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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pr 24. 2021

내 눈에는 예쁜 쓰레기를 만들어 볼 거야

여성의 '처녀성'은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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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마을에선 여성의 성기가 곧 권력이다.

2. 남성이 심리적으로 박탈감과 위압감을 느끼는 여성만의 권리.

3. 성경험이 없는 여자와 첫 섹스를 하는 남자는 위험해지거나 저주를 받는다.

4. 어리거나 성경험이 없는 여자가 거리를 지나가면 남성은 몸을 숨기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피해야 한다.

5. 여성의 첫경험에 사용당한 일반 남성은 부정이 탈까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고 외면받는다.

6. 까불지 마라. 확 너랑 섹스 해 버리는 수가 있어.​


7. 여성의 자비가 남성들에게 구원이다.

8. 남성기 삽입 섹스의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레즈비언은 마을에서 괴물로 불린다.

9. 그들은 위풍당당하고 위협적이다.

10. 월경이 안정된 여성들은 성행위에 호기심이 많아 섹스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능동적이다.

11. 여성이 마음먹으면 남성을 위협하여 첫 섹스를 할 수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

12. 남성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


시나리오 창작 프로그램 스토리 구상. 폴 서루 <여행자의 책>, 멜더빌의 놀라운 이야기들 중 이상한 마을에서 영감을 받아 착안.​


가제 : 버진 인터뷰


​​​​




이승우,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


밑그림을 그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생각으로는, 질문하는 것이다. 질문의 꼬리에 질문을 갖다 붙이는 끊임없는 질문의 연쇄를 통해 스스로 길을 터가는 방법. 하나의 질문은 하나의 대답을 만든다. 그리고 그 대답은 다시 다른 질문을 배출한다. 질문과 답의 되풀이가 일정한 회로를 만들면서 부분에서 전체로 확대되고, 마침내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한다. 질문이 없으면 대답도 없다. 질문이 없으면 소설도 없다. 여기서 중요한 의문문은 ‘왜’와 ‘어떻게’이다.



*


시나리오 제작 프로젝트를 신청해놨더니 요즘 내용과 주제 구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폴 서루의  <여행자의 책>을 읽다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을 발견해서 신이 났다가 또 진퇴양난에 빠져버렸다.

내가 생각한 것은 ‘여성의 처녀성’에서 오는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것이었다. 신화에서나 동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경험이 없는 여자에게 씌워지는 환상 같은 이미지. 여성의 처녀막이 마치 남성들의 전유물인 것 같은 그 역겨운 시선.

멜더빌의 책에서 묘사되는 마을도 다분히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간단하게 추려보면

1. 여성은 결혼 첫날밤에 남편에게 부탁받은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다.

2. 남편은 아내와 섹스해준 남성에게 높은 보수를 지불하고 크게 감사한다

3. 이 마을에서 여성의 처녀성을 훼손하는 것은 위험이 따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게 전부다.

나는 여기에서 여성의 처녀성이 남성에게 ‘위협’이 된다면? 남성이 자신의 성기가 여성의 처녀막 사이에 갖다 박히는 것을 끔찍하게 무서워하게 된다면? 월경이 안정된 여성은 성욕이 왕성하고 육체적으로도 문제가 없어 기회가 되면 섹스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면? 어쩌면 되려 섹스가 하고 싶어 몸이 들썩거린다면?이라는 방향으로 주제를 돌렸다.

여성과 남성의 섹스 유무는 왜 이다지도 다르게 인식될까. 섹스는 뭘까.

어리고 섹스 안 한 여성은 남성에게 정복의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나이 먹고 섹스를 안 한 여성은 마녀가 된다. 또 마음껏 섹스하고 살아가면 요부라고 불린다. 그에 반면 남성은 어떤가? 섹스를 해서 얻어지는 오르가즘을 인생에 기본권인양 이야기를 하고 아직 성경험이 없는 남성은 조롱하며 놀린다. 남성에게 섹스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섹스를 못하는 사람은 도태되고 무능한 인간이다. 그 속에 순정은 있을까. 순애는 있을까. 진정 의문이 든다.


나는 이십 대 후반의 성경험이 있는 여성이고, 내가 보아온 주변의 남녀들은 이 악순환을 돌고 돌았다. 상실한 처녀성에 죄책감을 느끼는 여성과 셀 수 없는 성경험을 가지고도 늘 처녀를 찾아 헤매는 남성. 혐오스럽다.

나의 좁은 인간관계가 이러한 군상만 마주치게 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모르는 사회까지 굳이 찾아서 대변하고 싶지 않다. 이십 대 중반의 나는 이런 광경을 보아왔다. 어리둥절하고 기가 막혔다. 세상은 어쩌면 이렇게 기울어졌을까.​


아주 오래전에, 고등학생 때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었다. 책의 배경은 현대사회이고, 상당히 탄탄한 내용이었다. 고대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대를 창조하는 여성을 상위 포식자로 보았고 그때의 관습이 현대까지 이어져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권력을 당연하게 가져가는 세상. 여성을 모르는 남성은 그 순결함에 칭찬받고 예쁨 받는다. 여성은 아무에게도 정복당하지 않은 남성을 정복하기를 원한다. 남성은 여성 앞에서 몸가짐을 조심히 하고, 밤에 길을 걷는 것을 꺼린다. 일이 그르치더라도 남성이 조심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가닥이 비슷하지만 나는 '처녀성'에 중심을 두고 싶었다. 그리고 ‘조심해야지’ 정도가 아니라 남성이 죽거나 위험해지는, ‘생명에 위협’이 걸릴 정도의 상황을 원했다. 설정을 정하려고 보니 하나같이 두루뭉술하고 의아한 부분들 뿐이다. 이 주제는 로맨스로 해야 할까, 스릴러로 해야 할까, 다큐멘터리로 해야 할까? 이상한 마을이라면 현대와 떨어진 정글 속 어느 마을로 해야 하는 걸까. 이 설정을 현대로 끌고 들어온다면 어디서부터 고안을 해야 할까. 법정 드라마나 범죄 수사물로 가게 된다면 그 이야기를 매끈하게 진행할 능력이 나에게 있을까? 막힌 곳 보다 구멍이 더 많은 나의 이야기에 어떻게 풀을 먹여 멀쩡해 보이게 만들 수 있을까.

일부러 제목이 거창한 소설 쓰기 책을 꺼내보았는데 괜히 기만 더 죽고 말았다. 5월 8일에 시작하는 강의니 그전에 최대한 속을 많이 썩어놓고 혹시나에 대비해 다른 이야기들도 몇 개 더 궁리해봐야겠다. 처음 해보는 시나리오 제작이니 또 하나의 쓰레기를 만들게 되겠지. 그래도 내 눈에는 예쁜 쓰레기이기를 바란다. 기분 좋은 의욕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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