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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pr 03. 2021

요즘 소설은 이렇게 변했구나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감상




작가 장류진, 책의 제목은 <일의 기쁨과 슬픔>. 겨냥 독자는 눕혀놓고 봐도 2-30대 직장인 여성과 요즘 젊은이들. 모든 단편의 분량은 30페이지 내외. 무시무시한 가독성, 낯설지 않은 주제. 그리고 뒤끝 남지 않는 불편함. 누군가는 이 작가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될 것이다.



선물을 하고 싶은 책이다. 생각나는 사람만 다섯 명이 넘는다. 고호봉 장애인 사회복지사인 혜미, 정부 기업에서 일하다가 코로나로 유급휴직 중인 경주, 모교 대학 조교 일을 하며 취직을 준비 중인 주영이. 내가 해외에 나가기 전에나 잠깐씩 보는 애들이지만 알고 지낸 지가 벌써 6년 째다. 연애와 이별도 도전과 실패도 희망과 무력감도 같이 나눈 녀석들이다. 이 책은 내가 아니라 그 애들에게 읽혀져야 했다.



 이 책의 '서평'을 써보려고 했다. 시도는 했다. 결과는 도저히 어디 내놓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았고, 시종일관 비꼬는 표현을 쓰게 되는 바람에 못된 글도 이렇게 못돼 먹은 글이 없었다. 이제야 인정한다. 이 소설은 내가 싫어하는 주제와 장르를 싹싹 긁어서 쓰여졌고, 나는 아주 비위가 상했고, 세상은 이제 이런 소설에 열광한다는 것을. 매일 하는 생각이지만 시대에 도태되고 있는 인간이라 차라리 마음 편하다. 그리고 소설을 선물 받을 친구들이 하나 둘 책을 읽고 나서 ‘내 얘기 같아. 책 너무 좋다.’와 같은 문자를 보내 올 걸 상상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기도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구직난에 고민하며 사랑과 여행을 반복했던 녀석들의 얘기로도 드라마 몇 개가 뚝딱 나오는데. 너흰 이 책에 감동하게 될 거야. 적어도 나보다는 인상적으로 느끼겠지. 안 씌워지는 콩깍지를 억지로 만들어본다.



눈치 보이는 상사와 동료가 있는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 결혼식이니 장례식이니 하는 경조사에 많이 다녀본 사람. 처음 독립해 혼자 살아보는 사람. 유튜브 프리미엄을 이용하는 사람. 자신을 돌아보기엔 너무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이 모든 부류에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우동 면발을 빨아들이듯 호로록 몰입되는 이야기에 내가 정 붙일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이 서비스직이라 직장생활을 묘사한 단편에 공감을 못했던 것이라면 이보다는 감상이 후했을 것이다. 질색이다 못해 책 전체의 점수를 깎아먹은 것은 ‘다소 낮음’이라는 작품이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유행들이 파도처럼 따라오기 마련이지만 어쩐지 나는 그런 것들을 듬뿍 머금은 작품이 불편하다. 아무리 적절한 단어라고 생각해도 글 속에 유행어나 은어를 쓰고 싶지 않다. 어쩐지 지나치게 가벼워지는 기분이라서. 이 책 속 이야기도 그렇다. 좋게 말하면 상큼하고, 아삭하고, 싱그럽다. 다만 구석에 곰팡이가 좀 피었을 뿐. 부유하는 젊음이 느껴진다. 정말 부유한다. 넘치는 외래어와 입소문을 타는 애플리케이션, 직접적인 SNS의 언급. 지금은 인스타지만 이전엔 페이스 북이고 네이트 판이었고 싸이월드였겠지. 무엇을 보며 아, 이거 구식인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싫다. 적어도 내가 쓰는 글에는 그런 것을 최대한 줄이고 싶다.


나 역시 직장생활을 해왔지만 사무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었던 걸까. 아니, 작가가 주류에 있는 다수를 노리고 집필을 한 것이다. 홍대, 판교, 우스운 육교, 인디 밴드. 지방 도시에서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을까. 되려 서울에 대한 환상과 기대만 커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이 책은 먹혀 들어갔고 타깃의 테두리 안에 들어있지 않았던 사람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유행을 등지고 싫어하는 것이 많은, 낮은 파도를 타고 있는 사람.


해외여행, 유튜브, 신혼과 결혼의 얘기까지 단단히 작정을 했구나. 테두리의 교집합을 커다랗고 견고하게 만들었다. 적나라한 편 가르기다. 어떤 집합에도 들어가지 못한 나는 이 책에 낄 수 없었다.


나는 이입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느 서부의 노예주도 되어보았고, 혼외 자식이 있는 변절녀도 되어보았으며, 여러 소설에서 다양한 상황과 직업에 풍덩 빠지는 것을 한없이 즐기는게 나다. 그저 이 책이 나를 소설 밖에서 겉돌게 할 묘사 밖에 하지 못했을 뿐이다.



서평이 아니라도 못된 말만 하는구나. 이 책은 내 취향이 아니다. 아쉽게도 내 취향이 아닌 것들로만 똘똘 뭉쳐져 어떻게 해도 좋아할 수 없을 책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기분 전환이 되고 위안이 되고 생각할 거리가 되어줄 것이다. 작가의 재능에 질투가 난다. 세상 살아가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이다. 시대의 파도를 매끄럽게 타고 올라가는 서퍼같은 사람. 소소한 시기와 동경을 보낸다. 하지만 내 글은 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나중에라도. 어떤 경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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