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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pr 08. 2021

02. 언니는 왜 그만뒀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상상만 한다

​​


일하게 될 곳에서 직전에 일했던 직원은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클래식 바 경력이 출중한 여자 바텐더였다. 알고 보니 이태원 바로 맞은편 가게에서 일하며 안면을 텄던 분이기도 했다. 절친한 사이까지는 못되었지만 좁디좁은 한국의 바 씬(Bar scene)에서 건너 건너 이름을 알고 있었다. 직업정신이 강한 언니의 성격상 입사한 직장을 한 달 만에 그만두고 귀국했다는 것이 의아했다. 바텐더로서 누구보다 반짝거리는 사람이었는데. 그리고 매니저의 입에서 콕 집어 한국인 ‘여자’ 바텐더를 구한다는 말도 탐탁지 않았다.


클래식 바에서도 ‘바 안에 여자가 한 명은 있어야 보기가 좋다.’는 이유로 구성원에 여성 바텐더를 끼워 넣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남성들만 득실거리는 공간보다 여자가 하나 즘은 서있는 것이 들어오는 손님의 위압감이 덜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바텐더의 비율이 높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바 안에는 늘 남성 인원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것은 또 여성들이 주르륵 바 안에 서있으면 불건전한 하류 문화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유흥과 서비스의 사이는 뭘까. 저렴해서도 고고해서도 안되지만 손님들과의 대화에 흠이 보여서도 안됐다. 입을 다물고 먼 산만 보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근무를 하면서도 나는 웃음을 팔기 위해 바에 들어온 것이 아니며, 술과 조주에 대한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손님을 응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했다. 조니워커 블루와 시바스 리갈의 시장을 폭발적으로 확대시킨 퇴폐 유흥주점과 내가 일하는 클래식 바는 결코 결이 같아서는 안 되는 거였다. 주류 시장에 새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구분되어야 했다.



언니는 왜 그만뒀을까. 직장에서 어떤 점이 힘들었을까. 알음알음 연락처를 구한다고 해도 퇴사 후 좋은 휴가를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사적인 문제로 난데없는 연락을 해도 좋은 걸까.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이 일터와 동료 및 주변인들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내가 생각해본 전 직원의 퇴사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간추려졌다.


1. 손님들의 행태가 좋지 않다(ex. 무례하다, 바텐더에게 함부로 대한다 등등)


2. 사장과 마음이 맞지 않는다(바에 대한 전반적인 무지, 바 내부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지시사항 등)


3. 단순 변심, 혹은 가게의 인테리어나 분위기에 대한 취향의 문제



사실 3번은 논외로 쳐도 되는 문제다. 현지에서 가게를 보고 사장과의 면접을 걸친 이상, 단순히 외관적으로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퇴사할 확률은 극히 적을 테니까. 1번과 2번과 같은 이유로 언니가 퇴사로 결심한 거라면 같은 문제는 내게도 똑같이 발생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항들에 대한 각오를 해야 했다. 매니저조차도 싱가포르의 가게를 몰랐고, 나는 사장의 목소리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가정할수록 좋다. 지금 같은 상황에 위안이 된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몇 배는 질이 나쁘지만, 그래도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에 울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있다. 내 선택이다. 다 짐작했으면서도 날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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