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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l 25. 2021

Bar-02. 그 인디언이 무덤에서 일어날 거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말이야

​​

​*미국 원주민들을 부르는 명칭은 현재 식민지적 단어인 '인디언'이 아닌 '네이티브 아메리칸' 혹은 '퍼스트 네이션즈'로 정정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을 ‘통 중독자’라 불렀다. 나무 그루터기에 고인 물을 통 속에 오래 담아두었다가 그런 사람들에게 팔면 통 냄새가 물씬 날 테니까 좋아라고 마실 거라고 욕을 하시면서.

사실 할아버지는 위스키 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그 모든 소동에 대해서 불같이 화를 내며 이렇게 퍼붓곤 하셨다.

“그런 소동은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몇 년 치 위스키를 한꺼번에 갖출 수 있는 부자 회사들이 퍼뜨린 게 틀림없어. 이런 식으로 해서 통 냄새가 밸 만큼 위스키를 오래 저장해둘 수 없는 가난한 제조업자들을 쥐어짜는 거야. 그들은 엄청난 돈을 뿌려가면서 자기들 위스키가 다른 위스키보다 더 좋은 통 냄새가 난다고 선전을 해대지. 이런 선전에 넘어가는 닭대가리같이 멍청한 놈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그런 술을 마시려고 하고. 하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통 중독자가 되지 않은 자각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난한 제조업자들이 그런대로 살아갈 수가 있는 거야.”


포리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


논란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인디언 피가 흐르는 소년이 체로키족 출신의 조부모님과 지내며 있었던 이야기를 그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초등학교 때 처음 읽고 깊이 감명받았던 작품이지만 작가가 왕년에 끗발 날리는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의 리더로 활동했던 것과, 책에 묘사된 것과는 달리 그의 부모는 멀쩡히 살아있었으며 그에게 인디언의 핏줄은 눈곱만큼도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 책이 더 이상 곱게만 보이지 않는다. ‘자전적 이야기’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거짓이었다니. 좋아하던 작가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훔치거나 꾸며 책을 썼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 책 속에 요동치는 자연의 생명력을 보면 생각한다. 어디에서 이런 일들을, 이런 표현들을 업어왔을까. 직접 들어보긴 한 걸까. 겪어보긴 한 걸까. 이 이야기는 어디부터 거짓이고 어디까지 진실일까.



주인공 ‘작은 나무’의 인디언 조부는 뒷산 어귀에서 증류기를 숨겨놓고 위스키를 만든다. 백인들이 사용하지 않는 재료, 인디언붉은옥수수로 만든 할아버지의 술은 다른 밀주들에 비해 눈에 띄게 검붉은 색을 띤다고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증류 후 바로 병에 넣어 판매하고 할아버지 되는 분이 저렇게나 위스키를 오크통에 넣는 것에 질색하는 것을 보니 아마 내가 아는 위스키의 ‘검붉다’가 아니라 소주처럼 무색투명한 증류액에 약간의 불그스름한 기가 섞인 색깔일 것이다. 요 며칠 아메리카 증류소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술을 만드는 사람들은 참 대대로 돈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먼 옛날 어드매에 갑부 제조업자들에게 스러졌던 소상공인들의 언변을 이런 곳에서 듣게 된다. 오크통에 숙성시키면 나무와 알코올이 접촉을 반복하면서 향과 맛이 더 풍부해지는 면은 있지만 금주법 시대에 위스키를 임시변통으로 나무통에 넣지 않았다면 지금도 무색투명한 액체, 증류된 직후의 ‘화이트 도그’로 전 세계에 시판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할아버지의 걱정대로 세상은 돈 많은 위스키 회사들의 바둑판이 되었고 전 세계 사람들은 나무통에 넣지 않은 무색의 위스키를 ‘개에 물린 것 같다’는 표현으로 ‘화이트 도그’라고 부른다. 이제 1인, 혹은 소규모 가족 단위의 위스키 증류주는 돈이 되지 않는다. 미국 어딘가에 여행으로 가서 기념으로 먹어볼 만한 거리 정도일 뿐이다. 세계가 나무통의 향기에 열광하니 회사들은 나무통에 온 짓거리를 다하고 그런 과정에 값을 매겨 전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한다. 가게에서 손님들에게 소개할 때 위스키는 ‘돈 많은 사람만 먹는 술’이 아니라 많은 장인들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잘 만든 술’ 일뿐이라고, 한국에서는 고도수 술에 대한 음용법이 익숙하지 않아 어렵게 느껴질 뿐이라고 얘기하곤 하지만 어떤 위스키들은 분명 ‘돈 많은 사람만 먹는 술’이 맞다. 그리고 그 술 한 방울에 나 같은 사람은 벌벌 떤다. 결국 그렇게 된다.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 말을 빌리자면 지구는 닭대가리같이 멍청한 놈들의 세상이 됐다. 아직 보지 못한 어딘가의 통 중독자가 아닌 애주가를 만나면 이 책에 나온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 지금 술판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 거구에 고집 센 늙은 인디언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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