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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n 05. 2021

06. 그냥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남자 바텐더들이 아가씨바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당장 나의 전 사수 오빠만 해도 지방의 모던바에서 술을 처음 만지며 업계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했으니까. 오빠는 거기에 있는 여자들이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정이 많고 상냥했지만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아는 여자 바텐더 중에 아가씨바에서 일을 시작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근처에 갈 생각도 하지 않았던 ‘그런 업장’은 지저분하고 천박해 보였다. 구정물이 옮아올 것 같았다. 내가 그런 곳에서 일을 했다면 나는 바텐더가 아니라 아가씨였을 것이다. 전 사수 오빠처럼 손님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팁을 받고 여자들에게 패악을 부리는 아저씨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남자 웨이터가 아니라, 유흥업에 종사하면서 스스로를 바텐더라고 부르는 업소 아가씨.

나는 바(Bar)라는 이름을 붙인 한국의 유흥업소들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구직사이트를 뒤지는 와중에 끊임없이 보였던 모던바, 토킹바, 바, 바, 바. 나에게 그것들은 바가 아니었다. 이름 그대로 술을 마실 수 있는 긴 카운터를 가진 퇴폐 업장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70년대 일본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터키 목욕탕’, 일명 터키탕이라는 이름으로 성인업소가 성행하자 주일본 터키 대사관에서 직접 항의를 해 ‘소프랜드’라는 명칭으로 바꾸게 된 해프닝. 같은 일은 90년대 한국에서도 일어나 ‘터키탕’의 간판을 ‘증기탕’으로 바꾼 전력이 있다. 저것 만큼이나 국가의 위신이 걸린 문제는 아니지만, 마음 같아서야 한국에 모든 불건전한 영업이 포함된 업소들이 당당하게 쓰고 있는 바, 또는 바텐더와 같은 지칭이 다른 것으로 교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식은 순간이고 오명은 오래 남는다. 스스로를 바텐더라고 소개할 때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쏟아지던 의뭉스럽고 따가운 시선. 그것이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으레 알려진 ‘바’의 이미지다. 한국의 여러 지역에서 여자 직원을 데리고 있는 업소가 ‘바’라는 이름으로 일찍 자리를 잡고 영업을 지속한 결과. 그게 그 직업의 인식이고 편견인 것이다.


나는 모던바, 토킹바를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바텐더 선배들에게 물어볼 때마다 술값도 어마어마하게 비싼 데다가 여자 손님은 일하는 여직원들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니 굳이 경험해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곳을 모른다.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엄한 상상들만 커지는 법이다. 한국 영화에서 그려지는 룸살롱 문화. 원피스가 필수라는 근무조건. 내부가 비치지 않는 외벽. 여자의 실루엣이 그려진 입간판. 그리고 화룡정점처럼 내가 일하는 바의 문을 활짝 열고 ‘여긴 왜 죄다 사내 새끼들 뿐이야?’라고 묻는 인간들이나, 꼬부라진 혀로 나에게 ‘20년만 어렸으면 확 꼬셔버리는 건데.’ 하는 추파를 던지는 손님을 보면 나는 그저 느끼는 것이다. 이런 인간들이 여성을, 바를, 바텐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 사람들의 눈에 나는 어떤 존재로 비쳐 보일지. 그리고 내 원망은 모두 같은 곳으로 향한다. ‘바’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지속하는 유흥업소들과, 선택권은 없겠지만 스스로를 ‘바텐더’라고 소개하는 어딘가의 여자들에게.



내가 일하게 된 싱가포르의 가게는 여사장이 ‘오빠’라고 부르는 중년의 한국 남성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그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여사장은 반갑게 인사하며 의자를 끌어다 앉고는 옆에서 같이 술을 마셨다. 개업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다는데 어찌나 살갑게도 구는지. 남사장도 여자 손님이 오면 술을 얻어마시는 걸 보니 가게 전체가 그렇게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일했던 곳에서 친목 위주의 영업에 대한 주의와 경고만 주야장천 들어온 나에게는 다분히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사실 내가 오래 근무했던 곳의 규칙이 유별났을 뿐 바는 제각기 자신의 손님을 아끼고 챙기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래서 신경 안 썼다. 여기 사장님들은 가게 운영을 이런 방향으로 하시는구나, 이 정도의 생각. 다만 매일 같이 마감시간에 변기를 붙잡고 토를 하거나 인사불성이 되어 비틀거리는 사장들을 보면 한심함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들었다. 사장들은 내일 죽어도 되는 사람처럼 손님의 위스키 병을 자기 잔에 콸콸 붓고 원샷을 했고, 그렇게 한 병을 더 팔면 뿌듯해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요절 기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입사할 때부터 이 모양이었으니, 여자가 하나 들어와 둘이 먹을 것을 셋이 나누어 먹게 되는 것뿐 내 입장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바 안에만 있으니까. 바 밖에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니까, 누군가는 이층에서 여사장을 도와줘야겠지. 이층은 나랑 관련 없는 단체손님의 공간이니 계단을 올라가지도 않는 내가 가게 일에 왈가왈부 첨언을 놓을 것도 아니지. 나는 그렇게 내가 일하는 곳의 이층이 내가 모르는 이상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외면했다. 아니, 어쩌면 이 곳이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이상한 곳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내가 곧 호되게 후회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나는 모두 외면하고 있었다.


크게 다를 바가 없기는!

손님들은 이층에서 예쁜 여자가 접대해 주는 바를 바라며 이곳에 들어올 것이다.

이층에 자리가 꽉 차면 일 층에 바에 앉아서 내 얼굴을 볼 것이다.

내 앞에 앉은 손님이,

(물론 모든 손님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이층에서 예쁜 여자가 접대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르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벌써 싱가포르까지 날아와 버렸는데.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그냥 모르고 싶었을 뿐이다. 이 곳이 이상한 곳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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