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Apr 27. 2021

호주의 아웃백 한가운데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했던 생각들


한승태 <인간의 조건>

‘5.T G I F - 당진, 자동차 부품 공장’ 중


​​

열두 시간짜리 단순 생산직을 택한 이유 중 하나가 머릿속에서 생각이란 걸 지워버리고 싶어서였지만, 일이 너무 지루해서 오히려 생각을 자극했다. 그것도 아주 지루한 생각들을.



*



이 구절을 읽으니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있다.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리라 안심했던 단순노동의 한가운데에서 제일 깊은 고뇌로 빠져들었던 기억. 배경은 호주다.



시급이 높은 나라에서 나는 돈독이 올랐다. 막말로 할 수 있는 일에 전부 찔러보던 시절이었다. 레스토랑 일을 하면서도 타일 시공일이나 꽃집 조수로 지원해서 하루에 두세 개씩 일터를 나갔다. 그 와중에는 호화스러운 카페를 청소하는 일도 있었다. 새벽 12시부터 4시. 짧은 시간이었고 업무도  많지 않아 게으름 피우지만 않으면 거뜬히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삼일을 일하고 나는 커다란 우울감에 빠졌다.



화장실에 들어가 휴지를 갈고 쓰레기봉투를 치우며 머리를 꽉 채우는 생각들. 그중에 긍정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선택해서 하게 된 일이었고 동료 중 누구 하나 내게 모나게 구는 사람도 없는데 변기솔만 들면 기분이 착잡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면서도 그럴 리 없다는 반문이 동시에 들었다. 귀천이 없는 일이 어디에 있으랴. 따지고 보면 사람 목숨에도 무게가 다 다르게 측정될 걸. 위선자들. 가식덩어리들. 바른말을 하는 척 밑바닥에는 떨어져 본 적 없는 부르주아들.

나는 한 달을 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이만큼 마음이 어지러운 네 시간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느낌을 나는 몇 달 뒤에 다시 마주하게 된다.


호주 구석의 시골 레스토랑은 시스템이 특이했다. 우리 회사는 레스토랑에 농장과 모텔이 딸린 대규모 사업체였는데, 농장일을 하는 워커들은 따로 있고 웨이트리스가 레스토랑과 모텔 리셉션을 번갈아 관리하는 식이었다. 4시부터 10시까지 레스토랑에 근무하는 주간에는 아침 7시 반부터 전화기를 옆구리에 끼고 모텔 예약 전화를 받아야 했고 모텔 손님이 조식을 주문하면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한 명이 레스토랑과 리셉션서비스를 관리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하우스키핑을 했는데, 모텔 손님이 퇴실한 뒤 방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침대 시트를 갈고, 욕실 비품을 채워놓고, 환기를 시키고 청소기를 돌린다. 마당은 매일 쓸고 이삼일에 한번 정도는 리셉션 사무실과 공용 키친도 청소했다. 내가 일했던 곳은 이렇게 돌아갔다.



사실 하우스키핑을 하는 주는 고된 것이 없었다. 한가한 시골마을이라 손님들이 퇴실하는 10시 전후에 마음먹고 청소하면 일이 오후까지 가는 일은 드물었다. 숙박객이 없는 날에는 마음껏 늦잠을 잘 수 있었다. 손님들을 상대하고 영어로 통화하는 일이 많은 레스토랑 주간에는 오히려 하우스키핑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육 개월 만에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호주에서의 생활은 지금 생각해도 기묘한 구석이 있다. 그때의 나는 용감하게 노트북도, 이북도 없이 시골에 들어갔는데, 작은 마을에 영화관이며 미술관이 없었던 것은 물론 인구수도 300여 명이 채 되지 않아 미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대형마트가 있는 소도시까지 자동차로 편도 한 시간 반. 한식집과 코스트코가 있는 곳까지는 편도 네 시간이 걸렸다. 작은 마을의 동양인 웨이트리스로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대외활동도 극단적으로 멀리했다. 일터를 제외하면 만나는 사람이 전무한 생활. 혼자서라도 끊임없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지만 그 누구도 내가 쓴 글을 읽어주지 않았다. 내 그림을 보아주지 않았다. 나는 계속 끝도 없이 안으로 파고 들어갔고, 내가 사랑해왔던 내 모습을 더 이상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내일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던 나는, 누가 뭐라 해도 내 인생은 꽤 마음에 든다고 씨익 웃을 수 있던 나는 어디로 갔지.



일은 비교적 편했다.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도 취미생활에 쓸 시간이 꽤 많이 남아돌았다. 여유 넘치는 일정, 보장된 휴무에 날씨는 항상 눈물이 날만큼 좋았다. 은하수라는 걸 처음 볼 수 있게 해 준 호주. 달무리와 별똥별을, 지구의 위대함을 물먹은 솜처럼 머금고 있던 호주. 스스로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손님이 하룻밤 자고 나간 이불 시트를 구겨접다 보면 머리 안쪽이 먹물처럼 새까매졌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뭘 하는 거지. 지금 이 시간은 나에게 얼마나 발전적인 것일까. 먼 훗날 나는 지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밤마다 그렇게 나쁘지 않다며 자위하고 다음날 아침 청소할 방문 앞에서 자책하기를 매일 반복했다.

