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Jun 07. 2021

07. 가게에 수탉이 들어왔다

수탉이 하도 울어서 머리가 아파




 

가게에 수탉이 들어왔다.


 

신장이 2미터가 넘는 싱가폴리안 남성 수탉은 사장이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부터 신세를 많이 졌던 친구라고 했다. 사장은 수탉이 우리 가게에서 일이나 도와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자기 일처럼 으쓱거렸다. 수탉이 가진 클럽, 집, 여자, 돈, 그런 것들. 사장은 마치 내가 눈을 빛내며 그를 존경해야 할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 사람은 본인이 내뱉는 농담만큼이나 추저분한 인간인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이상한 가게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평생 길거리에 어깨조차 부딪힐 일 없기를 바랄 만큼.

그는 가게에 오자마자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하던 클럽에서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었던 씨씨티비를 보여주었다. 흐린 화질 속에서 장신의 남자가 테이블을 부수고 유리를 깨며 사람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핸드폰에 저장까지 해서 다니는 꼴을 보니 어지간히 자랑거리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온통 검은 옷에 에어조단 리미티드 에디션을 사모으는 수탉. 유난히 검은 피부와 부리부리하고 작은 눈을 가진 수탉. 저급한 농담과 음란한 제스처가 끊이질 않았지만 악인이라기 보다는 날건달에 가까웠던 수탉. 사장의 오랜 친구라는데 그런 사람에게 인간성이나 바른 성품까지 기대하기엔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가게만 멀쩡하게 돌아가면 될 일이다. 키 작은 내가 모가지를 홱 꺾어 올려보아야 했지만 수탉은 지금껏 일했던 어느 아르바이트생보다 일을 잘했다. 나는 묵인했다.

하루 이틀 일하다가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다시 볼 일은 없으리라. 성희롱에 준하는 발언들도 이 사람만 가게에서 사라지면 더 들을 일 없으리라. 무엇보다도 남에 가게에 부족한 일손을 채워주겠다고 나서 주었으니 고마운 일 아닌가.


 

그리고 수탉이 가게에서 나가는 일은 없었다.



수탉은 요리를 좋아했다. 가게 부엌에서 자기가 직접 요리를 하고 그걸 먹는 사람들에게 ‘섹스보다 낫지?’ 하고 물어보는 것이 말버릇이었다. 요리는 맛있었고, 수탉의 마음은 귀여웠지만 매번 먹고 있을 때마다 그 짓궂은 눈빛으로 섹스보다 백 배는 낫지 않아?라고 물어보는 것은 정말 징그러웠다. 세 번 참고, 나는 수탉에게 말했다.


 

"루스터. 나는 그런 종류의 성적인 농담을 좋아하지 않아. 네가 하는 말들이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고, 네가 여성을 비하할 때는 웃는 척하는 것도 힘이 들어. 몰어보지도 않았던 너의 성기 크기와 섹스 라이프도 나는 알고 싶지 않아. 모두가 너의 농담을 좋아해 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번에 너와 일하게 된 나는 네가 하는 말들이 불편한 사람이네. 다른 사람에게 하는 건 상관없어. 신경 안 써. 하지만 나한테는 좀 자제해 줄 수 있을까."


 

수탉은 내 말을 들어주었다. 가게에는 여전히 음담패설이 흘러넘쳤지만 적어도 나에게 두 번 다시 ‘섹스보다 좋지?’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으니까. 멀쩡하게 일하던 직원이 나가고 빈자리를 혼자 채운 수탉의 에너지는 엄청났다. 위 층에 여자 직원이 들어온 직후였다. 손님들은 수탉이 하는 성인 개그를 좋아했고, 나는 그 기분을 맞추지 못해 늘 뒤쪽에 빠져 있었다. 수탉은 가게에서 나갈 일이 없어 보였다. 손님들은 물론 사장들 조차도 그가 하는 야한 이야기와 선정적인 몸짓에 휘말리는 가게. 모두가 배를 부여잡고 깔깔 웃는 곳에서 나는 점점 동떨어진 인간이 되어갔다. 수탉이 들어온 후로 바뀌어가는 모든 것이 나에게는 따라잡기 힘든 것이었다.


 

언젠가는 케이팝 아이돌 같은 어린 친구들 서너 명이 우르르 이층으로 올라갔던 날이 있었다. 여사장의 손님이 많은 날이었다. 주먹만 한 얼굴에 색색깔로 염색한 긴 머리. 티비에서 걸어 나온 듯한 화장. 누구나 다 돌아볼 몸매의 아이들이 떼로 들어오니 바에 앉은 손님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쏠렸다. 나도 보는데 감탄이 나와서 와, 너무 예뻐요. 어디서 온 분들일까요? 물었더니 매니저는 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쟤네? 루스터가 데리고 있는 애들."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수탉의 집에는 여자들이 산다는 것을. 월세도 내지 않고 수탉의 집 방 한 칸에 얹혀 지내는, 그가 ‘My girls’라고 불렀던 그 여자들. 나는 그때 역시 외국이라 혼성 쉐어하우스가 흔하구나, 하고 대꾸하고 말았었다. 수탉이 스케줄을 관리하고 수탉이 부르면 나오는 여자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스무 살 스물한 살의 아이돌 같은 아이들이 가게 이층에서 일을 하고 갔던 날, 나는 수탉이 사람들에게 여자 필요해? 한 시간에 400불. 하고 낄낄거리던 것이 농담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언제 한번, 사장이 손님들에게 수탉을 소개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 수탉은 사장의 말을 끊고 딱 한마디 했다.


 

"뭘 구구절절 설명해? 그냥 말해. 내가 포주라고."






 

일 잘하고 키가 큰, 내 옆과 뒤를 지나다니는 루스터라는 남자는 여자를 사고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핌프(Pimp). 포주, 매춘 알선업자라는 뜻의 단어. 나는 이 단어를 10년 전의 미국 드라마에서 한 번 보았다. 내 평생 이 말을 내 귀로, 심지어 자기소개로 듣게 되리라는 생각은 한 톨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상한 친구가 있는 사장의 이상한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평생 길거리에서 어깨도 부딪히고 싶지 않은 사람과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언니 언니 하며 살갑게 굴었던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이 지금도 생각난다. 수탉을 경멸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많은 기운을 썼다. 그의 옆에서 근무하는 하루하루가 양 손에 쓰레기를 들고 있는 것 같았다.


 

온몸에 옴이 붙은 기분.

목 뒤에 팔뚝만 한 거머리가 붙은 기분.

하루하루 피가 오염되는 기분.


 

루스터, 너의 바람대로 나는 너를 포주라고 소개할게.

요리를 좋아하고 네 소유의 여자들에게 한없이 상냥한 루스터, 자기 지붕 아래의 여자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루스터.

인생에 또 언제 너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어.

너처럼 당당하고 인기 많은 포주를.











매거진의 이전글 06. 그냥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