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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pr 07. 2021

아빠의 외도

캐롤라인 냅 <드링킹> 단상 2




캐롤라인 냅, <드링킹>


제14장 ‘끝없는 추락’ 중



아버지가 ‘임종 고백’을 하신 모양이었다. 아직 임종이 닥치려면 몇 달은 남아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 고백이 바로 10년 전 두 분을 이혼으로 몰아갈 뻔한 외도에 대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때 완전히 관계를 청산했다고 공언했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을 믿고 살았다. 때로 어머니가 그 일을 들춰내면 아버지는 오래전에 끝난 일이라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일은 없다고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그것이 거짓이었다. 그 관계는 그때까지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여자’(어머니는 항상 그 여자라고 불렀다)는 불과 면 주 전에도 병원에 다녀갔다고 했다.

베카와 나는 사태를 진정시키느라 안간힘을 썼다. 내가 거실에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면, 베카는 부모님 방에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고, 그다음에는 역할을 바꾸는 식이었다. 어머니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온종일 사나운 말들이 쏟아졌고, 눈에서는 불을 뿜었다. 아버지는 당황했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 사실을 고백하면 마음속에 죄의식을 덜고 용서를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거듭거듭 말했다.

“위급할 때 가장 먼저 오는 사람은 언제나 너희 엄마였다.”

그 말이 배신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아빠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었던 적이 있었다. 혼돈의 사춘기를 지나 부모님의 이혼과 결별 이후 일련의 과정을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아빠는 퍽 이상적인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 생각은 유년기 때부터 또렷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나를 어떻게든 돋보이고 특별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 했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힘들어했다. 어렴풋이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져서 아빠가 나를 싫어하는 거라는 걸 느꼈던 것 같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한 엄마와 그런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아빠. 그리고 무슨 짓을 하던 엄마를 고생시키는 나. 내가 알던 우리 집안의 기묘한 감정선은 짝사랑 투성이 비극이었다. 나는 숨이 막히고 엄마는 더 많은 걸 원하고 힘겹게 엄마와 나를 따라오는 아빠와 동생. 그런 유년기.

아빠가 사랑하는 엄마가 아빠는 봐주지 않고 나만 챙겨서, 그래서 아빠는 나를 싫어하나 봐.

그게 나의 생각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날 싫어할 정도로 엄마를 사랑하는구나.


이혼을 격렬하게 요구한 것은 엄마였고 회피하고자 했던 쪽은 아빠였다. 스물이 갓 된 내 마음에는 이십 년 동안 지순하게 밟아온 아빠의 외사랑이 그런 식으로 종말을 맞은 걸로 보였다. 엄마밖에 없었던 아빠가 엄마의 의지를 이기지 못해 사랑을 잃고야 마는 과정. 그게 이혼이었다. 처음에는 안 하면 안 되겠냐고 첨언을 보태던 것도 엄마의 고집에 밀려 나중에 통보나 해 달라는 식이 되었다. 달랑 네 명뿐인 구성원이 모두 지쳤다. 이혼에 열정인 것은 엄마뿐이라 모든 악역은 엄마가 맡았다.

엄마가 가고 싶으면 가. 나는 아빠 딸이야.


이혼하고서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식구가 한 지붕에 산 적이 워낙 오래라 여느 때와 같이 엄마 따로 아빠 따로 번갈아 만나는 정도. 엄마는 남자 친구가 생겼다. 꽁꽁 숨기려고 하는데 꼭 현장에서 걸려서 사람을 허탈해지게 만들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만나면 만난다고 말을 하면 되지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는 데에 질려버렸다. 아빠도 여자 친구가 생겼다. 좋은 분이었고, 오래 만났다. 물 흘러가듯이 일상에 끼어들어와 자연스레 밥도 한번 먹고 집에도 드나들었다.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엿한 성인들이 교제를 하겠다는데, 인생을 재미나게 살겠다는데 딱히 말릴 필요가 있나. 하여튼 엄마는 여러모로 밉상이었다. 묵직하고 진중한 아빠의 태도가 여러모로 나에게 신뢰가 갔다.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혼 이후에 자식에게 더 유해지고 다정해진 것도 있었다. 아빠가 활짝 웃으면 한없이 사랑스럽다. 내 얼굴과 똑같아서 자꾸 보면 나까지 웃음이 난다. 종국엔 눈물도 찔끔 날 때도 있었다. 아빠는 할아버지도 닮았다.


그런 아빠가 20년의 결혼 생활 내내 셀 수도 없이 외도를 했었다는 것을 스물일곱 살의 여름에 알았다. 코로나가 한참 기승이라 바깥에 나갈 일이 없어 집구석에 앉아 맥주를 까던 때. 세상에서 제일 커다란 망치 한 방이었다. 뒤통수가 날아간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로맨티시스트에 거짓말 안 할 것 같던 나의 아버지가, 그 예쁘장한 얼굴로 모든 여자들에게 윙크를 하고 다니는 한량이었다니. 아빠가 먼저 작업을 건 것은 아닌 것으로 들었다. 아빠의 송승헌을 닮은 외모에, 타고나길 멋진 매너와 행동에, 너무 깊고 맑은 눈빛에 여자들이 넘어왔단다.

