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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Nov 07. 2023

엄마랑 나는 뱀과 족제비

언제쯤 효도란 걸 할 수 있을까




구원은 연이은 재앙의 작은 틈 속에 버티고 있다.


발터 벤야민


*

출장 온 숙소에 욕조가 있다. 치킨을 주문하고 기다리다가 참지 못하고 들어가서 반신욕을 했다.

뜨끈한 온도의 물이 발가락과 엉덩이를 타고 찰랑찰랑 차올라서 가슴까지 덮는다. 그대로 가라앉을 것만 같은 편안함이다. 피로가 쭈욱 빠져나간다. 온몸의 땀구멍이 그간의 스트레스를 뭉쳐 살갗 위로 내보낸다. 차분하게 시간의 냄새를 맡는다. 이대로 얼마나 더 잠길 수 있을까 셈하는데 치킨이 왔다는 벨이 울렸다. 투명한 물에 얼굴을 처박고 뒤통수를 푸르르 털었다. 치킨을 시켜놓고 오는 게 아니었다. 계획 없이 누워있기에 호텔 욕조는 너무 귀한 물건이다. 물과 바다가 한참 그리워진 지금, 아빠의 만리포가 목마른 지금.


더 늦으면 방이 없을 거라고 부랴부랴 한 예약이라 호텔에 욕조가 있다는 것을 깜박 잊었다. 출장 전 마지막 짐을 쌀 때까지 책상 위에 베스밤을 만지작거렸었는데. 다음 여행지에서 묵을 숙소는 한옥형이라 욕조가 없다. 왜 이곳에도 욕조가 없을 거라 단정했을까. 모른 척 챙겨볼걸. 공짜로 받아서 유통기한도 지난걸 뭐가 아깝고 뭘 그리 무겁다고.


치킨은 엄마가 받아줬다. 나이 삼십먹고 지방 출장을 엄마랑 온다. 내가 외로워서 엄마를 데려온 건지, 엄마가 심심해서 나를 따라온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오는 길 차에 있는 네 시간 동안 또 여러 번 논쟁을 했고, 가끔 언성을 높였고, 약간의 침묵 끝에 다시 가시 돋친 말을 했다. 피곤하다. 피곤해서 미칠 것 같다.


부모에게 효도란 걸 언제쯤 할 수 있을까. 아직 쉰다섯인 엄마가 걸을 수 있을 때, 뛸 수 있을 때, 활짝 웃고 나를 기억할 수 있을 때 손을 잡고 더 많은 것을 해야 하는데 나는 힘이 든다. 일을 하러 가는 길에 나 말고 다른 인간 하나를 신경 쓸 생각에 머리가 아찔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 언제 엄마랑 국내여행을 다녀보겠어. 출장 후에 휴무를 빼서 삼박 사일동안 경주도 간다. 거의 일주일을 내리 붙어있는 시간에 얼마나 박 터지게 싸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아니면 정말 물리적으로 둘 중 하나의 골통이 터질 수도 있다. 우리는 둘 다 못 말리는 다혈질이니까. 작정하고 상처 입히려면 누구보다 벼리게 상대방의 심장을 포 뜰 수 있는 모녀니까. 까짓 거 덤벼보시지. 누가 질 줄 알고. 내가 언제까지고 일곱 살 꼬맹이일 줄 알고.


어떻게 해야 엄마랑 싸우지 않고 얘기할 수 있을까. 언제쯤 기싸움과 서열다툼 없이 평화롭게 가족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침대 옆 테이블에서 혼자 맥주에 먹태를 먹는 엄마를 두고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사람 하나를 죽을 둥 살 둥 간신히 다 키워놓고도 이런 취급을 받는 엄마가 불쌍하다. 불쌍한데 기선제압을 멈출 수 없다. 까딱 잘못하면 뒤집혀서 먹혀버린다. 다시 일곱 살 꼬맹이가 된 것처럼. 나는 평생 엄마랑 편안하고 가족적인 대화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뱀과 족제비처럼 끊임없이 대치한다. 내가 쓰는 글을 아무리 읽어도 남만큼 살가울 수 없는 사람이다. 평생 제 배로 낳은 새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이라니. 그러니까 혼자 맥주를 마시는 엄마를 옆에 두고 이런 글을 쓴다. 오늘부터 엿새 동안의 경상북도 여행이 누구 하나 피를 보는 유혈사태 없이 잘 끝나기를 바라면서.


엄마가 치킨을 받아줘서 반신욕을 마저 할 수 있었다. 욕조에 울화와 스트레스가 둥둥 떠있다. 새 물을 받을 땐 한참이 걸렸는데 마개를 뽑으니 썰물에 뻘이 드러나듯 순식간에 빠진다. 가득 채워 놓았던 내 피로의 탕. 득실득실 끓어서 피부 밑을 뜨겁게 만들었던 대화들. 후루룹 빨려나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일이 온다.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이 끝나고 지쳐 돌아올 숙소에 욕조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치킨을 받아줄 엄마가 있다는 것도, 아주 조금은 기운이 난다. 진짜 조금, 아주 쥐알만큼이지만. 그래도.


내 구원은 치킨이었을까, 엄마였을까.


부디 죽지도 죽이지도 말고 돌아가 봅시다. 이렇게 앞으로 백 년은 더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인간 수명이 이렇게 긴데 어쩌겠어요. 그런 걸 낳아놓았으니 당신도 나도 별 수가 있소. 몰아치는 재앙 속에 며칠 더 잘 부탁드립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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