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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Oct 25. 2023

장어 한 마리의 힘으로

살아가나?



둘 중 하나다. 인간은 신의 모습에 따라 창조되었고 따라서 신도 창자를 지녔거나, 아니면 신은 창자를 지니지 않았고 인간도 신을 닮지 않았거나.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


*


장어가 먹고 싶다!

기운차게 온몸을 꿈틀거리는, 미끄럽고 정력적인 물고기를 숯불에 구워서 먹고 싶다. 달콤한 간장 소스를 살살 발라서, 그물망 모양대로 그을린 살코기를 위아래로 뒤집어서.


어제는 외근 나간 바에서 독주를 받아마시는 바람에 집 앞에 다 와서 속을 게웠다. 우웩 우웩 하수구에 쭈그려서 토악질을 하는데 희한하게 그 꼴을 하고도 기분이 좋았다. 더럽고 우스꽝스럽고 교양 없는 내 모습. 이런 일은 일상이다. 술이란 게 원래 그런 법이다. 내 전에 이 일을 하던 사람은 일주일에 위스키를 50병은 먹고 다녔단다. 나는 꼴랑 칵테일 네 잔에도 이모양인데. 회사는 날 왜 뽑았을까?


택시에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토를 삼키고 있자니 평생 볼 일 없을 내장 맛이 난다. 빈속에 술만 마셨으니 위장에 고여있던 것들이 고대로 역류한 것일 테지. 내시경은 늘 이렇게 시큼하고 텁텁한 냄새가 진동하는 길을 헤집고 다니는 걸까. 다음 달에 있을 건강검진에서는 난생처음 내시경을 해본다. 나도, 내시경 카메라도, 의사도, 간호사도 모두의 비위가 상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우웩. 우웩.


기억도 안나는 밀란 쿤데라의 책에는 인간을 구석구석 갈아보고 뒤집어 보면서 신의 몸속을 가늠하는 구절이 있다. 인간이 정말 신을 본떠 만들어졌다면 신이라는 것도 참 별 볼 일 없고 추저분하겠구나. 신을 신인채로 성스럽게 내버려 두려면 그 모습을 얻어왔다는 인간의 영광을 내려놓아야 한다. 통쾌한 상상이다. 트림하는 신, 방귀를 뀌는 신, 숙취에 변기를 잡고 오바이트를 하는 신. 인간한테 애매한 지식을 주어서 죽기 싫다고 기어코 내장까지 카메라를 들이밀게 만든 신.


신도 생리를 할까? 어느 설화를 봐도 줄기차게 섹스는 해대는 것 같은데 그럼 여신들도 자궁과 난자를 가지고 배란을 할까. 우아하게 새끼를 만드는 데에는 버섯들이 제일이다. 출아법으로 짝도 없고 섹스도 없이 씨를 남긴다. 손가락을 똑 잘라 던지면 아이가 생기고, 잘린 상처에서 두 개의 손가락이 돋아나면 좋겠다. 그거야 말로 신적인 일 아닌가. 아무리 멋져도 인간처럼 생기지 않으면 그것은 신이 아니라 괴물이 된다. 그리스로마신화의 히드라처럼.


장어가 먹고 싶다.

인간을 꺼림칙하게 만드는 징그러운 몸부림으로 정력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포획당하느라 고생이 많은 생물. 어쩐지 이놈을 잡아먹으면 나까지 힘이 날 것만 같은 생물.


버스 창 밖 횡단보도에 노란 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병아리 떼처럼 지나간다. 가지고 싶은 풍경이다. 손에 넣고 싶은 아가들. 장어를 먹고 내친김에 아이도 낳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쩐지 더 잘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장어 한 마리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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