무슨 개소리인가. 그것은 부정이다. 왜곡된 윤리관이고 해서는 안될 짓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을까? 엄마와 아빠는 스물둘에 나를 가져 스물셋에 결혼했다. 지금 내 나이에 네 살배기 아이를 키우던 젊은 부부. 첫 애가 동생이 갖고 싶다고 말해서 또 임신 중이었던 그의 아내. 그들은 정말 사랑을 해서 결혼했을까? 약사였던 첫사랑 얘기를 지금까지도 생각하는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손만 잡으면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어.


훈육으로 자식을 뒤지게 패는 것, 그럴 수 있다. 처음 키워보는 새끼에 당황할 수도 있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남편보다 자식을 사랑하는 것, 그럴 수 있다. 늘 성에 차지 않았던 남편보다 적어도 외모를 닮아 곱상하게 태어난 딸내미에게 모든 걸 바칠 수도 있지. 자식 둘과 교육에 욕심이 많던 마누라의 뒷바라지를 하며 열심히 살았던 것, 인정한다. 오히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고작 내 나이 정도의 어린 아빠가 지금의 나이가 될 때까지 해왔던 모든 것들에. 하지만 그것이 수없이 이어진 외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것은 모로 두고 보아도 잘못된 짓이다. 제도적으로 나마 평생을 약속한 사람의 뒤에서 떳떳하지 못한 만남을 이어가는 것. 그 짓을 하고 대가리를 쳐들고 다니는 모든 인간들에게 개탄한다.


누군가를 사랑해야 실망 할 수 있는 걸까? 엄마는 아빠를 고생시켰기 때문에, 아빠가 바람을 피울 정도로 아빠를 사랑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에 담담하게 대꾸해야 했던 걸까? 아빠의 외모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선함. 선량하고 희생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기운이 온몸에서 퍼져나와 초등학교 때의 나는 아빠의 외도를 모른 척했다. 울며불며 죽어버릴 거라고 야밤에 차를 몰고 나간 엄마를 보고서도, 내심 엄마가 무언가 잘못 알았을 거라며 어깨가 굽은 아빠를 위로했다. 아빠의 껍데기는 그만큼이나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 많은 여성들이 그의 이러한 부분에 손을 뻗었다가 잡히게 되었으리라.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나는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아빠를 뿌리까지 미워할 수는 없지만 어떠한 부분에서는 엄마의 편에 서서 남편이었던 작자에게 경멸의 시선은 같이 보내줄 수 있다. 너무 늦게 알아버린 나머지 품어야 할 독기도 기운이 빠져버렸다. 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이혼했을까. 다 필요 없으니, 그냥 각자의 길을 가고 싶다고. 더 일찍 엄마의 편이 되어주었더라면 그만큼 엄마의 새 인생이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의 이상형이었던 아버지의 오욕으로 말미암아 나는 더욱이 수컷을 싫어하게 되었다. 뇌 속 깊이 믿을 생물이 아닌 것이다. 평생 악역이었던 엄마가 그저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의무감뿐인 결혼생활에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했고, 그 사이 수 없는 배신으로 힘들었을 이십 년. 나는 여성들의 편이다. 남성들의 입장은 듣고 싶지 않다.


그동안 외로웠을 엄마에게는 늘 아빠만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엄마를 많이 사랑한다고.



처음 엄마에게 외도가 걸렸던 십오 년 전, 아빠는 작가의 아버지와 똑같이 말했다. 그 여자는 바다고 엄마는 섬이라고. 마음의 심지는 항상 엄마에게 있다고. 그저 부드럽게 감싸 안길 바다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협잡꾼의 헛소리는 다 똑같구나. 작가의 어머니도 행복이 결여된 결혼생활을 버텨냈다. 그 사이에 샛길을 뚫어 혼자서만 재미나게 살길을 찾은 것은 아비 된 자들 뿐이다. 아무도 바람을 피우지 않는 세상은 없을지라도 부정을 저지른 인간이 용서받을 일은 없는 세상을 꿈꾼다.


내 아버지라서 욕을 하면 안 되나? 아니, 나는 할 수 있다. 내 아버지조차 그런 인간이었다는 것에 치가 떨린다. 사랑했던 모습에서 더러운 부분을 뼈까지 발라서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빠의 외도와 부정을 용서하지 않은 채, 그 배신감과 오명을 가지고 당신의 무덤까지 갈 것이다.


엄마에게 저지른 짓의 용서는 당신이 죽고 나서도 받을 일 없을 테지만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

혐오스러운 일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무결하지 않은 사람 없다지만 이렇게 흠이 클 것은 또 무언가. 매일 안부와 애정을 보내며 한 켠으로는 아빠에 대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캐롤라인 냅의 <드링킹>, 스물일곱의 밤에 겪었던 충격이 고스란히 떠올라 힘든 책이었다.


언니는 정말 몰랐어?라는 동생의 물음도.

아빠에 한해서 천근 같은 콩깍지를 쓰고 있던 나도.

아무렇지 않게 아빠가 만나온 여자들의 수를 손가락으로 셈하던 엄마의 얼굴도.


다 기억나게 하는 에세이, 캐롤라인 냅의 <드링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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