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May 12. 2021

05. 왜냐하면 우리는

여자 바텐더니까.





갓 일을 시작했을 때, 한 살 어린 바텐더 선배에게 호되게 혼 난 적이 있었다.


그 날은 손님이 없는 날이었고, 하루 내내 가게를 찾아온 것은 단골손님인 회장님 한 분 뿐이었다. 우리는 위스키 한 병을 앞에 두고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도란도란 일상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매니저 오빠가 장난스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성큼성큼 바 밖으로 걸어 나가더니 손님의 옆자리에 의자를 빼고 털썩 앉았다.

‘아, 손님도 없는데 뭐 어때요. 혼자 드시는 것 보다야 옆에 누가 있어야 재미있죠.’

나는 바 안에 서있었다. 손님 옆에 앉아있는 오빠는 수더분하고 편안해 보였고, 회장님도 늘 서비스를 받기만 하던 사람이 친구처럼 옆에 앉아 있으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매니저 오빠가 대뜸 나에게도 말했다.

‘해인이도 옆에 앉아. 아무도 없는데 회장님 적적하지 않게 술이나 같이 먹자.’

잠깐 망설였다. 일을 시작할 때 받은 교육으로는 바 안에 상시 인원이 대기하고 있어야 하며, 손님에게 등을 돌리거나 손을 멈추고 있으면 안 되는 거였다. 바를 비우면 안 되는 것을 매니저님이 모르지 않을 텐데 자꾸만 이쪽으로 손짓을 했다. 나중에는 회장님까지 가세해서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회장님의 왼쪽에는 매니저 오빠가, 오른쪽에는 내가 앉았다.


그리고 손님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순간, 내 머릿속에는 노란색의 경고음이 떴다.

이게 아닌데. 뭔가 이상한데. 말도 안 되는 정도의 불편함이었다. 지나친 거리낌. 단전이 근질근질한 불쾌감.


처음 바텐더를 시작했는 때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구인구직 사이트를 검색하고 발품을 팔았다. 그때 스물세 살이던 내 앞에 주르륵 올라오는 리스트들은 다 희한한 이름을 달고 있었다.

모던바, 토킹바, 착석 없음, 가족 같은 분위기, 높은 시급, 자유로운 근무 시간.


세상에 이런 직장이 있나? 면접까지 잡혔던 가게의 간판 앞에서 나는 알아차렸다. 이런 곳에서는 내가 ‘해보고 싶은’ 바텐더 일을 결코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구인구직 사이트에 적혀있는 수많은 바(bar)의 이름들은, 내 기준에서는 유흥업소와 다를 바가 없는 주점들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같이 갔던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라운지 바에 이력서를 넣었다. 운 좋게 마침 직원이 필요하다고 했고, 손님으로 찾아갔을 때 칵테일과 기본 주류가 갖춰져 있었으며, 집에서도 가까워 일을 배워나가기 좋을 것 같았다. 그게 나의 바텐더로서의 첫 직장이었다.


내가 회장님의 옆에 앉았던 곳은 두 번째 직장이었다. 6개월 일한 라운지 바에서 퇴사하고 클래식 바의 세계에 처음 들어와 멋지고 예쁜 인테리어와 전문적인 지식들에 정신을 못 차리던 때. 온갖 칵테일의 역사를 공부하며 희열에 젖어있던 때.



매니저 오빠가 회장님의 옆에 앉아있을 때는,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40대 후반 즘 될 것 같은 회장님과 스물일곱의 키 크고 잘생긴 매니저님. 둘이서 잔을 부딪히는 것도, 미소를 띤 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마치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도 별생각 없이 나가서 앉았던 거였다. 친한 손님, 익숙한 공간, 상사의 허락. 이 모든 것을 합하면 내가 회장님의 옆에 앉아있어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일이어야 했다. 매니저 오빠가 그랬듯 나는 부하직원으로 자연스럽게 그 풍경에 녹아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속이 답답하고 누가 나를 쳐다보는 듯한 모멸감이 느껴져 잔 몇 번 기울이지 못하고 금방 일어났다. 사십 대 남성 옆에 앉아 술을 받고 술을 따라주는 이십 대 여성. 그 짧은 순간이 기묘하게 모욕적이었던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일이 다 끝나고 논현동 어느 곱창집에서 밥을 먹다가 그 얘기가 나왔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기분이 이상했어. 친하고 편한 손님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그리고 정말 된통 혼이 났다. 밥을 먹었던 일행은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훨씬 일찍 바텐더를 시작했던 업계 선배였다. 그녀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 바텐더는 결코 바 밖으로 나가선 안된다면서 매섭게 다그쳤다.

‘우리는 손님들한테 술에 대한 전문성을 제공하는 사람들이지 손님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이 아니야. 언니가 그럴수록 업계의 이미지도 같이 나빠진다고. 손님 옆에 왜 앉아? 거기가 아가씨 바야? 절대 그러지 마. 손에 잡힐 것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언니는 바텐더야. 바가 없으면 바텐더가 아니고, 바텐더는 바 밖으로 나가면 안 돼. 특히 우리는 더더욱 그래. 어쩔 수 없어.’


왜냐하면

우리는 여자니까.



화를 너머 속상해하고 있는 그 애의 앞에서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유독 손님이 없던 그 날, 매니저님이 손님 옆에 앉아있던 그 날, 나는 왜 그렇게 생각없이 굴었을까.

우리는 ‘바텐더’라는 이름을 쓰는 유흥업소의 아가씨들과 구분되어야 하고

‘바텐더’라는 이름에 묻은 오물을 털어내면서 일을 해야 한다.

매니저님이 하면 괜찮았던 행동을 내가 함으로써 한없이 까마득한 기분에 빠져들었던 것. 그 아찔함. 그 불쾌함.

그것은


그 공간에서 나 하나만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여자라서.










매거진의 이전글 04. 당신은 나를 어디에 데려다 놓은 거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