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Jun 18. 2022

글을 쓰러 간다

곧장 쓰러 간다!

<드렁크> 영화 포스터.


​​​​


나는  작품을 훨씬  많이 변형시키고 싶은 충동,  수정해서  재미있게 만들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왔다. 이것은  강렬한 충동이다. 지금  작품들을 보면 너무 창피스럽기 때문이다.

스티븐 , <스탠 바이 > 본문 


*

내 코가 석자다 못해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다. 중간고사가 한창인데 글쓰기 강의는 두 개나 신청해놔서 이틀에 한번 꼴로 합평받을 글을 써내야 한다. 사실 지금도 써야 하는 글을 안 쓰고 딴짓 중이다.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

최근 주야장천 섹스 얘기를 썼던 이유는  작가의 섹슈얼리티 주제 글방을 듣고 있기 때문이다. 남이 이야기하는 섹슈얼리티를 들어보려고 신청한 강의에  섹스 얘기만 실컷 했다. 그래도 이런저런 피드백을 들으니 뿌듯하다. 암요. 제가 섹스를  좋아하긴 하죠. 부끄러울 거  있나.   사람들끼리.

다른 건 4주 동안 자유주제로 글을 써서 보내고 합평을 받는 워크숍이다. 우먼  , 바에서 일하는 여자에 대한 글을 진지하게 엮어볼 생각이라 초고에 생판  조언을 받고 싶어 신청했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불안했는데 처음 제출한 프롤로그 글  근사한 칭찬을 해주셨다. 써볼 만한가. 다들 궁금해하고 있을까. 한국 술과 바의 역사, 여자가 얘기하는 , 여자가 바라보는 . 그리고 술과 시가를 좋아하는 여성에 대해서.


합평을 칭찬으로  채워 들으니 자신감이 붙었다. 제대로 써봐야지, 집요하게 파봐야지 하고는 또 게으름을 피운다. 보는 사람들이 어디까지 알고 싶어 하고 어디부터는 관심 밖인지   없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사와 더불어 이런 이야기는 찔끔찔끔 꺼내놓을  있다. 평화시위 3.1 운동이 일어났던 1919, 한국에  기계식 소주공장이 세워졌다는 . 조니워커, 시바스 리갈, 올드 파라블렌디드 위스키 명가들이 줄지어 등장한 1909년에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는 . 역사가 꿈틀거린다. 투쟁하고, 살아남는다. 그 정도로도 기운을  뺄 만큼 힘들었던 시대.

당장도 섹슈얼리티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데 소재는  정해놓고 손을 못 대고 있다. 전쟁 강간에 대해 쓰고 싶다. 여성의 몸이라는 유형물이 어디까지 대상화되고 도구화될  있는지, 태어나기 전 제멋대로 결정되는 유전 농간에  나는 하루하루 몸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지. 한국 영화에서 빠지는 것이 드문 것은 여성에 대한 관음적 시선이다. 영화 <항거>에서 기어코 열사를 벗겨놓는 작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여성이라는 것은, 결코 여성의 몸에서 빠져나올  없다.  몸은 치욕을 주기 쉽고, 옷 몇 겹만 벗겨내도 효과가 대단하다. 인간은  옷을 입어야 하는가? 그것은 필요할  벗기기 위함이다. 멀쩡히 있는 성기를 잘라내는 것과 뚫려있는 구멍을 헤집어질 때의 모욕감은 비교가 가능한가? 최악은 어디까지가 최악이고 차악은 어디까지가 차악인가. 구멍이 있는 몸으로 태어나서 옷이 찢기면 침입당할  있는 치부를 가지고 나는 얼마만큼 용감해질  있을까.

 글을 쓰러 간다.

곧장 쓰러 간다.



​​​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한 인간이 되어서 오겠다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