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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pr 05. 2021

당신의 코를 물어뜯고

캐롤라인 냅, <드링킹> 단상 1





<드링킹>, 캐롤라인 냅. 알코올 중독이 되어가는 인간의 심리와 극복 과정을 세밀하게 담아낸 에세이.


영화나 독서는 가끔가다 나와 같은, 혹은 비슷한 일을 겪은 이들의 사례를 마주치게 한다. 그때의 일을 상기시키고 무딘 기억을 되살린다. 공감 그 이상으로 화자의 묘사를 받아들이는 내가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래도 작가는 글을 쓴다. 자신이 겪었던 상처를, 행복을, 기쁨을, 따스함을, 고통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써내려 간다.

 

 

 

 

 

그 시절 내가 그럴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는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이던가, 아니면 덜떨어진 인간이던가? 모르겠다. 내가 그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 기억도 없다. 그에게 그런 욕망을 품는다는 것은 근친상간에 육박하는 일로 여겨졌다. 로저는 내게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서 받고 싶었던 것은 어린 계집애들이 아버지에게 바라는 종류의 칭찬과 승인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어린 소녀가 아니라 젊은 여자일 때, 그리고 술에 취했을 때는 그 소박한 소망이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그날 점심을 할 때 나를 휘감은 감정은 조바심이었다. ‘그를 기쁘게 해야 해. 그에게서 내 존재를 인정받아야 해. 그러려면 성적 접근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아는 방법은 그것뿐이니까.’


 

본문 121페이지, 제6장 <낯선 남자 그리고 섹스> 중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사십 대 초반의 애 셋 딸린 유부남. 조그만 고등학교에 더 조그만 미술 특성화반에서 눈에 띄었던 나의 재능. ‘언젠가 너 같은 아이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입에 발린 말. 꿀을 바른말. 명문 대학교 디자인과 출신, 부모님과 떨어져 살던 나에게 그림 그릴 재료와 장소와 비용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 보고 싶다는 한 마디에 지방에 열리는 전시회에 데려다주던 사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하얀 벽과 직접 만드는 프레스코화의 회반죽을 마련해 준 사람. 열여덟 나에게는 스승이자 아비였고 이정표였던 사람.


참 많이 믿었고 이만큼이나 나를 아껴주는 것이 고마웠다. 언제부터인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나를 꼬옥 안아주는 손길이 가슴을 스치고 허리를 감싸기 전까지는. 차 안에서 잡는 손길이 끈적해 지기 전까지는. 깊이 의지하던 사람이었다. 잃기 싫을 만큼 중요한 사람이라 신중하고 싶었다. 대놓고 주물럭 거린 것도, 불건전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예민한 가봐. 내가 민감한 가봐.


입시 문제로 바짝바짝 날이 서있던 열아홉의 여름, 매미가 맴맴 우는 한 낮. 화실 문을 열고 들어온 그에게 여느 때처럼 꼭 끌어안기다가 옷가지 위로 발기한 성기가 느껴졌을 때. 허벅지에서부터 불쾌한 촉감과 냄새가 올라왔을 때. 바싹 굳은 나에게 아무렇게 않은 얼굴로 웃어 보였을 때. 그제야 감이 왔다. 나는 지금 위험한 인간과 한 공간에 있구나.


 



“강 선생님이 나를 만져요. 애매하고 불쾌하게, 짜증 나지만 화를 내지는 못할 정도로.”


“그 사람이 나한테 고추를 비볐어요. 나를 오피스 와이프라고 불렀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죠? 엄마 아빠랑 밥도 먹었고, 내가 서울에 혼자 지내면서 선생님을 얼마나 좋아했는데. 가족이나 다름없었는데.”


 

눈이 동그래진 엄마가 말했다.



"그럴 분이 아닌데. 네가 착각한 거 아니야?"



가만히 듣고 있던 아빠는 말했다.


 

“남자는 다 그래.”



 

남자는 원래 그래. 듣자마자 모든 것 포기할 수 있었다. 미래도, 대학도, 인생도, 인권도, 몸도, 부모에 대한 기대도. 상황을 타계할 방법은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부모 된 자가 어찌 이리 무심하게 말할 수 있나 싶었다. 감정의 부품을 어딘가 떨어뜨렸나? 내가 느꼈을 끔찍한 기분을 짐작이라도 한다면 내 눈을 보지도 않고 그 말 한마디로 끝이 날 수가 있나.

이제는 이해한다. 아빠도 내가 모르는 모습이 있었다는 걸, 그래서 화가 난 딸에게 자신을 변호하듯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인간을 오롯이 사랑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모든 부분이 전부 사랑스러운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토기가 올라올 만큼 역겨운 구석을 가지고 있는 인간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아빠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을 사랑하면 재능에 목이 마르다.

‘어쩌면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미술을 가르치게 되었지도 몰라.’ ‘너는 특별하구나.’ ‘전설을 만들어보자.‘ ’미술사에 이름이 올라갈 준비를 해야지.’

