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Apr 30. 2021

못된 아이라는 엉덩이 도장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말했다




리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는 이유는,

    바보들만 있는 이 큰 무대에 왔기 때문이다.

    When we are born, we cry that we are come

    To this great stage of fools.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 중



*


큰일이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은근슬쩍 옛글을 뒤져 써놓았던 책의 감상을 올려볼까 하다가 양심이 콕콕 찔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런 날엔 전 세계의 베스트셀러 셰익스피어의 문장이 특효약이다.

웅장하고 근엄한 영어의 몇 마디를 쫌생이에 새가슴인 내가 중얼거린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엉엉 우는 이유는, 바보들만 득실거리는 거창한 무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생겼기 때문이야!



태어날 때 내 엉덩이에 묻은 몽고반점은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모아 잡은 정도의 조약돌만 한 크기였다. 어릴 때는 손이 더 작았으니 엄지손톱만 했을 수도 있겠다. 엉덩이골에서 오른쪽에 조금 치우치게 콕 찍힌 몽고반점. 애기의 하얀 피부에 유독 꺼매 보였던 나의 몽고반점.

초등학교에 들어갈 즘이었나. 그보다 더 전이었나. 허구한 날 거울 앞에서 맨 엉덩이를 까고 이리 씰룩 저리 씰룩하다가 지나가는 아빠를 잡고 물었다.

“아빠, 이게 뭐예요?”

“뭐긴. 몽고반점이지.”

“이건 내 엉덩이에서 언제 없어져요?”

“해인이가 아빠 말 잘 들으면 없어지지. 흔적도 없이 싹 사라진다.”

“그렇구나.”


“그런데 아빠 말 안 들으면 계속 커질 거야. 점점 커져서 손바닥만 해질 걸.”



지금 거울 앞에 선 내 뒷모습은 오른쪽 엉덩이와 궁둥이는 물론이고 허벅지의 절반이 푸르뎅뎅한 살색이다. 잘 보니 엉덩이 골을 너머 왼쪽의 허리까지 침범했다. 지구본 위에 못생긴 대륙 같은 내 몽고반점.

그렇다. 나는 아빠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안 들은 것도 아니고 아주 그냥 지지리도, 필사적으로, 온 힘들 다해서 듣지 않았다. 손바닥은 커녕 지구도 깔아뭉갤수 있을 퍼런 점을 스물 여덟적까지 달고 살면서 종종 아빠를 생각한다. 아빠말을 듣지 않으면 계속계속 커져서 평생 없어지지 않을 거라던 장난스러운 그 말. 엉덩이의 반점이 얼마나 커졌는지 모를 아빠는 요즘도 내가 얼마나 말을 안듣는 아이였는지 말하며 파르르 몸을 떤다. 오백원짜리 크기의 점 하나가 커지고 커져서 한쪽 엉덩이와 허벅지 반을 타고 내려오는 정도의 고생을 했을 엄마와 아빠. 그리고 그 고생의 증거를 훈장처럼 볼기에 붙이고 사는 나. 애기때만큼 색이 짙지 않아 가끔은 있다는 것도 깜박하는 놈이지만 워낙 거대한 면적에 딱 피멍이 든 색깔이라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깜짝 놀란다. 수영장 탈의실이라도 가보면 내 엉덩이만 눈에 띄게 다른 색이다. 아빠말 안들은 딸의 죄는 이렇게 남았다. 우스꽝스러운 색깔의 엉덩이 도장으로.



엄마의 배에 칼을 대고 나온 나도 기억나지 않는 처음에 울었을 것이다. 뱃속에서 양수만 마시다가 억지로 폐에 공기를 집어넣느라 울었을 것이다. 인간이 모두 한때는 실험실 교본처럼 물에 잠겨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잉태는 뭐고 세상은 뭘까. 울지 않으면 시작도 되지 않는 인생. 내가 우는 것에 모두가 안도하며 막이 오르는 인생.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세상에 태어난 게 얼마나 우습고 어이없는 일인지 아니. 울음을 터뜨리지 않고서는 배겨 낼 수가 없단다!

엄마 아빠의 엉덩이에도 몽고반점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엄마 아빠도 몸 어딘가에 못된 아이였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멀끔한 동생의 허벅지를 보면서도 생각한다. 사고한 사고는 내가 다 선수를 쳐놔서 마땅한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한동안 몽고반점이 지구 반을 덮을 만큼 커다란 말썽쟁이로 살았더니 이제는 더 이상 말썽이 고프지 않다. 지난하고 재미없는 삶도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사람 인생이라는 게 또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 것이다. 기왕 나온 거 굴러봐야지. 자갈밭도 구르고 폭풍우도 지나고 벽돌집에 살았다가 움막도 지으면서 이 무대를 마음껏 누비고 다녀야지. 누가 나의 퍼런 엉덩이를 보고 질색을 하면 망나니 시절에 익힌 평생 가는 교훈이라고 주름도 잡아야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쓸 것도 많다. 죽도록 써지지 않는 오늘 같은 날에도 꾸역꾸역 여기까지 해놓은 것을 봐.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문제없어.



세상 한탕으로 잘 즐기고 간 사람일 것 같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깡패 섬나라의 범우주적 익살꾼.


오늘도 그의 장엄한 문장에 힘을 얻는다.

바보들만 득실거리는 이 세상에서 !





매거진의 이전글 아주 광활하고, 아주 위험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