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경처럼.
You are capable of anything.
Because You are so bad at everything.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중
*
구제불능이다.
일상부터 인생까지 이렇게 마구잡이로 엉켜버려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
내일이 오는 게 두려워 미치겠는데 해가 뜨면 몸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같은 버스에 실려가는 출근길도 그대로다. 포기인지 해탈인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잘해보고자 하는 다짐은 여덟 시간을 채 가지 않는다. 일주일에 딱 하루 정신없이 쉴 수 있는 날, 태만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십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산 마케팅 도서들은 라면 국물이 묻은 채로 책상 한편에 쌓여있다. 내일이 되면 다시 읽기 시작해야지. 또 도망칠 수 없는 현실에서 아직까지 뜬구름 같기만 한 오피스에 앉아있어야 하니까.
나 말고 모두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 곳에서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입사한 지 육 개월이 넘어가는데 왜 나는 아직도 이모양인지. 열세 권의 마케팅 책을 다 읽으면 그때는 내 일을 어렴풋이라도 알 수 있을는지. 그럼 이 밑도 끝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무실이 좀 편안해지는 건지. 머리가 하도 뜨끈뜨끈하니까 편두통 진통제를 간식처럼 먹는다. 여기에서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 안다. 그것밖에 알 수가 없다. 이 회사에서 나는 모든 것에 쓸모가 없다.
영화 속이라면 이런 나라도 뭔가 할 수 있는 놈이라는 대사를 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만큼 답이 없으니까. 또렷해지기라도 할라치면 득달같이 진흙탕 속에 처박히니까. 잘하는 게 하나 없어서 뭐든지 잘할 수 있다는 말은 양자경이니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나도 양자경처럼 영화 밖에서 변호사 출신 아버지가 영국 무용학교에 보내주고 홍콩의 재벌이랑 이혼도 해봤으면 좋겠다.
뭐 하나 좋은 생각이 드는 게 없는데 글도 쓰지 않고 보내려니 절망이 아깝다.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이 아프면 내가 지금 아파 죽겠다고 적어놓기라도 해야겠다. 나중에 산업재해 처리를 할 생각으로 세심하게 적는다.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그렇다고 손 놓고 놀고 있는 건 또 아니고, 가끔 죽고 싶지만 내일도 출근을 해서 뭔가를 하고 누구를 만날 것이다. 대부분 풀리지 않고 어그러지고 빠그라질 뿐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즐겁고 재밌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역시나 맞지 않는 일이었다고 자책하고 한숨 쉬지만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게으르게 휴일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다시 분주해지고, 압박에 시달리고, 초조해지고, 좌절스러워지고.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무엇이든 너무 못하니까.
그냥 문장 하나를 생각하면서, 지끈거리는 머리로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쓰면서. 또 연옥 같은 아침해를 기다리다가 내일을 맞는다. 인생이 뒤죽박죽 어떻게 흘러가든 어김없이 돌아가는 지구 때문에, 결국은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는 인간이라는 걸 가장 잘 아는 게 바로 나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너무 못하는 건 그냥 못하는 거야.
아침에 눈 떠서 지각이나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