어떤 미술 학도가 혹하지 않을 수가 있나. 나를 예뻐하는 이들은 너무나 많았다. 어딜 가나 눈에 띄었고 타인에게서 일방적인 호의를 받았던 시절. 그때의 기억으로 지금의 초라한 모습에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고 있는지.


한 줌의 사람들 속에서 미술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으며 콧대가 으쓱하게 높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가르치는 사람 역시 나만큼이나 뭔가 다르길 바랐다. 사실 나 부터가 새파랗게 어린 마음으로 나에게 제일 많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선택한 거면서. 그게 완전한 진심일 거라고, 미술에 한한 나의 장래성과 가능성 때문일 거라고 믿었다. 그 사람은 남성이고, 나는 못나지 않은 외모에 또래와 동떨어진 성숙함이 있었지만 재능을 알아봄에 있어 그런 것은 신경 쓸 일이 아닐 거라고.


질투와 시기는 늘 뒤를 따라다녔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어른이 나 하나 에게만 주는 편애. 그것이 주는 달콤함도 부인하지 않는다. 서양미술사와 예술 영화에 대한 논평, 고대 회화 기법 재현. 전국의 전시 관람과 일탈.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애들 사이에서 혼자 책만 읽다가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다니! 나는 우리가 정말 베로키오와 다 빈치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한국의 예술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말 내가 그만큼이나 특별한 줄 알았다. 이제는 아릿할 정도로 눈이 부신 과거의 일일 뿐이구나. 누군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때.


 

강 선생은 자신을 로댕에, 나는 카미유 클로델을 투영하는 것을 좋아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클로델의 안타까운 재능만 생각하던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 둘이 불륜 관계였다는 것을, 클로델이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낸 것을 그 사람은 알고 있었을까. 남자들이 예술 속에서 여성 작가의 어느 부분에 환상을 갖는지 투명하게 보인다. 그때는 그걸 왜 몰랐냐고? 내가 그걸 왜 알아야 하나?  미술이 좋고 지붕 아래 어른이 없었던 열아홉에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에게 갖는 성적 판타지에 대해서 조심하지 못했다고 비난받을 이유가 있나? 하나의 개새끼로 세 개의 교훈을 얻는다. 남성은 믿을 것이 아니다. 남성은 믿을 것이 아니다. 남성은 믿을 것이 아니다.


강 선생은 이미 13살 아래의 제자와 결혼을 하여 아이 셋이 있는 남자였다. 나는 그의 아이들도 예뻐했다. 화실에 놀러 와 붓 하나를 쥐여주고 같이 그림을 그렸다.

한 사람 때문에 인생이 바뀌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실패한 입시의 책임을 선생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도 않다. 로맨스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미술사. 그 안에 쓰인 여자들의 이야기는 나락뿐이다. 로댕은 까미유를 사랑했다 말하겠지만 그녀에게는 인생에 송두리째 몰아닥친 비극이었겠지.


 

강 선생의 화실에서 뛰쳐나오고 담임 선생님에게 상담을 하러 갔을 때, 나는 책 <은교>를 건네받았다.


 

"너한테 남자를 끌어들이는 뭐가 있나 보다."


 

그건 무슨 뜻이었을까.


그 사이 나는 어딘가 위험한 학생이 되어있었다. 선생에게 묘한 눈짓을 보내지도, 다른 애들처럼 몸매가 드러나게 교복을 줄이지도 않았던 내가. 모두가 여전히 나를 예뻐했지만 지나치게 예뻐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한 태도에 차츰 안심했다. 응당 어른이란. 어른이기 때문에 교복을 입은 학생에게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머리를 쓰다듬을 순 있으되 손깍지를 끼지는 않고, 화실에 초대할 수 있으되 다른 학생들이 있을 때 부르는 것. 원래 그런 관계여야만 하는 거였다. 귓가에 대고 네가 나의 오피스 와이프라는 소리를 지껄이거나 피곤해 보인다면서 내 목덜미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주무르는 게 아니라.


 

<은교>가 싫다. 박범신이 싫다. 그가 제자들을 보았을 시선이 싫다. 그의 썩은 머리를 토대로 나왔을 작품과 영화와 미화된 여성상이 싫다. 아이는 당신의 기운과 젊음을 빨아먹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고 순진하지도, 무지하지도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남성을 믿지 않는다. 부모님에 대한 기대도 하지 않는다. 인생은 알아서 살면 되는 거다.


난생처음으로 남성의 발기한 성기 감촉을 알게 되었을 때의  더러운 기분.

맨 땅에 벼락이 내려치는 것 같던 그때의 기분을 글로 쓰면 누군가는 알아줄까.


다시 열아홉의 여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당신의 코를 물어뜯고 소년원을 갈 테다.



상처는 사람을 좋아하면 받게 될 분명한 것들 몇 가지 중 하나다.


 

캐롤라인 냅, 이 먼 곳에서 당신에게 할 말이 아주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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