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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Apr 26. 2021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니

'어차피 죽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본문 중


죽음에 대한 이상한 갈망, 그리고 나 자신의 시시함과 쓸모없음에 대한 통렬한 자각에서 비롯한 죽음에 대한 공포. 어쩌면 이것은 사람들이 불안이나 고뇌라고 말하는 기분과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같지 않다. 최소한 정확히 같지는 않다. 절망은 내가 참으로 작고 약하고 이기적이고 의심의 여지없이 언젠가는 죽을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느끼게 되는 견디기 힘든 기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 죽고 싶은 것에 가깝다. 배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다.



*




가끔 그런 때가 있지 않나. ‘어차피 죽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

하루하루 이어지는 지루한 출근길과 잠깐 내 마음을 즐겁게 하고 사그라드는 온갖 유흥거리 속에서 불현듯, '어차피 죽을 텐데.' 하게 되는 날.

눈 앞에 모든 게 갑자기 멀게만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내딛던 걸음 밑에 당연스레 존재하고 있는 대지의 단단함이 낯설다.

그런 때가 있다. 지금도 쿵쿵 뛰면서 수명을 줄여가고 있을 내 심장을 붙잡아 좀 덜 열심히 일하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


인간은 기필코 죽는다.


인간은 한 번을 죽기 위해 평생을 살아낸다. 각자 다른 수명과, 제각각인 운명을 죽을 각오로 버티면서 살아낸다.


누군가가 낳아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다.


힘들고 고될 때, 모든 것이 까마득하고 눈물이 나는 날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것을 다 잊었다. 마냥 침대에 누워 세상이 무너진 듯이 좌절만 한다.

그리고 햇살이 눈부시고 거리가 소곤거리는 여느 때와 같은 출근길에, 무심코 상기해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나는 죽어버리리라는 것을.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될 조금의 돈과, 공을 들여 썼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내 이야기와, 이렇게 사라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추억들을 뇌와 심장에 나눠 안고 나는 화장을 당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도 그때가 오겠지. 기필코 오고야 말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도 심장은 눈치 없이 평소처럼 뛰고 있다.

내가 살아 있어서 손톱이 길고 털이 자라고 각질이 쌓이는 거다.

눈에 보이는 곳들이 이모양인데 속속들이 씻어낼 수도 없는 내장 안은 어떤 꼴이 나있을지 들여다보기 무섭다.


불편함 없이 걷고 있는 나의 다리와 무리 없이 움직이고 있는 온몸의 관절. 렌즈를 끼워 넣어 앞에 있는 것도 멀리 있는 것도 그럭저럭 잘 보이는 시야. 집중하지 않아도 귓구멍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소리들.

이것들도 언젠가는 낡고 오래되어 사용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바람을 넣어줄 수도, 기름칠을 해줄 수도 없이 마냥 삐걱거려야 하는 몸을 추슬러야 하는 때가.


내 마음은 육체보다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둘 중 어느 쪽이 오래 성한 것이 죽음 앞에 태연할 수 있을까.


아직 죽을 때가 아니기 때문에 살아있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아도 계속 살아있다.


먼저 죽으려고 욕심내지 않아도 나는 죽게 될 것이 때문에.


또 한적하고 햇살 좋은 출근길에, 혼자서 이 생각을 하게 되겠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지금까지 뛰어왔고 아직 뛰고 있고 조금 더 뛰어줄 그의 노고에 감사하며

(내 거죽 밑 흰 뼈 사이에 보호받고 있을 불그죽죽한 나의 장기. 심장.)

오늘까지는 말썽 없이 멀쩡하게 작동해주는 나의 28 연식 몸 구석구석에 안도하며

(직업적으로 특히나 괴롭혔던 발바닥과 달팽이관의 건재함에 대한.)


여느 때와 같이 가게로 들어가는 열쇠를 왼쪽으로 두 번 돌려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작은 나.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


그래도 온몸 가득 살아가고 있다는 에너지를 가득 품은 나.


기특한 내 몸.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내 몸.


언젠가 도자기 그릇 안에 하얀 가루가 될 나의 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죽음에 대한 자각을 데이비드 윌리스의 책 한 구절에 다시 생각한다.

바로 앞에 파도가 있어서 자살충동과도 같은 절망을 느낀, 데이비드 윌리스의 호화 크루즈 탑승기.


그는 분투하는 인간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자연의 일부로 돌아갔겠지만, 언젠가 힘차게 역동하는 육체로 이 글을 쓰기 위해 배 위에 올랐을 그를 생각하며.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아직 다 읽지 않은 그의 호화 크루즈 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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