그렇게 육 개월이 넘어갈 때 즘 나를 아껴주던 셰프님이 어깨를 잡았다.

한아. 너 잠깐 쉬어야 될 것 같아.

손님들과 떠들 기회도 키친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나눌 우스갯소리도 서류로 남길 골칫거리 재고관리도 없던 하우스키핑 주. 그저 늘 하던 대로 방을 하나씩 하나씩 청소하면 될 뿐인 몸 편한 주. 나는 그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눈 앞에서 펄럭거리는 새하얀 침대 시트를 매트리스 아래에 꼭꼭 말아 넣으면서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했다. 여기가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만큼 나에게 잘 대해주고 잘 챙겨줄 곳은 없어. 다른 데에 가면 인정도 받지 못하고 실패한 인생들이 하는 일이나 하게 되겠지. 이런 생각들로 머리를 채운채 내가 아직도 사람들이 말을 타고 다니는 시골마을에 머무는 것에 대한 합리화를 했다. 엄살을 부리면 안 돼. 나는 어른이야. 어른은 이 정도로 힘들어하지 않아. 봐, 몸도 이렇게 편하고. 일은 단순하고. 돈은 따박따박 들어오고. 다들 나를 좋아하고, 가지 말라고 하고, 더 같이 일하자고 말해주고. 또 어디에서 나를 이렇게 불러주겠어. 그런 생각.



그렇게 이 개월이 더 흘렀다.

나는 내가 제일 소중한 인간이라 어지간해서는 내상을 잘 입지 않는데, 그때는 아마도 정신병의 초기 증상이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만큼 속이 썩어있었다. 나는 나를 가장 아껴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남들이 어떤 삶을 살아도 내 인생은 내가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이기에 고집과 뚝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철학이었다. 자랑할 수 있는, 후회 남지 않는 삶을 살자. 지금껏 해온 선택에 한 점의 미련이 없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자. 나는 멋있는 인간이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나를 깎아내려선 안된다. 타인의 평가에서 시정할 점은 늘 생겨나겠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일 뿐 내가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아니다. 다듬어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어딜 가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그 당시에는 단 한 톨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아주 오래 전의 일들 같았다. 나는 모래바람이 부는 아웃백 한가운데의 시골마을에서 책과 미술이 있는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흰 시트를 둘둘 감은 채로 죽어야 하는 거였다. 내가 도망갈 곳은 세상에 없었다.



많은 입력값이 필요 없는 일에는 이런 대가가 따르는 모양이다. 아무리 레스토랑 주간에서 즐거움 가득한 한 주를 보내도 하우스키핑을 하는 주면 여지없이 무력감과 좌절감에 푹 빠졌다. 점점 부정적인 기운에 절어가는 내가, 말과 행동이 날카로워지는 내가 셰프님은 퍽 걱정이 되었나 보다. 작가의 묘사를 보니 새삼 그때가 생각이 났다. 지금 나는 그 순간을 ‘인생 최초로 정신병이 올 뻔했던 때, 혹은 우울증 초기의 증상을 몸소 겪어본 때’로 회상한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것은 그런 느낌이구나. 머리가 굳고 자신을 학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속 편한 인간이라 그때의 경험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내가 나를 이렇게 싫어할 수 있다니. 이렇게 스스로를 쓰레기처럼 생각할 수 있다니. 나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해버렸고, 지금은 그곳을 떠나와서 적당히 행복하다.

이제는 노트북도 있겠다 이북도 있겠다 영화와 책과 같은 문화생활을 실컷 누릴 수 있으니 지금 다시 돌아가면 그때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스물여섯 살 이런 생각으로 감성을 좀먹으며 보냈던 것도 후회하지 않는 일 중 하나다. 호주에 머물러보기는 잘한 일이었다. 나의 경험이 늘 그랬듯 역시나 많은 것을 느끼고 얻은 일 년이었다.



귀를 닫고 손을 움직일수록 머릿속은 포화상태가 된다. 메뉴를 주문받고, 재고를 정리하고, 매출을 보고해야 한다. 하루하루 다른 숫자들과 다른 주제들과 부대껴야 한다. 고인 채로 오래 두면 이끼가 동동 뜬 썩은 물이 되듯이 인간의 뇌수도 빙글빙글 돌아야 신선해진다. 흘러야 한다. 정적인 것은 하루하루 기어가듯이 돌아가는 지구만으로 충분하다. 매일 같이 뜨고 지는 해와 달로 충분하다. 펄쩍펄쩍 뛰고 데구루루 구르자. 지루한 생각들이 따라붙을 틈이 없게. 생각을 피해 도망간 곳에는 제일 후지고 역겨운 사념들이 따라붙는다. 생각으로부터 도망해선 안된다. 머리가 목 위에 달린 이상 어디에도 생각이 없는 곳은 없다.



작가는 당진의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나는 뉴사우스 웨일스 구석의 시골 모텔에서 교훈을 얻었다.

우리는 건강해질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분명히 내일 또 오늘보다 건강할 것이다.




나에게 쏟아질 것 같은 은하수를 보여주었던 호주의 아웃백.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