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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pr 12. 2021

03. 얼굴도 보기 전에

살 얘기부터 하시네요





'저희 고객님들이 해인 바텐더에게 관심이 많아요 살찌면 안 되고 밝게 응대해줘’


‘내일부터 음식 조절하고 다이어트합시다’


자가 격리 중에 여사장으로부터 받은 문자 내용이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서 이런 문자를 받았다. 기분이 복잡해진다.


문자를 받고 하루 이틀 동안 밥만 먹으면 토를 했다. 주섬주섬 운동도 시작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참 말라비틀어지게 한다.


여사장의 말에 남사장과 매니저는 웃음표시가 다였다. 얼굴도 모르지만 여러 가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여사장은 여자 바텐더의 외모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것. 자칫 무례가 될 수 있는 말을 생각 없이 내뱉는 사람이라는 것. 내 옆구리에 살이 붙고 얼굴에 여드름이 올라올 때마다 이 쪽을 주시하고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남사장과 매니저는 그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을 거라는 것. 삼일 째 체중에 대한 문자를 받은 날, 나는 바로 옆 객실에서 격리 중인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이 체중에 대한 얘기를 계속 언급하시는데 상당히 불편합니다. 제 외관에 대해서 사장님이 이렇게까지 신경 쓸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아직 서로 인사도 하지 못한 상황에 문자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다소 무례하다고도 느껴지고요. 근무 시작 전이지만 제 생각을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드렸습니다. 저는 제 외모를 전시하기 위해 온 게 아니라 칵테일과 위스키에 대한 기술을 사용하러 온 사람이에요. 바 내부가 특별히 좁다거나 통행에 문제가 되는 등 업무에 지장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면 외관에 대한 첨언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장님을 뵌 적도 없고 어떤 분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태인데 계속 이런 주제의 대화는 저에게 어떤 긍정적인 감정도 들게 하지 않아요. 근무를 시작하고 나서도 사장님의 이런 태도가 계속되면 분명히 언젠가 저와 갈등이 생길 것 같습니다. 일 년 동안 같이 일하게 될 직원의 입장으로 드리는 말씀이니 매니저님이 사장님들께 잘 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매니저가 말을 잘해주었는지 여사장은 그 후로 외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되려 살쪄도 된다는 말을 해 너털웃음이 나게 만들었다. 자가격리 때 이런저런 음식들을 올려보내 준 것에 감사하지만 그때 먹은 것들도 죄다 토해버렸다. 칼로리 높은 음식들을 넘치도록 사식으로 넣어놓고는 나한테만 살찌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다니.


입사 전, 당신의 얼굴도 보기 전에

자가격리하는 14일 중 10일을 내내 토하게 했던 사장님의 한마디.


‘살찌면 안 돼’



싱가포르에서의 바텐더 생활이 벌써부터 편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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