가 결승선을 긋는 것뿐이다. 누구는 허락받고 태어났나. 마지막을 기다리지 않고 고르는 것도 특권 아닌가.


거들먹거리면서 썼지만 나는 죽는 것이 무섭다.

아마 고통 없이 죽는 법이 유행처럼 번져도 나는 겁이 나서 죽지 못할 것이다. 몇번을 말했지만 나는 정말 겁이 많은 사람이다. 손바닥을 뒤집는 것 같은 죽음의 이면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아는가. 부러 원하지 않은 죽음을 맞은 수두룩한 이야기들을 보고 있는데 이 와중에 어떻게 스스로 죽는 것이 자주적이고 당당한 선택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이 당연한 사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우울이다. 죽으면 간단하게 끝이 날 것 같은, 마치 소음이 들리면 방문을 닫으면 되는 것처럼 가벼이 여기게 만드는 것. 죽음은 쉽지 않다. 생명은 생각보다 사람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있고, 죽음은 그토록 서운한 것이다. 사람의 몸에 질기게 붙어있는 것을 억지로 떼어내는 데에는 상처가 따를 테지. 하지만 대놓고 생살에 내는 칼자욱을 즐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다려야 한다. 부모가 우리 손에 쥐어준 삶을, 어영부영 어정어정 뒤뚱거리는 걸음으로라도 끝끝내 살아서. 그 모든 것이 스스로 내 육신에서 사르르 걷어져 나가는 순간을 말이다.



칼바람 소리를 들으며 다큐멘터리 <김 군>을 보고 잠든 아침,

전두환이 죽었다.

그 사람의 목숨도 육신에서 사르르 걷어져 나갔을까. 그렇게 많은 생명들을 잡아 뜯어놓고, 제 몸에 붙은 건 얼마나 악착같이 쥐고 있었을까.

지옥에서의 안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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