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죽음은 아직인 걸까
목숨의 안쪽을 이루던 난해한 무늬.
<김훈, 칼의 노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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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마자 인디언밥을 우유에 말아먹고 양념 닭가슴살 한 봉지를 비웠더니 속이 더부룩하다.
구루룩 거리는 배를 붙잡고 청년 심리상담을 받았다. 조금 일찍 출발했다가 상담시간보다 30분이나 이르게 도착해버렸다. 한 시간 이십 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나에 대한 말을.
인간에게 수명이란 것이 정해져 있다면 살생부의 날짜를 슬쩍 앞당기고 싶다. 죽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예정일보다 하루라도 빨리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 죽음이 내 옆을 맴돌고 있으면 좋겠다. 내가 기를 쓰고 헤매고 다니지 않아도 슬쩍 다가와서 내 등에 업혀주기를. 모른 척 능청맞게 일어나 주기를.
모든 게 피곤하다. 매뉴얼이 정리되지 않는 회사도, 지긋지긋한 대출금도, 시시각각 부서져내리는 뼈와 살도. 어째서 아득바득 노화가 찾아올 때까지 살아내야만 하는지를 생각한다. 지금 회사의 계약기간이 2025년 6월까지이니 그때까지는 주는 월급을 받아먹으며 대출금을 갚고 살 것이다. 운 좋게 계약이 연장되면 어물쩡 2년 더 버틸 수 있겠지. 그 후의 미래는 모르겠다. 생각하기 귀찮다. 그때도 빚언덕 위의 집에서 살고 있다면 오기 싫다는 죽음이라도 억지로 불러내야 한다.
참 죽고 싶지 않은데 이렇게 죽음이 편안하게 느껴질 일인가. 상담사가 ‘죽으면 된다’라고 하지 말고 ‘힘들다’고 말해보면 어떻냐고 말했다. 엄마는 내가 힘들다고 하면 매번 똑같은 대꾸를 했다. 너보다 힘든 사람 많아. 30년 동안, 매번매번, 같은 대답이었다. 나는 힘들다는 말이 엄살처럼 느껴진다. 다들 죽을 텐데. 힘들던 힘들지 않던 묏자리가 있건 말건 언젠가는 고꾸라져 죽을 텐데.
심리상담 2회 차만에 선생님이 상담 연장을 권했다.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에 마주 웃어 보이며 생각했다.
음, 지금 나에게는 문제가 있군.
집에 가면 며칠 전에 곱창을 시켜 먹고 남은 양밥으로 끼니를 때워야겠다. 동물의 배를 갈라 내장 속을 씻어내고 넘치듯 나오는 기름을 고스란히 흡수한 볶음밥이 오늘의 저녁이다. 마블링 가득한 고기와 곱이 꽉 찬 창자를 볼 때마다 목숨의 안쪽을 가늠하면서도 정작 내 속을 상상하면 비위가 상한다. 나는 평생 모를 나의 내장. 바다의 산호와 징그러운 말미잘을 담은 목숨의 안쪽. 조금만 가르고 들어가도 맥없이 벌어질 난해한 무늬들.
4회로 예정되었던 상담이 10회로 늘어났다.
죽음이 아직도 멀다.
조금 더 가까이 와. 아주 조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